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기까지 한 뉘우침은 처절한 자기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내면의 깊이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고 큰 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뉘우치기가 힘들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뉘우침은 왜 그토록 중요할까? 누군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우리는 왜 그가 뉘우쳤는지 여부에 신경 쓸까? 뉘우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많은 사람들은 매우 큰 차이가 생긴다고 믿는다. 뉘우친다는 것은 자기 인식의 여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여정을 어찌나 중요시하는지 그저 범죄자가 뉘우쳤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많으며 심지어 그가 뉘우치기만 한다면 용서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러 종교에서는 범죄자가 이 같은 내면의 여정을 거쳤는지 여부에 따라 내세에서의 운명이(그가 구제받을 것인지, 천국과 지옥 중 어디에 떨어질 것인지)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방인』에서 〈데드 맨 워킹〉에 이르는 여러 작품들이 뉘우침을 향한 여정 혹은 반反여정을 둘러싸고 펼쳐진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뉘우침 자체보다도 자기 인식의 여정이다(『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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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추구하던 일의 의미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은 순간

나는 그날 밤 간이침대에 누운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머리 위 나무 서까래들을 응시하며 자신의 세계가 재배열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데이비드를 상상했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너무나도 시답잖게 여겼던 어머니와 이웃들, 학우들을 설 득할 수 있는 말을 마침내 여기서 발견한 것이다. 데이비드가 손에 꽃을 들고 해왔던 일들은 "무의미"하거나 "소모적"이거나 "야심 없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 저명한 아가시가 정의한바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 활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의 계획, 생명의 의미, 어쩌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길까지 해독해내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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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제일 많이 곱씹어본 문장. 평소 고민하던 주제와도 맞닿은.

"우리는 타인의 삶이 각자 너무나 고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잊는다. 어떤 주관적 세계는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전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 보편의 삶에 대한 해석이 수도 없이 주어져 있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한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처럼, 그 보편의 해석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세계를 설명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 여기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생겨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우리는 서로의 삶을 상상하는 일에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모든 것이 무의미한 걸까? 나는 그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삶을 애써 상상하는 일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고 쓰면서 하게 된 생각이다." -김초엽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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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는게 신물나도록 끔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는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사과를 시작했다. 이어지는 사과에도 나의 결심이 바뀌지 않자 그는 정말 모르겠다며 저런 말을 했다. 여태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을 용서해달라고만 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그 얼굴은 아주 말갛고 무해해 보였다. 그때 처음 알았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언제나 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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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한데 웃겼다ㅋㅋ

나로서는 답하기 곤란한 질문도 있었다. 이를테면 요즘 한국 소설가들은 왜 대화에 큰따옴표를 쓰지 않는지, 그렇게 문법을 파괴해도 되는 것인지 물었다.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목소리엔 힐난하는 듯한 어조가 섞여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소설가가 아닙니다. 제가 답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라고 답하면 그래도 감독님은 예술가시니까 견해가 궁금합니다, 라고 끈질기게 물었다. 난 어색하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기분이 좋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을 더는 할 수 없어 손을 씻고 오겠다고 말한 뒤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씨발, 하고 덧붙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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