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더 마블 맨 - 스탠 리, 상상력의 힘
밥 배철러 지음, 송근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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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세계의 수많은 작품들을 창조한 작가이자 마블의 아이콘이었던 스탠 리의 전기다. 원제는 <Stan Lee: The Man Behind Marvel>. 스탠 리가 작고하기 1년 전에 발간된 책이어서 2016년 무렵까지 그의 일대기가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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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직후, 점점 거세지는 박해를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태인들이 많았는데 스탠 리의 부모도 그들 중 하나였다. 뉴욕에서 태어난 스탠 리는 경제 공황 시기에 10대를 보냈고 생계를 위해 고교 졸업 직후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는데, 외삼촌이 다니고 있는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 회사는 다름아닌 마블 코믹스의 전신인 타임리 코믹스였다. 입사 후 스탠은 ‘캡틴 아메리카‘를 만든 거물 작가였던 조 사이먼과 잭 커비 콤비의 조수로 일하며 심부름 같은 잡일을 도맡아 한다. 사이먼-커비를 통해 만화책 작업을 어깨 너머로 배운 스탠은 교정 작업을 시작으로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간다. 비록 2쪽 짜리 여백 귀퉁이를 메꾸는 작업이긴 해도, <캡틴 아메리카> 3편을 통해 그는 ‘스탠 리’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하며 작가 데뷔를 한다.

그러던 몇 년 뒤, 사이먼-커비 팀은 경쟁사인 DC 코믹스 등 다른 출판사의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타임리에서 해고된다. 갑작스레 만화책 부서의 책임자가 된 스탠 리는 메인 작가, 편집장, 아트 디렉터 등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며 특유의 수완으로 빠르게 업무를 장악해 나간다. 2차대전이 발발해 스탠 리도 징병을 피하진 못했지만 군복무 기간 동안에도 운좋게 미국에 남아 출판사 업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종전 후 다시 출판사로 복귀한 스탠은 작가와 조직 관리자를 병행하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한 삶을 누리며 결혼도 한다. 그러나 곧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낀다.

1940~50년대는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에 의해 만화책이 비판을 받고 유해 매체로 낙인찍혀 만화 시장이 위축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성만 따지는 경영자 마틴 굿맨과의 갈등이 심화되자 퇴사를 고민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도전해보라는 격려와 권유를 한 건 그의 아내 조앤이었다.

스탠은 잭 커비를 다시 고용하여 <판타스틱 4>를 탄생시키고, 스티브 딧코와 함께 <스파이더맨>을 만들어 성공을 거둔다. 헐크, 토르, 아이언 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 마블 세계의 중심축이 될 영웅들을 속속 만들어내고 히트시킨다. 스탠은 여러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며 현재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법과도 유사한 ‘마블 작법(Marvel Method)’을 고안하기도 한다.

그 후로 마블은 수십 년 동안 여러 위기를 겪으며 부침을 거듭하지만, 스탠 리는 대중이 원하는 것과 마블이 가야할 길을 정확히 읽어낼 줄 알았다. 8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수차례 이사진과 경영진이 바뀌면서도 스탠만큼은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미 스탠 리는 하나의 아이콘이자 브랜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블은 스탠의 오랜 꿈대로 거대한 영상 산업,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되고 그 이후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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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내 서점 사이트에는 경제/경영서로 분류되어 있기도 한데, 경영인으로서의 스탠 리에게 배울 점을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스탠 리는 작품을 구상하고 기획하거나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켜줄 파트너와의 협업에는 천재적이었지만 언제나 경영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었다(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건 사업체는 동업자의 사기로 망하는 흑역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전기를 통해 발견한 스탠 리의 탁월한 점들은 이런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미래를 내다보는 눈, 기존의 창작물들과 차별화되는 과감한 시도,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의 절묘한 균형, 노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던 열정과 끈기.

또한 만화가 일회성 오락거리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사회문제와 깊은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교육적, 문화적 가치를 담을 수 있다는 믿음과 노력이 있었다. 스탠 리가 수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 인용

만화책을 읽으며 그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도 있었지만, 스탠은 다르게 생각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는 메시지 없는 이야기는 영혼 없는 사람과 같다고 말했다.

“인간 내면의 선함을 믿는 사람으로서, 그 핀이 사람들에게 미국이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우주선에 함께 탑승한 동반자들이며 서로를 존중하고 도와야만 합니다.”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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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노엘
리 베르메호 지음, 홍지로 옮김 / 시공사(만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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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코믹스의 레전드 짐 리가 직접 발굴하고 육성한 만화가 리 베르메호의 작품이다. 짐 리가 서문에서 보낸 찬사처럼 실로 엄청난 작화를 보여준다. 페이지 한 장 한 장, 아니 컷 하나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컬러리스트 바바라 차르도의 환상적인 채색도 완성도 높은 작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사실 스토리 자체만 놓고 보면 특출나게 재미있지는 않다. 이 만화의 독특한 점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살짝 비틀어 멋진 배트맨 코믹스로 재창조했다는 것이다. 고약한 스크루지 영감 역할은 배트맨이 맡았고, 원작의 밥 크랫칫은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직원이 되었다. 원작과 같이 배트맨은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환영을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배트맨 세계관 속에서 표현되는 게 너무 기발하고 재미있다. 크리스마스에 더없이 어울리는 또 한 편의 배트맨이다.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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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다크 프린스 차밍 - DC 리버스 시공그래픽노블
엔리코 마리니 지음,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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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만화의 거장이 그린 배트맨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구입했다. 마리니는 이탈리아 만화가인데 배트맨 만화를 그리는 것이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배트맨 만화에 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잘 이해하고 만화를 그린 것 같다. 

배트맨, 조커, 할리퀸, 캣우먼 등 시리즈의 단골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말투나 행동들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그대로다. 요즘의 만화는 디지털 작업이 들어가지 않은 걸 보기 힘든데 전부 수작업으로 완성한 아트웍이 따뜻한 결말의 스토리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배트맨의 아들이나 딸 이야기는 코믹스에 종종 나온 터라 그다지 새롭지는 않지만 브루스 웨인의 2세로 추정되는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다. 스피디한 전개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지만 나름의 반전을 감춰 뒀던 결말은 맥빠지고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역동적인 동세와 풍부한 표정의 그림은 나무랄 데가 없다.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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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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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이면서 현직 판사이기도 한 문유석이 독서를 소재로 쓴 에세이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온 그가 자신의 독서편력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문열, 무라카미 하루키, 시드니 셀던, 위화 등등의 이름이 열거되고, 왜 그 책들에 빠지게 됐는지, 책을 고르는 기준과 자신만의 독서법은 무엇인지, 책에서 얻은 것들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탁월한 글솜씨로 재미나게 들려준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읽었던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나 역시 그 시절에 만났던 책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문유석은 자신을 ‘성공한 덕후’라 일컫는다. 자신은 진성 책 덕후였으며, 책으로 놀기의 끝은 결국 책을 쓰는 것인데 작가가 되었으니 그렇다는 말이다. 또, 자신의 독서는 궁극적으로 ‘쾌락’을 지향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꼭 말초적인 쾌락만을 뜻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쾌락일 수도 있고, 잠시라도 타인의 입장이 되어 봄으로써 내가 사는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감지 않겠다는 자기 위안일 수도 있을 테다. 가벼운 톤으로 시작해 종종 문유석 작가 특유의 유머가 튀어 나와 킬킬거리며 웃게도 하지만, 때로는 자못 진중한 태도로 책과 현실 세계의 구조에 대해 논하기도 하는 책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이 책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자문해 본다.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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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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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애플의 아이폰이 첫 선을 보인 지도 만 10년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스마트폰 붐은 뒤늦게 시작되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얼마나 변화시켰는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대는 어떤 사고를 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런 점들에 주목하며 기대감을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선 저자는 포노 사피엔스를 ‘정보 선택권을 쥔 인류‘ 라고 정의한다. 매스 미디어를 위시한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정보가 아닌, 스마트폰을 통해 스스로 선택한 정보만을 소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언론은 과거와 같은 절대적 권력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되었노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정보 전달 체계와 권력의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생각이 변화되었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도덕, 새로운 상식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이나 젠더 간 갈등이 대표적 현상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의문은 ‘과연 이것이 온전히 스마트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가?‘ 였다. 스마트폰의 출현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이미 30여년 전 인터넷 태동기 때부터, 혹은 블로그 등 1인 미디어의 등장 즈음에 떠오른 담론 아닌가? 물론 스마트폰의 대중적 보급으로 인해 그러한 현상이 급속도로 빨라졌다고 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 이후 발생한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문명과 산업의 발전을 베이비붐 세대 - X세대 - 밀레니얼세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인류를 설명하기에 세대론을 가져왔는데, 또다시 의문이 인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스마트폰과 SNS에 익숙한 밀레니얼세대가 새로운 주력세대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이렇게 천명한다. ‘자본과 글로벌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대의 리더는 이제 밀레니얼세대입니다.‘ 과연 그러한가?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 밀레니얼은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스마트폰과 SNS를 잘 활용하면 거대 자본과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리더가 될 수 있나? 이미 기득권층은 오랜 세월 축적한 부와 자신들에게 유리한 체제를 근간으로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의 등장만으로 그런 구조가 일시에 무너질 것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과의 괴리만 느껴지는 이야기다.

한 술 더 떠  기성세대에게는 ‘스마트폰으로 쇼핑도 하고 은행 업무도 보고 유튜브도 보며 새로운 문명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느끼고 체험하라‘고 조언한다. 새로운 문명을 배우고 익혀서 밀레니얼세대와 호흡하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잘만 활용하면 어린 세대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실소가 나왔다. 이런 류의 조언들은 책의 후반부 분량을 채우는 데도 쓰이고 있는데, 회사 단톡방에서 이모티콘을 적절히 활용하라는 식의 얘기들이다.


또한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의 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를 법과 규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이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비판 여론을 낳았고, 법과 규제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합당한 추론인지 스스로 검증해보지는 않은 것 같다.

법과 규제가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뒤떨어져 있는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해당 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심한 경우도 있을 테고, 국회에서 입법이나 개정이 지지부진한 탓도 있을 것이다. 혹은 국가행정 시스템과 인력 부족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이런 요인들을 무시한 채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가 강화된 것은 신기술의 부작용을 우려한 기성세대의 거부감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저자의 관점이 가장 실망스러운 대목은 다음과 같은 문단에서 나타난다.

‘경제 이슈를 보면 대기업 및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권익 다툼만 한창입니다. 이런 이슈를 다른 나라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데 말이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충돌은 미중 간에도 사라진 이슈입니다. 이념의 충돌이 아닌 시장의 충돌, 무역전쟁만이 뜨거운 상황입니다.

(중략)…이젠 권력의 힘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전히 중심은 정치이고 권력입니다. 그래서 화두가 되는 경제 정책을 보면 대기업의 계열사 매각, 중소기업과의 이익공유제, 최저임금 50퍼센트 인상, 주 52시간 근무 제한, 소득주도성장 등 온통 정치권력을 이용해 시장을 이념적으로 컨트롤하겠다는 이야기뿐입니다. 혁명 시대의 생존 전략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노사 간의 갈등을 권익 다툼이라는 말로 뭉개 버리고 마치 양자가 대등한 구도로 대립하고 있는 것인 양 묘사한다. 저자는 사회 구성원 간의 불평등 해소, 분배의 정의 실현은 정치적 레토릭일 뿐이라고 본다.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무한 경쟁 시대에는 국가의 생존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나는 이 분이 조.중.동 사설의 열렬한 애독자라는 것에 500원 걸겠다.


그 외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사례들이나 논리적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지는 않겠다. 처음 책장을 열기 전에는 기술의 진보와 인류에 대한 인문학적, 심리학적 접근이 담겨 있길 바랬는데 너무 큰 기대였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시장 만능주의, 기술 만능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공학자의 수다를 몇 시간 동안 들은 느낌이다. 정리되지 않은 내용과 근거가 빈약한 주장들, 그나마도 동어반복이 많아 쉬이 피로해진다. 다음에는 좀더 검증된, 통찰이 담긴 책을 만나길 바라며. (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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