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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프로테스탄트 - 한국교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양희송 지음 / 복있는사람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개독교의 세상이다.
서울시 인권 헌장이 개독에 의해 무산되었고,
대형교회 목사들의 비리가 자꾸만 드러나고,
교회 세습이 문제가 되고 있고,
성추행등의 성범죄 기사에도 심심치않게 목사란 직업이 등장한다.
이 땅의 개신교는 언제부터 개독교였을까?
왜 개독교가 되어버린걸까?
프로테스탄트는 개신교를 뜻하기 전에 저항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부패한 구교에 맞서 신교가 종교개혁을 외쳤을 때,
그들이 획득한 이름이 바로 프로테스탄트이다.
구교가 정치적 도덕적 윤리적으로 탈락했을 때,
구교의 모순을 지적하며 새로운 사회를 꿈꿨던 자들이 프로테스탄트였다.
그들은 어쨌건 수많은 피를 흘려가며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만드는데 결국 성공했다.
노예 해방, 남여 평등, 민주주의에 개신교가 특정한 역할을 한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노예 정당화, 남녀 차별, 전체주의, 왕정등에서도 기독교의 역할이 있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에 있어서 기독교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었는데, 지식인 중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들은 기독교인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서 점점 성장하고 득세하고 어느 위치에 오르다보니 종교개혁시대의 구교를 연상시키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에 저자는 자신이 개신교인임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해결책을 말하고 있다. (양희송이란 이름은 한국에서 복음주의를 단어를 자주 쓰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는 이 책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도 한국 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이들 중 한명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책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그마저도 없다면 정말 절망적인 일이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저항자, 곧 프로테스탄트가 필요하다.
부디 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개신교인들이 다시 생겨나길 바란다.
만약 그런 이들이 다시 존재한다면,
그들중 상당수는 아마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