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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7월
평점 :
「슬픔과 괴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터놓으면 의미가 달라지거든. 거기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지.」 _215쪽
많은 사랑을 받고 영화화되었던 이치조 미사키 작가의 전작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고등학생인 가미야 도루와 히노 마오리의 풋풋하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사고로 인해 선행성 기억장애를 앓게 된 히노 마오리는 사고 이후 매일 리셋되는 하루를 맞이하게 됐고 그런 마오리 곁을 늘 지켜주는 친구 와타야 이즈미가 있었다. 이 책 『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는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지만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첫사랑이 친구의 연인인 안타까운 와타야 이즈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작을 보지 않은 상태로 보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지만, 순간순간 궁금증이 밀려온다. 이즈미가 가미야 도루와 첫키스를 했다는데, ‘이즈미가 못 참고 해버렸을까?’, ‘가미야도 이즈미에게 끌리게 됐을까?’라거나, ‘이즈미의 마음을 어디까지 노출했을까?’와 같은 질문이 퐁퐁 샘솟았다.
대학생이 된 와타야 이즈미는 ‘짜증 나게’ 다정한 모습이 첫사랑 ‘가미야 도루’를 닮은 후배 ‘나루세 도루’에게 고백받은 날, 그에게 사귀기는 하지만 ‘정말로 날 좋아하지 말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건다. 선행성 기억장애로 가미야 도루의 존재 자체를 잊고 사는 아모리와 달리 이즈미는 늘 가미야 도루 속에 갇혀 있기에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즈미는 누가 봐도 이즈미를 좋아하는 티가 줄줄 흐르는 나루세에게 결국 이별을 고한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위하고 좋아하고 아끼는 아모리와 이즈미의 우정은 인상 깊다. 하지만 맹목적이다 싶은 정도로 상대방만 위하는 우정이 옳을까? 아모리가 매일 아침 눈 뜨며 자신의 기억장애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만도 힘든데, ‘연인의 죽음’이라는 고통까지 주고 싶지 않다며 아모리의 일기에서 자신을 지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이즈미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설령 죽음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죽음으로 끝난 사랑은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_203쪽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 사실 자체를 숨겨야 한다면, 슬프고 아프다는 것마저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깊숙이 꽁꽁 싸매둔다면 슬픔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들어갈 것이 뻔하다. 그런 이즈미에게 도루의 누나가 한 말은 큰 위로가 된다.
「슬픔과 괴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터놓으면 의미가 달라지거든. 거기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지. 그러니까 언제든지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정해놔. 가령...., 나라든지.」 _215쪽
이즈미에게 차인 뒤 어느 날,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되는대로 살아온’ 나루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한때 좋아했던 ‘사진’에 다시 도전한다.
「갖고 싶었다. 특별한 무언가를 지금, 갖고 싶어서 결딜 수가 없었다.」 _243쪽
얼마 전에 첫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다 적당히 잘하고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줄넘기도, 태권도도, 피아노도, 기타도..”
첫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해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르면 멈춰버리는 느낌을 나도 받아왔고 스스로 그런 면을 인지한다는 것이 긍정적일 거란 생각에 그 말이 반가웠다. 어떤 일에서든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가 들게 마련이다. 그 고비를 회피해버리면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저 적당히 하는, 평범한 자리. 늘 큰 욕심이 없고 착한 첫째의 모습에서 나루세가 보였다. 갖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욕심은 때론 굉장한 원동력이 된다. 그런 욕심이라면 좀 부려도 좋을 것이다.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이야기지만, 내게는 너무 소설 같은 사랑 이야기보다는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또 자신이 진정 원하는 모습을 찾고 노력하는 과정이 더 인상적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