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취재했던 ap 통신 테리 앤더슨 기자도 “이는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말했다. 공수부대는 시위진압을 위해 폭력을 쓴 게 아니라 체포를 위해 폭력을 쓴 것이다. 17년 뒤 1997년 대법원은 “계엄군이 난폭하게 광주시민의 시위행위를 진압한 행위가 대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 협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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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철학(이 말은 전통적으로 인식되어온 철학에서 도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영어가)의 경우, 그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이념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윤리학이나 정치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지 않는다. ; ’단어의 의미가 변화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2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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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 견해는 어리석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원래 하나의 속적인 존재, 즉 군집동물로 출현하며, 역사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개별화한다는 것이다. ; 그리고 교환 그 자체가 이 개별화의 주요한 동인이라는 것이다.

2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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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카는 20세기 초 볼셰비키 혁명이 열어재낀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평등과 자유의 세계질서를 희망하는 자신의 역사관을 옹호하기 위해서 역사는 진보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게 객관성은 현재와 과거의 연관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바람직한 미래를 예견하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의 연관을 역사적 사실들로 직조해 개념화 하는 것이고, 이는 분명하게 역사를 20세기 초의 사회주의적 낙관과 윤리적 희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도그마적이지 않는데, 역사에서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실과 가치판단은 해당 역사적 시기에서만 객관적으로 옳지(개념화가 가능하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카는 일반화(개념화)가 객관적인 것이지 정의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도그마를 두려워하며 어떠한 것도 진리가 아니라고 했던 반자연주의자 무어보다, 도그마에 맞서되 역사탐구와 윤리적 실천의 끈을 연결하려 했던 카의 사유가 훨씬 값지고 역사적이다. 왜냐하면 카의 주장은 여전히 자유와 해방을 위해 나아가는 오늘날 인류의 투쟁에 이바지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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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윤리학은 한 언어(단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길 요구한다. 그런 측면에서 카가 역사의 객관성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역사의 객관성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해야 하고, 어느 시기에나 보편타당해야 하는데 카는 그 전제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객관성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역사란 진보적인 것이고, 진보적인 것만이 객관적이라는 카의 주장을 다시 생각해보자면, 진보적이지 못한 것은 역사가 아니고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진보적인 것은 변화의 흐름을 역사화하는 것이고 그것의 기준은 현재의 성취와 사건들을 과거와 엮어내면서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으로서 가능하다. 왜냐하면 진보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 따라서 카에게 객관성은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퇴행이라 자조하는 기득권의 도그마적 한탄을 역사해설이라 둔갑하는 행위도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어떤 진보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그 사건들이 과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사실과 해석의 측면에서 정당해야 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 사실이어야 하고, 해석은 일반화의 과정을 정당하게 거쳐야 한다(정확히는 개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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