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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요코'는 꽤 오랜만에 접한 추억속의 이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지 2학년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당시 학교에서는 외국영화를 상영하고 감상문을 쓰는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상영했던 일본 영화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었다.
당시에도 일본문학을 꽤 즐겨 읽었던지라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 또한 찾아 읽었는데, 이 책의 작가가 바로 '오가와 요코'였다.
사실 영화도 책도 누군가가 재미있었다고 묻는다면, 글쎄. 이미 수년이 지난 기억이라 많이 퇴색했으며 그 이후에 다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지 않아 지금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참 어려웠던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와서 영화평을 찾아보니 꽤나 반응이 좋더라. 어라? 어쩌면 아직 청소년이었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깊은 무언가의 덩어리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탓인지 '오가와 요코'의 작품은 어쩐지 지루한감이 없지 않으며 어려울 것 같은 이미지였다. 그래서 이번 신작인 《침묵 박물관》의 작가가 오가와 요코라는 것을 알고서 이번에는 또 얼마나 어려울지 걱정 부터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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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평화로운 한 마을, 박물관 기사인 주인공 '나'는 한 노파가 박물관을 세울 계획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노파는 무척이나 괴팍한 사람이었고, '나'는 자신을 별로 탐탁치 않아하는 듯한 노파의 태도에 짐을 싸서 돌아갈 준비를 하지만 노파의 양녀인 소녀가 뜻밖에도 노파가 '나'에게 박물관을 맡기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이렇게 '나'는 기묘한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된다.
노파가 만들고자 하는 박물관에 전시될 물품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마을 사람들의 '유품'이다. 그것도 사전(死前)에 고인이 남긴 물건도, 고인의 가족이 노인에게 기증한 것도 아닌 아무도 모르게 죽은자의 집이나 일터로 찾아가 슬쩍해서 가져온 물건들이었다.
노파의 이 기묘한 수집은 노파가 10살이 되던 해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정원사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눈앞에서 봤을 때 부터 시작되었다. 죽은 정원사의 옆에 떨어진 정원사의 가위를 보며, 노파는 어쩐지 가위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수집했다. 그 때 부터 노파는 죽은 마을사람들의 물건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수집은 이제 '나'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유품이라 하며 아무런 물건을 가져와서는 안된다. 노파가 '유품'이라고 치부하는 것에는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
이를테면 불법 귀연골 제거 수술로 돈을 벌던 의사가 그 수술을 사용할 때 마다 사용했던 메스 같은 것. '나'는 처음에 어떤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점점 더 어떤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마치 10살의 노파가 한 눈에 정원사의 가위를 수집해야 한다는 욕구를 가졌던 것 처럼.
그렇게 박물관을 완성할 때 까지 '나'가 이 평화로운 마을에 머물게 되며 마을에도 기묘한 일들이 발생한다. 폭발사고에 '나'와 소녀가 휘말리기도 하며, 무엇보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 형사들이 '나'를 의심하기도 한다.
'나'와 노파, 소녀, 정원사, 가정부 그리고 침묵의 전도사. 그러고 보니 이 책에는 사람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직업이나 나이를 기반한 호칭으로 지칭할 뿐이다. 게다가 분위기가 그저 고요하다. 분명 유품을 수집하는 것이 절도라는 불법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범죄 분위기는 아니며,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왜인지 모르지만 그냥 잔잔하다.
어쩐지 오가와 요코다운 책이다. 정말, 알 수 없는 어려움이 가득한 책이라고 해야할까. 책을 이해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딱 잘라 이야기 하자만 개연성이 부족한 책이라고 해야할까. '나'가 계속해서 사촌 형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이 없거나 정원사가 자신이 만든 나이프를 계속해서 '나'에게 선물하는 등 어쩐지 의문이 가득해서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찾고 찾다가 결국 헤매게 되는 책이었다. 뒤에 이야기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끝내는 거 실화인가......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어쩐지 텅빈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뭔가 미완성인 이야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