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생기 띤 목소리로 그날의 강의에 대해 말씀하셨다.
˝강사가 말하길 하나님의 생기에 잡힌 사람은 아프지 않는단다. 예수님을 봐라. 사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감기라도 걸리셨다는 구절이 없지 않니?˝

순간 내 머리 속에 떠올랐던 인물은 바로 `장미의 이름`에 등장했던 호르헤수사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감추기 위해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악인이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감추기 원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은 희극에 관한 책이었다.
그는 웃음을 경건치 못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 웃음을 경건치 못한 것으로 생각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표현이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어제 `창조 신앙과 성경적 세계관`이라는 제목의 강의가 있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계기로 진화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이 쌓여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는 나의 고민들 중 하나였고, 내가 강의에 참석한 이유이기도 했다.

강의는 기대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했다.
강사께서 물리학자이셨던 관계로 강의의 대부분은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우주 탄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과 힉스입자는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위해서는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은 이 힉스입자가 없어야만 하는가?
성경 연대기 육천년을 부인하는 이 증거들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말하자면 호르헤 수사는 양립의 가능성을 부정하며 이 증거들이 없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여 책이 세상에 알려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살인까지 저지르면서도 차마 그 책은 없애버리지 못했던 호르헤 수사....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천문학, 지질학, 물리학, 생물학등)으로 진화하여, 호르헤 수사는 불에 타 죽었지만 그 정신은 밈으로 계승되어 아직도 이 세상에는 신앙과 과학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듯 하다.

아디오스!! 움베르트 에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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