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페인어 배우는 남자>



읽기 힘든 책이었다. 가독성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작중 인물의 나이 때문이다. 주인공인 67세 남훈 씨의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나 구사하는 대부분 문장들이 과거의 것에 가깝다고 느꼈다. “삼가 춘부장 명복을 비네.”같은 옛말을 두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가부장적이고 꽉 막힌 구석이 있는 할아버지의 땡깡을 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찜찜함을 남겼다.

 

주인공의 나이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나 싶다가도, 소설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비단 남훈 씨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훈 씨의 멋대로인 행동들과 그것을 받아주는 인물들은 모두 일정한 농도의 가부장적 사고에 절여진 것 같았다. 이런 점이 거슬려 소설의 완독을 위해 읽기 힘든 1/8분량의 장면은 건너뛰었다.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저자의 나잇대를 짐작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또 확실히 요즘스러운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2021년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기 때문에, 그냥 선호하는 문체가 다르구나 생각하려 한다. 그렇지만 올해 2022년 혼불문학상 수상작이 나온다면 읽지 않을 것 같다.

 

소설 표지 뒤편의 카피, “스페인으로 진짜 가족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플라멩코 정복기가 책의 내용을 충실히 축약해 알리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진짜 가족을 찾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난 것도 아니었고(가족은 한국에서 찾는다), ‘진짜 가족이라는 단어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 왠지 가짜 가족처럼 느껴지게끔 하는 어감이 있다. 아래의 설명도 재회한 딸과 스페인 여행에 가 플라멩코를 추는 장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플라멩코라는 춤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소설이 아니었다.

 

이 소설은 스페인 문화를 배우며 달라지는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플라멩코에 초점이 맞춰져 스페인 언어에 대한 내용은 비중이 축소되었다. 나는 이 책의 소개에서 정말 강조되었어야 할 점이 스페인어에 대한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플라멩코라는 스페인 춤이 독자의 이목을 끌기에 더 효과적이긴 했겠지만, 지금의 책 제목이나 책을 소개하는 방식이 최선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언어형식을 배운다는 건 새로운 관계를 준비하는 것과 같지요. 기억하세요. 새로운 언어형식이 새로운 관계를


만듭니다.”(56)

 

해당 문장과, ‘스페인어는 주어-동사-목적어 순으로 말하기가 정말로 책에서 강조되었어야 할 부분이다. 주인공 남훈 씨가 청년 일지에 썼던 다짐을 하나씩 달성해나가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게 해 준 것이 스페인어인데다 결말부에 의붓딸 보연과의 인연이 더욱 깊어지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 것도 스페인어이다. 스페인어가 조금 더 강조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 책의 모든 매력이 드러나지 않은 요인이라 생각한다.

 

 

다산북스 서평단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2022.05.23) 내용에 대한 서평이 부족해 덧붙임

 

남훈 씨는 지금 함께 사는 딸 선아에게는 퉁명스럽게 대하면서 청년일지를 쓰다 떠올린 예전에 버린 딸 보연을 찾아 나선다. 보연을 찾기 위해 방법을 찾으면서도 남훈 씨는 그렇게 만난 딸에게 돈을 뜯기면어쩌나 걱정한다. 그 걱정은 직접 보연을 만날 때까지도 이어진다. 작가로부터 비롯한 남훈을 연민하는 시선은 남훈 씨의 주변 인물에게도 적용된다. 남훈 씨는 직접 적극적으로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자꾸만 주변 인물에게 이해받는 인물이 된다.

 

남훈 씨는 사기결혼을 했다. 자신에게 전처가 있었으며 아이가 하나 있었음을 숨기고 결혼했고, 그 자녀가 43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딸과 만나고 왔다는 사실과 함께 가족들에게 고백한다. 고백을 들은 아내의 반응이 어이없었는데, 자신이 외로워 남훈 씨의 신원을 조회하여 선자리를 주선했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니 보연을 데려와 키우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고백하면서 운다. 오히려 아내가 남훈 씨에게 사과하며 갈등이 허무하게 해소되어 버린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의붓 언니가 생긴 선아만 덩그러니 남는다.

 

여섯 일곱 살 때 이혼하고 자신을 어머니에게 맡긴 후 제대로 된 양육비 한 번 지급하지 않았던 아버지라는 사람이 수십 년 뒤 자신을 찾아와 만나자고 제안했고, 보연은 남훈 씨의 제안에 수락하더니 바로 남훈 씨를 아빠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소설의 진행을 위해서인지 이야기는 낙천적이고 극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독자인 나는 읽으면서 저자가 계속해서 남훈 씨에게 면죄부를 주는 기분이 들었다.

 

보연은 아버지 없이 자라오던 그간의 일들을 들려주면서 혼전임신과 유산에 대한 경험을 남훈 씨에게 명랑하게 말하는 장면도 실제 인물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어 와닿기 힘들었다. 남훈 씨의 전처와 의붓언니 이야기를 들은 딸 스물 네 살 선아는, 남훈 씨가 배우던 플라멩코 댄스 학원 강사와 사귀는 사이었고 스물 네 살에 그와 결혼하겠다는 허락을 받겠다며 남훈 씨와의 침묵을 먼저 깼다. 서평을 쓰는 본인은 지금 스물 셋이고 내년에 스물 넷이 되는데,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플라멩코 학원 강사와 대뜸 결혼하겠다는 이야기가 적어도 내게는 현실감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한국드라마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지만 엄청난 우연이 반복되고,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는 간단하고 맥 빠지는 방식으로 해소된다는 점에서 그랬다. 설명하기 곤란하고 어려운 일들은 주인공이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이 그 상황을 이미 다 알고 있거나 쉽게 이해해 줘서, 주인공은 문제를 고백하기만 하고 해결은 주면 사람이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소설은 복잡한 상황을 작가가 어떻게 풀어갈지, 인물들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소할지 궁금해하는 데에서 읽는 재미가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플라멩코 추는 남자>에서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기대할 순 없었지만 킬링타임용으로 여행지나 휴가를 보내며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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