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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세계 ㅣ 파랑새 그림책 167
모디캐이 저스타인 지음, 유진 옮김 / 파랑새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말에는 각자 빛깔과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제게 밤이라는 말은 포근한 무채색에 진한 카페라떼같은 맛이에요. (물론 밤잠 자주 깨는 어린 아가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밤이란 공포탄이 팡팡 터지는 불꽃과 같이 치열한 색에 맵디 매운 눈물맛이겠지요)
또 새벽이라는 말은 딱 라이마의 '새벽'에 나오는 그 어슴프레한 청색에 살짝 얼어 씹으면 파삭하고 깨지는 얇은 얼음의 맛이구요.
그럼 동이 트는 바로 그 순간은 어떨까요?
그 순간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밤의 세계'를 넘겨보세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그 중 책을 다 챙겨 소장하고 싶은 작가들 중 한 분이 바로 모디캐이 저스타인입니다.
사각거리는 펜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 분의 그림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둘쨰 딸과 가끔 가는 광화문 큰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습니다. 모디캐이의 신작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했지요.
책커버를 들춰보면 소년이 고양이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인트로처럼 저녁 석양을 보며 소년이 고양이에게 인사합니다."실비야 잘자"
그리고 시작되는 밤의 세계...
"야옹" 고양이가 소년을 깨웠어요
어두운 그림자같은 실비가 소년을 자꾸만 불러요. 나가자고 앞장을 섭니다.
조심스럽게, 다른 식구들이 깨지 않도록 소년은 발뒷꿈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요.
소년과 실비만 빼고 모두 잠들어 있어요.
실비는 소년을 재촉합니다.
"얼른 나가자. 금방 올거야!" "거의 다 왔어 서둘러!"
'이슬이 촉촉이 젖은 풀.
따뜻하고 달콤한 공기.
부드럽게 감싸는 어둠.
이게 바로 밤의 세계에요.
밤의 세계는 그림자로 가득해요.'
몇페이지를 넘기며 부드러운 어둠을 느껴봅니다.
빛이 우리에게 뛰는 심장을 느끼게 해준다면 어두움은 안정감을 덮어주는 것 같아요.
마치 해리포터의 투명망토처럼 우리를 숨겨줍니다. 그림자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에요.
수런수런 그림자들이 소곤거려요. "거의 다왔어!", "저기 온다! 거의 다왔어!"
'무엇이 오고 있길래 거의 다 왔다고 저렇게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걸까?'
책을 넘기며 덩달아 저도 기대가 되고 긴장도 되더라구요.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
이야기를 읽어주면 아이들도 "뭔데? 뭔데?" 할 것 같아요.
그렇게 기다림은 한페이지 더 이어집니다.
"오고 있어!" "온다, 온다!" "거의 다왔어. 거의 다왔어!" "오고 있어!"
그리고 나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빛이에요. 이 아이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한구석에서 조심스럽게 나오나 싶었던 빛이 어느샌가 세상을 밀어올리고 있어요.
그래요. 빛이 있어야 어둠이 편안하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놀랍겠지요.
빛이 물들이는 세상입니다. 매일 매일 세상은 창조되고 있어요.
이렇게 동이 터오른 후의 색깔은 모든 것의 빛깔이고 그 맛은 찬란할 것 같아요. 진짜 그림 넘 멋지지 않나요.
서점에서 전 잠시 경이로움에 빠졌었어요. 게다가 이 책의 색감이란! 아...이건 화면이 아니라 진짜 실물로 봐야 되요 ㅎㅎㅎㅎ
작가가 보내는 아침인사에요. "아름다운 아침이에요.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그 뒤로 그림자들은 편안히 쉬고 있어요. 아침이자 밤이네요.
밤부터 동트는 아침까지의 매일 벌어지는 일을 경이롭게 보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