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기까지 한 뉘우침은 처절한 자기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내면의 깊이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고 큰 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뉘우치기가 힘들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뉘우침은 왜 그토록 중요할까? 누군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우리는 왜 그가 뉘우쳤는지 여부에 신경 쓸까? 뉘우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많은 사람들은 매우 큰 차이가 생긴다고 믿는다. 뉘우친다는 것은 자기 인식의 여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여정을 어찌나 중요시하는지 그저 범죄자가 뉘우쳤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많으며 심지어 그가 뉘우치기만 한다면 용서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러 종교에서는 범죄자가 이 같은 내면의 여정을 거쳤는지 여부에 따라 내세에서의 운명이(그가 구제받을 것인지, 천국과 지옥 중 어디에 떨어질 것인지)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방인』에서 〈데드 맨 워킹〉에 이르는 여러 작품들이 뉘우침을 향한 여정 혹은 반反여정을 둘러싸고 펼쳐진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뉘우침 자체보다도 자기 인식의 여정이다(『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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