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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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근대 시대를 반영한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한 권에 담아 함께 읽는 시리즈 소설, 잇다의 출간은 너무나 반갑다.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님의 뒤를 잇는 ‘2세대 여성 작가에 속하는 백신애 작가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최진영 작가의 콜라보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백신애 작가는 1908년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해설에서는 사회주의 운동가 오빠가 있었다고 나와 조금 혼란스러움)로 태어난다. 그는 적당히 학문을 익히고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는 평온한 삶을 등지고 뜨거운 마음이 이끄는 방향대로의 삶을 선택한다. 사회주의 여성단체에 가입해 여성운동을 하고, 1926년 오로라를 보겠다고 시베리아를 방랑하다가 귀국길에 혹독한 고문을 받기도 한다. 그런 그녀도 외동딸로서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결혼을 하지만, 5년 만에 별거하게 되고 그로부터 1년 뒤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작품 안에서 이런 작가의 모습, 고민, 울분, 사랑 등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소신, 신념과 자식으로서의 도리 사이에서 느끼는 번뇌를 <혼명(混冥)에서>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보여준다.

 

나의 결혼은 하늘을 향하여 돌멩이를 던진 것과 같은 결혼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나의 주위는 그 던진 돌멩이가 무사히 그대로 공중에 매달려 있을 기적을 신념하고 있었고 희망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마는_69.

 

화자는 어쩔 수 없이 한 결혼과 이혼, 이혼 후 조신하게 얌전하게 쥐죽은 듯이 살게 하려는 주변의 압박, 그래도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묻어둬야 하는 숨 막히는 심정이다. 그런 화자 가 옛 동지였던 ‘S’와의 우연한 세 번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갈 용기를 얻는다. 소설 속에서 화자는 위병으로 고생 중이고 그것 또한 자신이 용기를 내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기에 ‘S’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피자 연구하고 얻은 결론을 말하기로 약속한다. 그 약속으로 화자는 건강도 회복하고 어머니를 설득하며 자기를 찾아 나간다. 만남을 앞에 두고 갑작스레 ‘S’의 죽음을 맞이한 화자, 슬프지만 당신이 두고 간 맹렬하던 의기의 한 조각죽는 날까지 힘껏 틀어잡고삶을 지탱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소설처럼 작가 백신애도 그러할 수 있었다면 지금 얼마나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했을지 모른다. 아깝다. 억지 결혼이 아니었다면, 식민치하와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으로서 더 강하게 느꼈을 억울함과 부당함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단명하지 않았을 것만 같다.

 

 

 

 

아이고, 맙소사. 아이고, 빌어먹을 도둑놈. 네가 하느님이야? 도둑놈이지. 그만치 내가 정성을 들였으면 조금이라도 효험을 보여주어야 되지 않느냐?_34.

 

<광인수기狂人手記>의 한 대목이다. 시작부터 하느님에게 반말에 욕지거리를 퍼붓는 화자는 광인의 상태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하나님을 그렇게 욕할 수는 없겠지..) 비가 모질게도 들이치는 다리 아래에서 걸레 같은 옷을 입고 추위와 배고픔에 벌벌 떨며 하느님에게 원망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말들로 화자의 사연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첫날 밤 그리도 다정하던 남편, 괴팍하고 못돼처먹은 시누이와 시어머니, 사회주의 운동으로 맘 졸이게 하던 세월을 버티고 나니 뒤늦게 바람난 남편. 그 현장을 급습하자 미친년 취급하며 꽁꽁 묶어 가둬버리는 남편의 행태에 미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을까?

 

 

여자가 정말로 미치는 때는 남편의 배신을 알게 된 순간이 아니라 자식들이 걱정되어 남편이 있는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_해설 중에서

 

그렇다. 그와중에도 자식 걱정에 온전히 미치지도 못하는 게 여자고 엄마다. 그 부당하고 불합리한 시대를 거치며 자식들을 건사했던 우리 어머니들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_최진영

 

이 소설은 백신애 작가의 <아름다운 노을>30대 여성과 16세 소년의 로맨스에서 창안했다고 한다. 낯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로잡히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생각할 때 지금의 나를 엄습하는 단어는 가스라이팅, 스토킹 범죄, 그루밍 범죄, 데이트 폭력, 교제살인, 디지털 성범죄, 불법촬영...’ 여자와 남자의 로맨스에는 위험한 요소가 너무 많다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밤엔 편의점과 펍에서 알바를 하고 낮에는 공부를 병행하는 20살 정규는 괜한 시비를 거는 거친 남자 손님에게서 자기편을 들어주는 또 다른 40대 여자 손님 순희와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고 끌리게 된다. 저자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껴야만 하는 불안감, 두려움을 항상 안고 살아가는 정규를 통해 남성을 대할 때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게 되는 현실에 대해 꼬집는다. 동성으로서 느끼는 편안함을 넘어서 사랑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존중할지언정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소설, 잇다를 통해 백신애 작가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 두 번째 소서, 잇다는 어떤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를 이어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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