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시인은 죽어서 시를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시인의 이름은 사실 시인, 그 사람이 아니라 그가 쓴 시인 것이다. 여기 시인의 시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그 시만으로 충분하다. 그 시에 그 시인의 모든게 담겨있으니...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시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시를 맛보기 위해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시인을 알고 시대를 아는 시간, 그렇게 해서야 겨우 시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대가 있었다. 고향땅을 떠나야 했던 시대, 고향의 언어를 쓰지 못했던 시대, 고향의 이름을 바꿔야 했던 시대... 시인이라 불리우는 이들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시가 아닌 다른 것을 써야 했고, 시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시인이 있었다. 젊은 시인은 시인으로 불리우지 못하였다. 그저 한사람의 학생이었던, 수많은 시대의 희생자중 한명이었던, 시인은 그렇게 죽어갔다.
시인이 없는 시대를 상상해 볼 수 있는가? 민족가운데 단 한명의 시인조차 없는 그런 시대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민족을 닮았다. 시대를 살아냈던 민족을 닮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와 민족이 닮겨있다. 시인은 죽었지만 민족은 살았다. 그리고 그의 시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