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_p68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두 살, 두 살 반인 나의 눈 안으로 그가 들어온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많은 소설가가 첫 문장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고 들었다. 겨우 2000자 정도 되는 서평에서도 첫 문장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어떤 풍경 묘사나 시대적 배경 설명으로 글이 시작되면 몰입감이 떨어진다. 더 구체적이면서 다소 충격적이거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그다음 문장을 빨리 읽어 내려가게 하는 시작이 좋다. 『가벼운 마음』의 첫 문장처럼 말이다. 


‘누런 이빨’을 가진 이와 ‘두 살, 두 살 반’의 나이에 첫사랑에 빠졌다니 첫사랑이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는 ‘늑대’였다. 그 사실은 어릴 적부터 사자, 호랑이, 곰 같은 맹수와 절친이 되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던 나를 흥분시켰다. 늑대와 사랑에 빠진 뤼시의 가족은 서커스단과 함께 유랑하며 트레일러에서 생활한다. 밤중에 뤼시 부모님의 트레일러 집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모든 사람을 깨웠다. 사라진 뤼시는 늑대 우리 안에서 늑대의 배를 베고 곤히 자고 있다. 천막을 설치하는 동안 관객을 끌기 위해 전시된 늑대는 길들일 수 없을뿐 전혀 위험하지 않았지만, 늑대 우리 위에 빨간 글씨로 적힌 ‘크라쿠프 지역의 늑대’라는 안내판은 ‘무서운 짐승이라는 증거’로 충분했다. 이런 식의 ‘이름’으로 인해 갖게되는 선입견과 편견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지 잠시 생각하게 했다. 


 「두렵게 만드는 건 이름이다. 이름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실체 자체도 없다.」_p11


 뤼시가 8살 때, 늑대가 죽었고 소녀는 늑대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의 무덤에 꽃과 과일(늑대가 개양귀비꽃만 먹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을 산더미처럼 놓아주기 위해 혼자 길을 나섰다. 그 과정에서 바그너, 라벨,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간호사 아주머니를 만나 그 집에서 하룻 밤을 보낸다. 이날의 경험이 훗날 뤼시가 바흐를 ‘내게 무언가를 주는 것들’로 받아들이고 ‘뚱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늑대의 죽음 뒤로 뤼시의 가출은 시작되었고 가는 곳마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내 경찰들을 따돌렸다. 


뤼시의 가출 행동을 우리 사회로 가져와 생각한다면 심각한 탈선일 텐데도 소설 속에서 이 일은 그냥 가벼운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의 행동에 다소 엄격한 편인 나조차도 뤼시의 가벼운 마음에 중독되는 건지 그냥 그럴 수도 있고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열일곱 살은 아직 어린 나이란다. 그래도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기쁘다. 나는 그게 좋아. 아주 좋은 신호야. 우리가 너를 잘 키웠고, 오로지 자기 마음에만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쳤다는 얘기니까.」_p98

 

겨우 열일곱 살에 결혼하려는 딸의 결정 앞에서 뤼시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자기 마음에만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 옳은 일인가? 물론 어떤 결정에 있어서 자기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만 ‘오로지’와 ‘(자기마음에)만’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가르침대로 뤼시는 자기마음에만 귀를 기울여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로망’의 곁을 떠났다. 그 과정 또한 내가 보기에는 잔인했다. 동동 떠다니는 듯 가벼운 마음을 지닌 뤼시는 그만큼 자유로워 보였다. 여성으로 절대 그럴 수 없는 시대에 대한 반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일까? 결혼이라는 방에 들어서면서 얻게 되는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이름에 갇힌 여성들의 영혼을 해방해주고 싶은 보뱅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여전히 여성이 보이지 않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_p120


뤼시가 자신을 잃고 타인에 이끌리는 삶으로 치우치려 할 때, ‘자신의 수호천사’는 온힘을 다해 뤼시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이끌었다. 뤼시는 정신병원 입원을 앞둔 할머니를 모시고(우연히 친해진 보호자가 없는 양로원의 할머니다)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뤼시를 통해 자신의 수호천사를 만나고 완전한 자신을 만난 할머니는 익숙하지 않지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한다. 김연덕 시인의 말처럼 ‘주인공의 가벼움이 타인의 가벼움을 가능케 한’ 것이다.


나는 간혹 너무 무거운 사람이다. 뤼시에게서 가벼운 마음을 조금 얻어 갈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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