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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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신문에 정기적으로 연재하던 칼럼 등 여러 지면에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제목부터 ‘죽음’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책은 꽤나 유쾌하다. 내용이 짐짓 심각해지려 할 때마다 저자 특유의 시니컬함과 유머러스함이 발동되어 파핫, 하는 헛웃음 내지 박장대소를 자아내게 한다. 저자 말마따나 리듬감 있는 글쓰기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재미 없는 글은 오래 읽기 힘든데,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학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현안이나 영화에 대한 글들 모두 재미있게 읽혔다(소개된 영화들은 내가 아직 못 본 것들이 많아 그것들을 감상한 뒤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입소문을 타고 웹에 퍼날라져 유명해진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비롯,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 <개돼지 사태와 관련하여 교육부가 할 일> 등 제목만 보아도 흥미로운 글들이 많다. 저자는 ‘OO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거듭해서 던지며 대상의 의미에 대해 반문하고 고찰해보기를 제안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이건만, 우리는 삶의 많은 시간 동안 그 사실을 망각하려 애쓰고 있는 것 같다. 때때로 덧없는 욕망과 정념에 사로잡혀 버둥거릴 때 죽음을 떠올림으로써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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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리커버 특별판)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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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 무렵 TV에서 방영해 준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군인들, 탱크, 몽둥이와 군홧발에 얻어맞고 쓰러지는 시민들. 그 장면들은 어렴풋한 이미지로 남았다. 훗날 그것이 5.18의 자료 화면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배경과 참상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 후에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왜 막을 수 없었을까.

- 이 책은 흔히 5.18이라 부르는 광주 민중항쟁을 기록한 책이다. 1980년 10월부터 바로 자료 수집에 착수하여 5년 만에 책이 나오게 되었고, 당연히 금서였던 터라 지하세계의 베스트셀러라고 불리웠다. 외신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 그리고 이 책을 수많은 사람들이 몰래 돌려 보며 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철저한 보도통제와 언론탄압 속에서 묻혀 있었던 진실은 그렇게 드러나게 되었고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 2017년 발간된 전면개정판은 방대한 자료를 더욱 보강하고, 그 이후 밝혀진 사실들을 통해 역사적/법률적 성격을 명확히 하였다고 한다. 자료와 증언에 기초하여 담담한 문체로 사건들을 빠짐 없이 기술하면서도 전두환과 신군부, 그 동조자들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고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책의 중반부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항쟁의 경과 부분인데, 읽기가 괴로울 만큼 끔찍하고 참담했다. 작전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마치 짐승과도 같이’ ‘살인면허라도 받은 것처럼’ 평범한 시민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 폭행하고 시체처럼 질질 끌고 갔다고 한다. 그 만행을 보고 나였다면 참을 수 있었을까? 함께 일어나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너무도 큰 공포감으로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조차 없었을까?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나는 모른다.

- 기간이나 피해자 규모 면에서 제주 4.3이나 한국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5.18 역시 앞선 사건들과 동일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세력이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이념을 앞세워 군인과 시민들을 서로 증오하게 만들고 죽이도록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 미국은 이미 신군부의 계엄 확대와 군사 이동, 광주에서의 만행을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동의, 승인하였다는 점에서 5.18의 종범이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것도 이 책의 역할 중 하나이다. 역사의 칼끝은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며 책임자인 전두환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그가 원혼들과 유족들 앞에 무릎꿇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계속해서 심판대로 끌어내야 한다.

- 우리가 당연한 듯이 누리는 오늘의 자유를 있게 한 오월의 광주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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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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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서 카트가 사라질 때 나는 죽음이 미소 짓는 광경을 본 것 같았다.‘

‘나는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수술방으로 들어설 때 이곳이 ‘막장‘이라 여겼다.‘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그 때였던 것 같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다가 온 몸에 총상을 입고 죽음 직전에 있던 석해균 선장을 긴급 이송하여 살려낸 사건. 그 후로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의 얼굴을 종종 지면과 방송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때마다 사람들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체념한듯 냉소를 보내기도 하는 것 같았던 사람. 마치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진 것 같은 이였다.

이 책은 이국종 교수가 외과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이 땅에 정착시키려 고군분투한 지난 십수 년 동안의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단지 이국종이라는 의사 한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이국종은 자신과 함께 최전선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구조와 의술에 몸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행적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전형적인 ‘이과 남자‘여서 글솜씨가 부족하다며 겸양을 나타내지만,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몸부림치며 싸워온 이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절박하고 생생한 문장들이 나왔을까.

사실 이 책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이국종 교수가 현장에서 맞닥뜨렸을, 지금도 맞닥뜨리고 있을 좌절과 절망의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무리 호소하고 매달려도 바뀌지 않는 의료계와 정치권, 일반 시민들. 그들의 무사안일주의, 이기주의, 그리고 무관심. 분노는 점차 무력감으로, 급기야는 체념으로 바뀌게 된다.

어깨가 부서지고 다리가 망가지고 한쪽 눈을 거의 못쓰게 될 정도로 개인을 한계점까지 밀어붙여야 간신히 유지되는 시스템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읽는 내내 한숨과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게도 끝이 올 것이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태어난 이 중증외상센터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 몸은 조금씩 부서져가기 시작했다. 끝이 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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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연대기 - Knowing God’s Creation
김민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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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거대한 두 축인 종교(기독교)와 과학은 오랜 세월 대립해 왔다. 이른바 과학시대의 도래로 종교는 그 권위를 끊임없이 도전받아 왔고 진화론이 처음 등장한 19세기 이후 창조론 Vs. 진화론의 대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려면 반드시 진화와 창조, 두 가지 가설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걸까?

<창조론 연대기>는 고등학교 1학년인 준과 수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창조론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나가고 이론적 설명을 덧붙이는 만화다. 김민석 작가는 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난해한 이 주제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음슴체와 은어를 남발하는 유쾌한 청소년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다가도 학자들의 주장과 이론에 대한 진지한 설명이 나올 땐 심각하게 곱씹어 보게 된다.

보통 ‘창조론‘ 하면 진화론을 부정하고 반박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이 책은 창조론에도 다양한 관점들 - ‘진화적 창조론‘, ‘오랜 지구 창조론‘, ‘젊은 지구 창조론‘ - 이 있음을 소개한다. 또한 성서의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을 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각각의 주장에는 어떤 과학적 오류가 있는지도 밝히고 있다. 특히 일반에서는 유사과학으로 여겨지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정론처럼 여기는 창조과학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설득력 있게 비판하고 있다. 딱딱한 이론을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그림을 통해 들려주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과연 신앙과 과학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신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과학적 이성 안에서 사고할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해본 사람에게라면 이 책이 어느 정도 해답이 될 수도, 아니면 더 깊은 고민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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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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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연속된 흥행과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이제는 유명 감독이 된 지 오래인 박찬욱이지만, 그도 한때는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써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박찬욱의 몽타주>는 일찍이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했던 박찬욱 감독이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파트 1에서는 가족이나 신변잡기, 그의 음악 취향 등을 엿볼 수 있는데 역시나 영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파트 2는 <공동경비구역JSA>와 복수 3부작 등 자신이 감독한 영화와 관련된 인터뷰들을 모았다. 파트 3에서는 자신이 사랑한 B무비들, 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이나 마틴 스코시즈 등의 작품에 대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워낙 달필인데다 영화에서도 종종 보이는 감독의 개그감이 빛을 발한다. 그동안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즐겁게 보아온 팬이라면 그의 작품세계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있는 텍스트로서도 유용할 테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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