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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평점 :

『뉴턴의 아틀리에』는 김상욱 물리학자와 유지원 타이포그래퍼가 한가지의 키워드를 가지고 과학자는 예술적으로, 예술가는 과학적으로 쓴 글이다. 역할이 뒤바뀌었다.
"미술은 물리다. 미술작품은 시각으로 인지된다. 시각은 그 속성상 분석적이고, 인간이 가진 감각 가운데 가장 정확하다.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앞 부분의 프롤로그, 서장 등을 꼭 읽는 편이다. 이 부분을 넘기고 바로 본문을 읽기 시작하는 분들에게 꼭 프롤로그는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저자의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으며, 무엇이 어려웠고, 어떤 생각을 담아 독자들에게 무엇을 알리고 싶었는지에 대한 말들 같은 것. 이는 본문을 읽을 때 꽤나 유용하다.
작년 하반기, 대학교 4학년 막학기를 다니는 동한 교양 수업으로 김상욱 교수님의 물리학 수업을 수강했다. 물론 나는 인문학도이며 고등학교 때도 문과를 선택했지만, 사실 사탐보다 과탐이 더 좋았다. 그저 수학이 너무 어려웠을 뿐이다. 문과 이과를 가르지 않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물리였다.
원래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수강하게 된 김상욱 교수님의 수업이었는데 묘한 인상을 받았다. 수업은 과학적인 내용을 배우지만, 교수님의 설명은 인문학적이기도 하고, 감성적이기도 했다. 학문에 대한 이미지의 경계가 바스스 사라지는 느낌이란!
그래서 교수님이 미술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쯤은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본격적으로 미술에 대한 책을 쓰셨을 줄이야. 정말 매력적인 분이 아닐 수 없다.
"물리학자가 미술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을 때, 예술가와의 동행이 필요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가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7p
"『뉴턴의 아틀리에』에서 '뉴턴'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알려진 과학자의 이름을, '아틀리에'는 화가·조각가·조형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작하는 작업 공간을 뜻한다. 뉴턴은 과학, 아틀리에는 예술, 이렇게 영역을 나누려던 것은 아니다. 과학과 예술의 속성이 서로 스며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곳, 경계가 무너지고, 다채로운 관계가 생성되어 가는 곳, 그러니까 '뉴턴의 아틀리에'적인 순간들이 펼쳐지는 공동 공간이라는 뜻이다."
유지원 타이포그래퍼가 쓴 프롤로그 부분에는 자주 받은 질문 세가지를 통해 『뉴턴의 아틀리에』라는 책에 대해 전반적인 소개를 해 주고 있다.
첫번째 질문인 "어떻게 두 분이 함께 책을 쓰게 되셨어요?"와 두번째 질문인 "선생님 같은 예술가가 많은가요?"에 대한 답변에서는 유지원 타이포그래퍼가 가진 과학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는 부분으로 사용되었다. 미술을 전공했다고 해서 다른 과목들이 싫은 것이 아니다. 언어와 수학과 과학 모두 좋아했지만 유독 더 미술을 좋아한 것 뿐. 그래서 미술가가 과학을 좋아하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세번째 질문인 "무슨 폰트 쓰셨어요?" 부분은 나도 참 궁금했던 부분이다. 그림을 보면 어떤 재료를 썼는지, 컴퓨터 그래픽 아트면 어떤 브러쉬와 프로그램을 썼는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글자를 다루는 타이포그래퍼가 이 책을 저자 겸 디자이너로서 본문 및 표지 디자인을 직접 했다는 것을 알고서 어떤 폰트를 썼는지 궁금해 진 건 당연한 것이었다.
이 책은 두 저자의 목소리가 각각 다른 폰트에 담기고 있다. 사실 따로 보면 정말 두 폰트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싶었는데, 나란히 두고 보니 확연히 차이가 두드러진다.
책에서 쓰인 주요 폰트는 아래와 같다.
[김상욱 본문과 캡션]
한글 : 본명조 레귤러
로마자·숫자·문장부호 : Lyon Display Light
[유지원 본문과 캡션]
한글 : 아리따부리 미디엄
로마자·숫자·문장부호 : Lyon Display Light
[공통 제목] : 옵티크 디스플레이 레귤러
책이 어떤 폰트로 쓰였는지 설명 해 주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라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김상욱 교수님이 이 책으니 스물여섯 개 챕터의 키워드와, 두 저자의 이름, 책 제목의 뉴턴과 아틀리에에 대해 그린 그림이다.
"창작이건 뭐건 손 쓰는 거라면 질색하는 이론물리학자의 머릿속에서 뭔가를 꺼내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략) 서른개의 단어가 한 장에 하나씩 차례로 적힌 빈 스케치북과 펜을 내밀었다. 아니나다를까, 절대 안 하겠다고 빼시길래 '스피드퀴즈'라고 임기응변하며 시간은 그림당 1분을 드렸다." -16p
이 부분을 보고 엄청 웃었다. 어쩐지 그 당시 두 작가님들 사이에서 벌어진 뜻밖의 스피드퀴즈 타임 상황이 상상되는 것 같았다.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이 책은 총 5개의 장을 통해 26개의 키워드들이 등장하고, 그 키워드 마다 두 저자의 글이 하나씩 실려있다.
1 관계맺고 연결된다는 것
이야기 / 소통 / 유머 / 편지 / 시
2 현상을 관찰하고 사색하는 마음
결 / 자연스러움 / 죽음 / 감각 / 보다 / 가치
3 인간과 공동체의 탐색
두 문명 / 언어 / 꿈 / 이름 / 평균
4 수학적 사고의 구조
점 / 구 / 스케일
5 물질의 세계와 창작
검정 / 소리 / 재료 / 도구 / 인공지능 / 상전이 / 복잡함
아무래도 과학적인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책이다보니, 키워드를 보고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결'이나 '상전이' 같은 키워드들은 딱 봐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풀컬러(!)로 삽입된 예술작품 사진이 함께 있어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이상한 나라에 있는 미술관의 큐레이션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법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