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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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에이징 솔로 Aging Solo, 2023, 동아시아

내가 원했던 게 이거잖아 : 에이징 솔로들의 생생한 삶의 기록




내게 비혼은 낯선 삶의 방식이 아니다. 비혼 중년도 꽤 친숙한 존재이다.

20대 청년 여성인 나의 경우, 비혼의 삶을 생각하고 있으며 친척 가운데 친가와 외가에 모두 비혼 중년이 있다. ‘비혼비혼 중년이라는 키워드와 가까운 환경에 노출되어 살아온 셈이다.

 

하지만 여태껏 비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잘 없었다.

명절에 만난 친척들의 관심은 그해에 새로 태어난 아기가 거의 독차지했고 나머지는 결혼, 직장, 가족 이야기 등이었지 비혼자체가 화두로 떠오른 적은 없었다. 비혼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 공동체 안에서 일종의 금기처럼 취급되거나 비혼 당사자들이 없을 때 걱정이나 염려의 형태로 잠깐 언급되었다가 금방 사라지곤 했다. 그마저도 어른들의 이야기라며 나는 이야기에 낄 자리가 없었고, 비혼 중년 친척분들께 직접 여쭤보자니 왠지 결례일 것 같아서 삼갔다.

 

나는 분명 비혼 중년의 삶 이야기를 듣는 일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성적으로 찾아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대책이 없었는데, 그 이유가 내 주위에 이미 비혼자이거나 비혼 예정자가 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위 친구들에게 결혼 의사를 물어보면 비혼을 생각하고 있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비혼 친척분들도 혼자의 삶을 잘 꾸려나가시는 것 같았다. 결혼 적령기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점점 연령을 높여 가는 상황에서 나는 친척이나 가족에게 결혼 압박을 받을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 비혼은 오히려 결혼보다도 자연스러운 기본값이었다. 비혼 중년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리 잡아 갈 내 삶의 방식으로만 여겨졌다. 비혼은 내게 불안을 주는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태까지 비혼과 홀로 나이 듦에 대해 딱히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곧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이 되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할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비혼으로 살기 위한 현실적인 계획이 필요해졌다. 최근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일에 전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고민하게 되었는데, 현실적인 비혼 1인 가구의 삶을 계획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을 선택한 사람의 삶은 머릿속에서 쉽게 그려졌지만, 비혼을 선택한 사람의 삶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삶은 주위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이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비혼의 삶은 내 개인적인 이상에 가까운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진다는 걸 발견했다. 이른바 비혼 데이터가 내게는 부족했다. 나는 비혼의 삶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덜컥 겁이 났다.

 

에이징 솔로 Aging Solo는 비혼을 현실적인 문제로 적용하면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던 차에 만난 책이다. 나는 앞서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8차례 이메일로 발행한 에이징 솔로 레터, ‘비혼 뒤 맑음의 구독자였기에 에이징 솔로사전 연재분을 읽으며 출간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간된 책을 읽으면서는 책 제작에 관여한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을 만큼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찾던 이야기, 내게 필요했던 삶의 예제가 여기에 있었다.

 

김희경 저자는 책에서 에이징 솔로(Aging Solo)’를 홀로(Solo) 나이 들어가는(Aging) 중년 1인 가구로 개념화하고 있다. 에이징 솔로 Aging Solo1인 가구 시대, ‘비혼 중년의 삶을 집중 조명하는 책이다. 김희경 저자는 1인 가구 시대에, 세대로 구분되는 비혼 집단 가운데 청년과 노년보다 담론장에서 존재감이 약한 중년의 삶을 에이징 솔로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비혼과 1인 가구를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삼을 이들이라면 19명의 인터뷰이의 삶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삶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 말이다.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의 모델이 필요하다라는 책 소개 문구처럼, 이 책은 에이징 솔로 Aging solo’들이 꾸려 온 삶의 방식과 나이 듦과 수반되는 질문의 응답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저자의 사유와 통계의 해석을 통해 우리 사회와 우리 스스로가 갖고 있던 중년 1인 가구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고, 그들의 삶을 참조해 내 삶을 조금씩 그려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소중한 건 단지 비혼 중년 1인 가구라는 삶의 모델만을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닌, 그들이 받아 온 질문과 시선을 하나하나 톺아보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언론과 미디어가 조장한 비혼과 비혼 중년에 대한 과장되고 부정적인 이미지와 낙인을 두고, 저자는 진짜 그런가?” 질문한다. 실제 에이징 솔로 19명이 인터뷰에서 "그렇지 않다"라고 응답하는 생생한 목소리가 여기에 담겨 있다.

 

김희경 저자에 따르면 비혼이 사회의 문젯거리로 여겨지는 원인은 비혼이라는 삶의 방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한국 사회의 가족 중심적인 문화,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만들어 내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더 이상 사회가 외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흐름, 에이징 솔로들을 배제하지 않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에이징 솔로 Aging Solo에서 에이징 솔로들은 나이 듦의 과정에서 찾아오는 인생의 질문들에 답하며 자신들 앞에 놓인 제한과 통제에 저항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못 본 척하는 사회에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알리며 제도의 마련 및 개편을 요구한다. 동시에 그들이 제도 바깥의 삶을 상상하며 대안을 모색한 작업들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어 김희경과 인터뷰이로 참여한 19명의 에이징 솔로들은 "혼자 나이 들면 비참해지고 외로워진다(316pg)"는 저주에 가까운 '사회의 음모론'에 맞서 관계망이라는 연결로 서로 간 단절을 막고, 단절로 인한 죽음을 거부하고 있었다. 느슨하게 맞잡은 손 덕분에 에이징 솔로들은 "홀로이면서 함께 Alone Together(315pg)"일 수 있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 주는 사람이 있어 기쁘다. 선배들이 있어서 든든하고, ‘새로운 삶의 모델을 발명해 온 선구자들 덕분에 나는 내 삶의 방식 또한 어떤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살면서, 나이가 들면서 끊임없이 내 삶의 방식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할 순 있겠지만 이 책이 있어서 내 삶의 방향성을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에이징 솔로 세대의 삶은 구체적으로 상상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웠다. 유튜브 플랫폼 등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삶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왜곡된 것인지 알 수 없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비혼자의 삶을 다룬 콘텐츠의 댓글에 부정적인 인식이 드러나는 걸 여러 번 목격하면서 피로하기도 했었다. 기혼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로 비혼자들의 삶을 대신 전해 듣고 싶지 않았고, 내가 살아갈 삶을 미리 겪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김희경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기에 적합한 저자이며, 그런 이야기를 들려 줄 사람들을 찾아 책으로 엮어 냈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에이징 솔로 Aging Solo는 우리 삶의 방식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문제의 뿌리를 함께 살펴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책으로서 소중한 작업물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다수이자 주류로 자리를 잡아 가는 1인 가구와 비혼이라는 삶의 형태를 함께 이해해 나갈 독자들에게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



해당 서평은 동아시아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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