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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인간 - 진짜 인간으로 나아가는 인문학적 승진 보고서
장재용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2년 6월
평점 :
“자유는 무한의 영역이고 인간은 유한의 세계에 있다.” _139쪽
나의 첫 직장은 ‘00아동·청소년발달연구소’였다. 소장님 한 분과 네 분의 치료사 선생님들이 계셨고 일을 배워가면서 하느라 긴장과 스트레스가 심했으며, 대해보지 않았던 몸이 큰 중증의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낯설고 학부모님들과 상담은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밝아지는 모습은 큰 힘이 되었지만 그런 성취감을 느낄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았고 내 몸뚱아리에서 가장 약한 위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자취하면서 몸은 아프고 일은 힘드니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책임감과 뭔지 모를 ‘오기’같은 걸로 나는 버텼다. 이런 내 모습을 지금 저자가 봤다면 아마 디오게네스를 데려와 “무엇 때문에 그러고 사는가?”, “생긴 대로 살아라.”(네 의지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하고 한마디 할 것이다.
「돈을 받고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굴욕들의 합이 월급이다.」 _7쪽
일한 댓가로 받는 월급은 월급쟁이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다. 가수 스텔라 장의 노래 제목처럼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인 사람들도 많지만 말이다. 월급이 ‘무수한 굴욕들의 합’이라니 너무 비관적인 거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직장다운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 반박할 수 없었고 뒤에 그의 글을 읽으며 일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내가 모를 굴욕의 합을 키워가고 있을 우리 집 가장이 떠올라 미안하고 고마웠다.
S그룹에 입사해서 초고속 승진으로 최연소 팀장을 달기까지 참 많은 굴욕들을 이겨냈을 저자이기에, 평소에 늘 책과 함께했던 그였기에 ‘회사인간’에 대한 회의와 ‘회사인간’을 평범한 평균 군상으로 만들어 부려먹는 사회 시스템을 지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히히만’에 회사인간을 포개어 말한다. 나치의 지시에 따라 맡은 직무에 성실했다는 그와 조직의 명령체계에 있었고 성실하게 수행한 저자 자신은 표면적으로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노예의 두 가지 자질(스스로 숙고해서 결정하는 능력이 없고, 앞날을 예견하며 선택하는 능력이 없음)을 이야기하며 ‘회사인간’을 ‘내 감정, 나의 사유, 나의 취향의 소멸’과 연결짓고, ‘월급쟁이에게 자유는 스스로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민주적 절차로 전체주의를 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 회사」, 「회사인간 금욕주의자는 모두가 돌진해마지않는 AI, 인조인간을 지향한다.」등의 말들로 월급쟁이 ‘회사인간’을 들들 볶는다.(사실은 자신을 볶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인간’에서 탈출했을까?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저서 『에티카』의 핵심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서 저자는 위로를 얻고,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날개가 너무 길어 오래 날 수 있지만 땅 위에서는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끌며 우스꽝스럽게 걸어다녀야 하는 새 알바트로스에게서 용기를 얻는다.
회사, 세 살배기 아들, 왜소한 몸에 썩 좋지 않은 체력, 부상당한 발목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한다는 그를 모두 말렸다. 그는 3일 꼬박 입술이 부르트도록 고민한 끝에 도전을 감행한다. 이제 날개를 펴고 날아 보기로, 자기의 꿈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사직서와 휴직서를 함께 제출하고 기다린 그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나를 가슴뛰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누군가 평생하지 않을 고민을 하게 되는 사람은 대부분 인생의 큰 위기를 겪어 본 경우거나 신앙적 깨달음을 얻거나, 책을 통해서 일거라 생각한다. 그에게 ‘회사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켜 준 것 역시 니체, 스피노자, 장자, 라깡, 헤겔 등 수많은 철학자의 저서이다.
이 책을 본 ‘회사인간’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누군가는 S그룹 팀장까지 해봤으니 하는 소리 아니냐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할지도? 어쩌면 “그래! 진짜 지긋지긋한 이 회사 떼려치우고 나도 떠나고 싶다!”하고 흥분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이 책은 사유하게 한다. 내 삶에 대해, 더 크게 ‘회사인간’의 평범함과 절제와 정해진 매뉴얼 대로,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일하게 만드는 시스템 자체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