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까마귀의 소원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6년 2월
구판절판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구해주고 보답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내용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기쁨에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기회를 날려버린 사람들도 있고 (코에 붙은 소시지나 먹으세요~) 그 소원을 잘 사용해서 해피한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마루벌의 '까마귀의 소원'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이끌어갑니다.
저희 딸이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3-4세였던 것 같지요. 그 때 현암사의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 를 읽고 소개된 좋은 책들을 사서 읽어주던 때였어요. 그제서야 알게 된 단행본의 바다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던 찰나였지요.
우선은 펜끝으로 그린듯한 세밀한 그림에 놀랐고
그 다음에는 동물들에게 입힌 화려한 드레스에 놀랐고
세번째는 책을 보던 아이의 반응에 놀랐지요.
내용을 들으며 아이가 점점 긴장을 하더니 마지막 부분에서는 몸에 힘이 들어가고 맨 마지막 장의 결말부분에서 숨을 몰아쉬며
"아... 정말 잘됐다."라고 하며 안도을 하더라구요. 그걸 보며 '어? 이 녀석 봐라. 제대로인데?'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나요.
저희 딸아이가 정말 온몸으로 이야기를 느꼈던 책이라 애착이 가는 책입니다. 아이도 물론 이 책을 많이 보있구요 지금도 잘 봅니다.
이 책은 언제 읽어도 그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숨이 멈춰집니다. 그리고 나타나는 마지막 페이지의 장관에서는 항상 귓가에 "촤촨~"하는 오케스트라의 반주(늘 갈등의 해소부분에서 나오는 그 배경 음악)가 들리는 듯합니다.
낡아 빠진 깃털을 가진 늙은 까마귀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까마귀들이 원래 반짝이는 걸 좋아한다죠)
그는 밍크 아가씨가 오라고 하지만 자신의 추레한 모습을 보이기 싫고 돈도 친구도 없어서 주머니 쥐의 생일잔치에 참석할 생각을 안하죠. (밍크 아가씨의 드레스... 넘 예쁘죠? 동물 본래의 모습에 드레스를 입혀도 저렇게 그림이 됩니다)
그 날 저녁 늙은 까마귀는 덫에 다리가 걸린 백조를 구해줍니다. 백조는 작은 파란색 상자에 담긴, 소원을 이루어주는 별가루를 선물로 주게 되고 까마귀는 젊고 활기찬 새가 되어 빛나는 깃털을 갖게 해달라는 서원을 생각합니다. 부자도 되고 아내도 얻게 될 생각에 마냥 가슴이 부풀지요.
(깃털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섬세한 그림이 시선을 붙잡습니다. 별가루 상자에서 나오는 빛살 하나하나가 예뻐요.)
그런데...
그의 앞에 차례대로 다른 동물들이 나타납니다.
유독 짧은 꼬리를 가진 작은 생쥐, 아이들에게 벌레과자를 사줄 돈도 없어 주머니 쥐의 생일 선물을 사지 못해 슬퍼하는 개구리에게 별가루를 나누어 줍니다. 그들의 안타까움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는 까마귀의 마음이 보이는 듯합니다.
(개구리 그림이 아놀드 로벨의 그림과 비슷하죠? 모리스 샌닥의 세밀화 그림도 살짝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저러나 토끼 아가씨는 그 발에 발목 스트랩 샌들도 신으셨습니다. 고급스러운 비단 드레스에 장식용 레이스, 진주 목걸이까지... 럭셜래빗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아가씨들 두꺼운 목들은 어쩔꺼냐고요~~)
친구가 없는 토끼 아가씨를 만나 상자를 열어보니 별가루 남은 것은 꼭 한줌. 살짝 닫으려는데 토끼 아가씨가 뭐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그마저도 모두 주고 맙니다. 실망감에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침대에 쓰러져버린 늙은 까마귀... 잠깐의 행복했던 설레임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허탈하기만 합니다. 아깝고 속상하겠지요?
다음날 주머니 쥐의 생일잔치에 보이는 동물들은 모두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작은 생쥐의 긴 꼬리에는 드레스와 어울리는 리본이 장식되어 있고
개구리의 아이들은 행복한 얼굴로 선물을 들고 있고 개구리씨도 근사한 선물을 주머니 쥐에게 드리고 있습니다.(선물을 건네는 폼으로 보아 주머니 쥐는 마을 유지 내지는 고위 공직자인가봅니다.)
친구가 없어 슬퍼하던 토끼 아가씨는 멋쟁이 남자친구와 즐겁게 춤을 추고 있구요
멋진 그림, 공이 들어간 그림이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이끌어갑니다. 동물에 옷을 입힐 때 어느 정도는 옷에 맞게 몸을 가감을 하는 그림이 많은데 이 그림은 정말 오묘하게 동물의 몸에 옷을 맞췄습니다. 만일 이 그림들이 없었더라면 이 그림책은 매력포인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었을까요? 상상을 뛰어넘는 그림이 흔치 않은데 이 책은 상상보다 그림이 더 이름다운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온 까마귀는 피곤한 몸을 의자에 싣고 파란 별가루 상자를 열어보며 말합니다.
"나도 소원을 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자를 오래 바라보는 동안 달이 떠오르고 그 달빛에 작은 알갱이 하나가 반짝입니다. 마지막 별가루 한 알입니다.
까마귀는 간절히 말합니다. "나를 다시 젊고 활기찬 새로 만들어 주렴"
다음날 아침, 해가 막 떠오르려고 할 때 까마귀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아~ 하는 탄성이 나올만 합니다.
나의 마음도 까마귀의 등을 타고 같이 새벽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상쾌합니다.
멋진 그림, 멋진 이야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