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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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랜드에서 글쓰기 _김사과

 

결과적으로 호치민은 센스 있는 요리사처럼 나의 굶주림을 해소시켜 주었다.... 베트남에 대한 나의 막연한 편견과 달리 그곳의 우유는 부드럽고, 굴은 크리미하고, 차는 달았고, 거리의 꼬질꼬질한 개들은 붙임성이 아주 좋았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달려나가는 오토바이 여자들은 늠름했으며 식료품점 매대를 가득 채운 이름 모를 향신료들, 그리고 부동산 열기로 가득한 고층 빌딩의 공사 현장까지 나는 눈앞에 펼쳐진 온갖 이미지를 대식가처럼 먹어치웠다._p14

 

붙임성 좋은 꼬질꼬질한 개들에게 내 음식을 나눠주고 싶고 늠름한 여자들에게 엄지척을 날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호치민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일상의 지루함은 어떤 면에서 글쓰기의 필수 요소다?’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일상에 쉴틈없이 흘러가다보면 남기고 싶은 기록도 남길 여우가 없으니 말이다.

 

내 생각에 여행지에서의 글쓰기란 디즈니랜드에서 독서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남들은 놀이기구 올라타 환호하고, 페스티벌 행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솜사탕을 들고 뛰어다니기 바쁜데, 홀로 놀이공원 구석의 커피숍에 앉아 맛대가리 없는 커피를 앞에 두고 두꺼운 소설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_p16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섯 시간 _ 김이설

 

소설이란 결국 골방에서 혼자 쓰는 일, 세상에서 나 혼자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견뎌가며 언어를 쌓아 올리는 일인데, 누군가 나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외롭고 고독한 소설 쓰기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가, 내가 하는 소설 쓰기가 영 소용없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동료가 선배가 후배가 아직 지치지 않고 여전히 쓰고 있다는 든든함이 얼마나 반가웠을까._p36

 

하루 여섯 시간의 글쓰기 시간을 만들기까지 꼬박 15년이 걸렸다는 저자. 그 전에 육아·살림과 병행했던 글쓰기가 얼마나 처절했을지 그려진다. 매일 작업 기록을 SNS에 올리면서 동료, 후배, 일면식도 없는 작가에게서 감사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누군가 함께 같은 일을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것, 그것은 소설 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응원합니다. 소설을 쓰고 계신 모든 작가님들 파이팅!

 

 

나는 더 이상 소설을 기다리지 않는다. _박민정

 

소설 쓰기가 일반적인 노동으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격지심, 소설 쓰는 것이 한갓진 자의 취미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 소설 쓰기의 용기를 잃은 친구에게 했던 말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다시 쓰게 되었다는 저자. 소설을 쓰기 위해 영감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꾸준히 묵묵히 쓰면서 찾아지는 것이었다니, 진정 소설가들의 노동은 일반적인 노동 이상일지 모르겠다.

 

 

 

늙었으면서 늙은 것을 모르고 _ 백민석

 

자신과 다른 형식의 창작을 한다고 누군가를 차별한다면, 그건 차별하는 쪽이 차별의 행위에서 모종의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_p67

 

대학원생조차 제도권 작가와 웹소설 작가를 같은 수만큼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작가의 리보컨 개수가 여덟 개로 늘어난 것처럼 세상의 문학도 그렇게 되었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늙는 만큼 세상은 역으로 젊어지니 그 안에서도 또 재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저자의 자세가 마음에 든다.

 

 

 

사십 편 이상의 장편소설과 수많은 단편 소설, , 희곡 _ 손보미

 

많이 쓰는 행위 자체를 우려하는 것에 대해, 혹은 소설을 쓰는 행위가 내 안의 무언가를 소진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반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어째서 소설을 쓰는 행위가 계속해서 소진되는 과정이어야만 하는 걸까?_p74

 

쓰는 행위 자체가 또다시 쓰는 행위의 동력이 되는 작가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곧 스스로 지쳤음을 인정하게 된다. 첫 마감 펑크! 당분간은 소설 쓰기에 자신이 없다는 저자의 말이 아프게 들린다. 그래도 상상하는 것의 즐거움이 남아있다니 곧 그 상상이 소설이 되리라 믿는다.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_오한기

 

이 글속에 소설의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 결코 나오지 않지만 이 짧은 글이 사랑스럽다. 아이와의 일상이 아름답게 보이고(현실은 그렇지 않을지언정), ‘짬이 조금이라도 나면 암살자가 타깃을 살해하기 위해 순식간에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글을 쓴다는 작가의 말이 재밌다.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길은 치과 가는 길이라니 엉뚱하기 그지없다. 그나저나 작가님! 걱정 끝에 통증 없이 5분 만에 식립을 끝내신 그 테크니션 치과 선생님 소개 좀...!

 

 

공백의 소설 쓰기 _ 임 현

 

글쓰기의 괴로움을 온전히 대면하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르므로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이 써지지 않는 그 공백의 시간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라는 것._p100

 

이 말이 소설이 써지지 않는 시간에 대한 수많은 작가의 고민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수영이든, 산책이든, 청소든 글을 쓰려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시간 동안 몰입하는 한 가지 생각에서 또 글이 나오기도 한단다.

 

 

떠나온 자로서 _ 전성태

 

존 윌일엄스의 장편 스토너가 졸업식에서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지점, 스토너의 복잡한 감정을 전성태 작가는 열아홉 살 문예창작과를 선택할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기의 경험과 겹치는 부분을 발견하면 그 이야기에 홀리듯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걷지 못하고 고향의 대학 교수직과 작가일을 겸하고 있는 그는 소설을 왜 쓰는지에 대해 마련된 답이 없다고 한다. , 히제 돌이길 수 없는 길로 온 것일 뿐. 그거면 되지 않을까? 모든 일이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쉽게 배운 글은 쉽게 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 _정소현

 

내가 정말 인상 깊게 읽었던 가해자들의 저자가 너무 쉽게 글을 배우는 바람에 진정으로 둔감하고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소설을 전공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몸으로 아는 과정, 오감으로 감각한 것들만 쓰는 연습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대단해 보인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삶으로 채워 넣는 일이고, 삶을 감각하는 일이다._p122

 

 

 

포기의 글쓰기 _ 정지돈

 

한때 많은 좋아요를 받고 리트윗 된 한 트윗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끌어나간다. ‘태어나서 미안하다’, ‘개졸려’, ‘죽고싶음’, ‘뭐처먹지’, ‘야 이 새끼들아’, ‘다 포기해서 편해짐이 여섯 댓글이 글이 소재인 것이다.

 

다 포기해서 괜찮아짐에 대해,

 

자채과 불면, 식욕부진, 분노 끝네 작가들은 깨닫게 된다. 이것이 내 한계구나, 나는 여기까지구나, 나는 명문을 쓸 수 없고 위대한 작가가 될 수도 없구나. 하지만 바로 그때 기적처럼 글이 써지기 시작한다._p143

 

라고 쓴 정지돈 작가의 말은 어쩌면 임현 작가의 써지지 않는 공백의 시간이 필연적이라는 말과도 통하는 느낌이다. 써지지 않는 마지막 순간에 써지는 것이 소설인 것인가?

 

 

 

작가의 말과 신발 _조경란

 

조경란 작가의 단 한 마디가 강렬하게 남았다. 나도 언젠가 이런 멋진 문장을 쓸 수 있게 될까?

 

작가로 살아가는 데 없어서도 안 되고 잃어버려서도 안 되는 게 한 가지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문학을 좋아할 것. 무엇이 와도 그 마음을 훼손당하지 말 것._p150

 

나는 책에서 작가의 말읽기를 좋아한다. 가끔 작가의 말이 없는 책을 만나면 못내 서운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쓴 건지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한마디도 없으면 아는 단어가 혀끝에서 뱅뱅 맴도는 것 같이 답답하다. 작가의 말에 진심을 담는다는 조경란 작가님의 소설을 꼭 찾아 읽어보고 싶어지는 이유다.

 

 

농담 _ 최정나

 

소설 아카데미에서 읽게 된 수강생의 글은 그의 심장이 멎을 만큼 놀라게 했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픈 이야기를 쓴 사람을 알아야 했고 만났고 그리고 그의 소설이 시작되었다. 그의 소설 속에서 그들은 여러 번 다른 모습으로 살아난다.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면 소설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입구도 문도 자물쇠도 비밀번호도 없는 시작 _최진영

 

구의 증명, 최근 나를 가장 경악하게 했던 소설의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발견한 문장, ‘내가 썼으나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글. 쓰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먼저 나를 설득시켜야 했던 문장들.’ 왠지 이 문장 하나로 나를 경악시켰던 소설의 설정이 이해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또한번 느끼는 것은 어떤 소설가도 자신의 글에 완벽하게 만족하며 마침표를 찍지는 못한다는 사실. 그들은 겸손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문장을 품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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