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는 작가의 일상과 영화를 조화롭게 엮은 에세이다. 작가님은 독립서점 '영화책방 35mm'를 운영하고 계실 정도로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신 분이며, 그렇기 때문일까 영화 한편을 보면서도 자신의 삶과 연관시켜 더욱 풍부하게 감상하는 감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책 내용과 더불어, 귀여운 책 표지와 동봉된 포스터, 엽서카드에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참 많이갔다. 일러스트 작가님은 '림예'님으로, 소개글에 실린 "잡초처럼 자라나는 일상 속의 생각을 자연에 빗대어 풍경이 되도록 표현하고 있습니다." 라는 부분이 참 좋았다. 멋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멋진 책이다.


챕터는 총 5개로 나뉘어져 있으며, 영화 컨셉이 맞게 '챕터'를 '관'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티가 많이 난다.

4관을 제외한 모든 관마다 5개의 영화가 소개되고 있으며, 4관은 6개의 영화가 실려 총 26편의 영화 작품들이 책에 등장한다.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영화 보는데 그리 흥미가 없다. 예전부터 드라마나 영화 등의 영상을 그리 즐기지 못했다. 글로 읽는다면 등장인물의 모습도 목소리도,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풍경도 모두 상상으로 만들어 내며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재미가 있는데 영상은 그런 재미가 조금 더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아예 안보는 것은 아니다. 요즘 넷플릭스 참 재미있다.)

그래서 26편의 영화가 꽤 많게 느껴졌는데, 이럴수가. 내가 본 영화가 생각보다 이렇게 많았다니! 아는 영화가 등장하면 '아, 나 이 영화 봤어!' 하고 기억 속을 더듬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를 읽은 날은 꽤 길었던 추석 연휴동안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반년만에 만난 부모님 사이에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그래서 더더욱 『태풍이 지나가고』라는 영화가 실린 부분이 마음에 닿았다.


최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잘 안되는 이 시국에 갑자기 아빠가 전화로 이런말을 했다. "뭔가 하고 싶은걸 더 해보는 건 어때? 그게 공부라도 좋아."

만약 아빠가 자신의 삶에서 미련으로 남긴 것이 있다면 아마도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요리도 하고 싶도, 해외에도 나가고 싶고, 여러가지를 하고 싶었던, 누구보다도 꿈이 많았을 우리 아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려 지금까지 정신없이 일만해오는 삶을 살았다.

그런 아빠가 예전부터 술을 마시거나 하면 나에게 꼭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은 아직 돈을 벌 수 있으니 돈 걱정은 말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라고. 자신은 일찍이 포기했던 것들을 너는 다 하라고.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최근 들어서 앞으로 뭘 해먹고 살지 하는 걱정을 하게 되자 아빠의 말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서야 엉엉 울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럼 그 많은 꿈을 포기한 채 가족을 먹여살려야 했던 아빠의 앞으로의 꿈은 뭘까. 공부가 하기 싫어서 가출까지 했었던 엄마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을까. 난 이들이 흘러간 시간에 굴복한 채 고작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 아무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여전히 그 찬란하고 꿈이 많았던 그 때처럼, 많은 것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 되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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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요코'는 꽤 오랜만에 접한 추억속의 이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지 2학년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당시 학교에서는 외국영화를 상영하고 감상문을 쓰는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상영했던 일본 영화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었다.

당시에도 일본문학을 꽤 즐겨 읽었던지라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 또한 찾아 읽었는데, 이 책의 작가가 바로 '오가와 요코'였다.


사실 영화도 책도 누군가가 재미있었다고 묻는다면, 글쎄. 이미 수년이 지난 기억이라 많이 퇴색했으며 그 이후에 다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지 않아 지금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참 어려웠던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와서 영화평을 찾아보니 꽤나 반응이 좋더라. 어라? 어쩌면 아직 청소년이었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깊은 무언가의 덩어리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탓인지 '오가와 요코'의 작품은 어쩐지 지루한감이 없지 않으며 어려울 것 같은 이미지였다. 그래서 이번 신작인 《침묵 박물관》의 작가가 오가와 요코라는 것을 알고서 이번에는 또 얼마나 어려울지 걱정 부터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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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평화로운 한 마을, 박물관 기사인 주인공 '나'는 한 노파가 박물관을 세울 계획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노파는 무척이나 괴팍한 사람이었고, '나'는 자신을 별로 탐탁치 않아하는 듯한 노파의 태도에 짐을 싸서 돌아갈 준비를 하지만 노파의 양녀인 소녀가 뜻밖에도 노파가 '나'에게 박물관을 맡기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이렇게 '나'는 기묘한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된다.

노파가 만들고자 하는 박물관에 전시될 물품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마을 사람들의 '유품'이다. 그것도 사전(死前)에 고인이 남긴 물건도, 고인의 가족이 노인에게 기증한 것도 아닌 아무도 모르게 죽은자의 집이나 일터로 찾아가 슬쩍해서 가져온 물건들이었다.

노파의 이 기묘한 수집은 노파가 10살이 되던 해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정원사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눈앞에서 봤을 때 부터 시작되었다. 죽은 정원사의 옆에 떨어진 정원사의 가위를 보며, 노파는 어쩐지 가위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수집했다. 그 때 부터 노파는 죽은 마을사람들의 물건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수집은 이제 '나'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유품이라 하며 아무런 물건을 가져와서는 안된다. 노파가 '유품'이라고 치부하는 것에는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


이를테면 불법 귀연골 제거 수술로 돈을 벌던 의사가 그 수술을 사용할 때 마다 사용했던 메스 같은 것. '나'는 처음에 어떤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점점 더 어떤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마치 10살의 노파가 한 눈에 정원사의 가위를 수집해야 한다는 욕구를 가졌던 것 처럼.

그렇게 박물관을 완성할 때 까지 '나'가 이 평화로운 마을에 머물게 되며 마을에도 기묘한 일들이 발생한다. 폭발사고에 '나'와 소녀가 휘말리기도 하며, 무엇보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 형사들이 '나'를 의심하기도 한다.


'나'와 노파, 소녀, 정원사, 가정부 그리고 침묵의 전도사. 그러고 보니 이 책에는 사람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직업이나 나이를 기반한 호칭으로 지칭할 뿐이다. 게다가 분위기가 그저 고요하다. 분명 유품을 수집하는 것이 절도라는 불법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범죄 분위기는 아니며,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왜인지 모르지만 그냥 잔잔하다.

어쩐지 오가와 요코다운 책이다. 정말, 알 수 없는 어려움이 가득한 책이라고 해야할까. 책을 이해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딱 잘라 이야기 하자만 개연성이 부족한 책이라고 해야할까. '나'가 계속해서 사촌 형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이 없거나 정원사가 자신이 만든 나이프를 계속해서 '나'에게 선물하는 등 어쩐지 의문이 가득해서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찾고 찾다가 결국 헤매게 되는 책이었다. 뒤에 이야기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끝내는 거 실화인가......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어쩐지 텅빈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뭔가 미완성인 이야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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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커넥츠 공단기 기출로 완성하는 7급 PSAT 세상 쉬운 입문서 - 7급 공무원 / 5, 7급 민간경력자 / 경호공무원 7급 대비
미래교육센터.공단기 PSAT 연구소 지음 / 에스티유니타스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발 사지 마세요....... 진짜 거의 두장 건너 오류가 보입니다. 답안의 오류는 물론이고, 문제 선지가 아예 다르거나 해서 문제 자체를 풀 수 없어요ㅠㅠ 제발 다른 책 사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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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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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드맨』으로 2012년 제 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한 가와이 간지가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책 제목은 『스노우 엔젤』이며 어쩐지 겨울이 생각난다.


이야기의 첫 시작은 2014년 6월의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배경으로 한다. '샤로노프'라는 노인이 혼자 호수를 감상하고 있을 때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최후의 레시피'를 넘길 것을 강요한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이를 얻기 위해 샤로노프가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고, 이제 곧 샤로노프마저 살해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샤로노프는 아내가 살해당했다는 것에 대해 슬퍼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 모든 감정을 잃어버린 듯이 그저 고요할 뿐이며, 또한 자신의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아 보인다. 그저 모든 것이 평온했다.


그리고 배경이 바뀌어 2017년의 일본.

한 남성이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도 없이 그저 질주하다보니 무언가 쿵, 하고 박았다. 주위는 비명소리에 시끄럽고 창문 너머에는 좀비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남성은 계속해서 좀비들에게 돌진했고, 벽에 부딪친 차에서 빠져나와 좀비를 죽여나가며 돌탑으로 도망쳤다. 좀비들을 피해서 탑을 오르고 올라 옥상에 다다랐을 때, 남성은 하늘에 떠있는 천사를 발견했다. 천사는 미소를 띠우고 남성을 향해 손짓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거 좀비물이었어?!' 하고 생각했다. 정말 뜬금없이 좀비가 등장할 줄이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남성의 환각이었다. 현실은 보행자 십여 명을 들이받은 후, 차에서 내린 후에도 쇠지레로 사람들을 살해하며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백화점 9층 테라스까지 올라가 뒤쫓아온 백화점 직원들의 눈앞에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반전이야! 진짜 육성으로 '헐'소리가 나왔다.

기자키 계장과 경찰들은 약물로 인한 사건이라고 추정했다. 일본에 유사한 종류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었고, 가해자는 모두 향정신성 약물이나 위험 약물 복용자였던 탓이었다. 2015년에 약물을 판매하는 업소가 적발되어 전국 200여 곳 넘는 판매업소가 모두 소멸된 것으로 발표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 향정신성 약물에 관련된 사건은 증가하고 있었다. 이제는 누가, 어떤 경로로 약물을 구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진 실정이다.

그래서 기자키는 이 약물을 추적하는 일을 진자이에게 맡긴다. 사실, 이미 진자이는 죽은 사람으로 처리되어 있다. 형사였던 진자이가 길바닥을 이리저리 헤매게 된 것은 7년전 부터이다. 어느 날 변호사 부부가 고가도로 위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수사는 사고사로 종결되었지만 진자이는 이것이 사건이라고 생각했고, 파트너인 히와라 쇼코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사 중, 파트너인 히와라 쇼코가 다섯명의 남자들에게 저격당해 사망했고, 그에 분노한 진자이는 그 다섯 남자를 모두 죽여버렸다.

진자이가 경찰서로 돌아간다면 배치전환이 되면서 다른 곳으로 쫓겨날 것이다. 그렇다면 변호사 부부의 사건도 더이상 수사할 수 없을 것이고, 히와라 쇼코를 살해 한 배후 또한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진자이는 도망을 택했다.

그런 진자이 앞에 직속 상사였던 기자키가 나타났다. 마약 단속관, 일명 마토리로 불리는 기관의 미즈키 쇼코의 부탁이 있기도 했다. 부디 지금 사람들에게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합성 약물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그 합성 약물의 이름은 '스노우 엔젤'. 신종 합성 약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화학물질이며, 복용한 자에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위험한 약물이다.


진자이는 약물의 출처를 찾기 위해 잠입 수사를 감해하며 직접 '스노우 엔젤'을 복용하기도 한다. 과연 이 약물은 무엇을 위하여 세상 속으로 나왔는지, 그리고 약물을 퍼트리는 사람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증이 차오른다.

또한, 이런 장르의 책들은 주요 인물들에서 꼭 뒤통수 때리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정말 마지막까지 정신을 잡고 있어야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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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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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은 2019년 제 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 때문에 책 읽기도 전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책 한권이 모든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기는 힘든 일이지만, 한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 다수의 대상에 나 또한 포함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책을 펼친다.


책을 펼치자 마자 짧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C-27'이라는 존재가 작은 방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야기. 이 글을 보자마자 이 책은 나와 잘 맞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어쩐지 감성적이고도 아련한 느낌이 들 것 같은 책이었다. 그런 첫 인상이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이 이야기의 결말로부터 시작된다. 한마디로 누군가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이 결말까지 다다르기 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회상하는 듯이 빠져드는 이야기이다.

『천 개의 파랑』에는 단 한명의 주인공이 없다. 한개의 휴머노이드와, 한 마리의 말과, 여러명의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차지도 밝지는 않지만 인간적이고 따스한 이야기이다.

C-27은 기수 휴머노이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기수 휴머노이드를 위한 소프트웨어 칩이 아닌 연구생의 가방에서 떨어진 인지와 학습 능력 소프트웨어가 삽입된 무언가 잘못된 휴머노이드다.

C-27은 다른 기수 휴머노이드와 좁디좁은 화물칸 안에 실렸다. 그렇게 어디론가 실려가는 중 비좁은 창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C-27은 여러가지 단어들을 떠올렸는데 그 단어는 딱 천 개였다.

화물차가 멈춰선 곳에서 C-27은 '투데이'라는 말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도민주라는 직원에게 말과 교감하는 법, 고삐를 당기는 법, 말의 목덜미를 쓸어주는 법, 등자로 말허리를 차는 법 등을 배워나갔다. 하루에 5시간을 훌녈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리는 데에 쓰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C-27은 경기장에 서서 하늘과 나무를 관찰했다. 매일 시간마다 색과 모양이 바뀌는 하늘을 바라보며 C-27은 세상에 단어가 천 개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C-27은 투데이와 교감을 잘 했고, 그 덕에 그 둘의 경기 성적은 점점 좋아졌다. 투데이의 몸값은 점점 뛰어올랐고, 돈을 벌기 위한 인간들은 쉴 틈 없이 투데이를 달리게 했다. 그리고 투데이는 신기록을 경신한지 3개월 만에 무너졌다. 투데이는 관절이 아팠고,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했다. 투데이의 고통을 알아챈 것은 오로지 C-27뿐이었지만 그 누구도 로봇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C-27은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경기 중 스스로 낙마했다. 뒤에서 달려오는 말발굽에 밟혀 골반과 하반신이 전부 부셔졌지만, C-27은 투데이를 지켰다.


이제 쓸모 없어진 C-27은 수거업체에 실려가 몸이 조각조각 나위어 다른 기계의 부품에 쓰이거나 경마박물관에 박제될 미래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뛰지 못하는 투데이는 안락사 당할 것이다.

하지만 C-27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한 소녀가 앞에 있었다. 열일곱 소녀인 우연재. 그리고 그녀는 C-27에게 '콜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브로콜리, 줄여서 콜리.

연재는 아이들 중에서 독보적으로 빨랐다. 그래서 열한살 때 학교 체육대회 이어달리기 주자로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연재에게 거는 기대가 많아서 연재가 달릴때 계속 '더!'를 외쳤고, 그에 질린 연재는 정해진 레일을 일탈해 근처 경마장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빠르게 뛰는 말과 그 위에서 고삐를 잡고 있는 기수 휴머노이드를 봤다.

그 이후로 연재에게 달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공부도 포기한 채 학교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지내며 밖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연재를 받아줄 곳은 얼마 없었고, 간신히 잡은 아르바이트 자리는 휴머노이드인 '베티'에게 빼앗겼다.

연재는 아르바이트에서 짤린 날, 집 근처 경마장으로 갔다. 4년전 쯤 부터 경마장을 드나든 자신의 언니 은혜를 찾아서. 그리고 그곳에서 C-27을 발견했다. 경기 도중에 낙마해 뒤에서 오는 말에게 밟혀 하반신이 망가졌다는 말을 덤덤히 하면서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했다는 독특한 휴머노이드. 그래서 연재는 받은 퇴직금을 탈탈 털어 이 망가진 휴머노이드를 샀다.

『천 개의 파랑』은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가 된다. 콜리와 연재 외에도 다리가 불편한 은혜, 연재와 은혜의 엄마이자 소방관인 남편을 잃은 보경, 경마장의 말들을 담당하고 있는 수의사 복희 등등.

전체적인 내용으로는 로봇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연재가 콜리의 다리를 고치고 주변 인물들의 도움으로 안락사를 앞둔 투데이의 수명을 조금더 연장 해 다시한 번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인물 한명 한명의 절망과 고뇌, 깊숙히 가라앉고 있는 씁쓸한 과거들을 인물 시점을 통해 표면으로 드러난다.

인간의 편리함과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 그리고 그 로봇 때문에 뒤로 밀려난 인간. 로봇과 과학으로 인해 인간들 사이의 빈부격차는 더 뚜렷해지고 인간은 언제나 그랬듯 잔인해 진다.

결국 투데이와 콜리는 다시 한 번 달렸다.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야유는 무시한 채, 그저 그들 스스로의 바람으로 빠르게, 자유롭게. 설렁 무릎이 완전히 망가질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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