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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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정(習靜)은 고요함을 익힌다는 뜻이다. 

침묵과 고요도 연습이 필요하다.

정신없이 세상에 흔들리는 사이, 

정작 소중한 것들이 내 안에서 빛바래 간다.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빛어내는 무늬를

우리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고요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고요를 익힌다는 '습정'

이 뜻이 꽤나 마음에 와닿는다. 세상은 시끄럽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는 사람들 조차도 댓글이며 채팅이며 언제나 떠들썩하다. 혼자 있는 시간마저 걱정과 고민으로 마음은 언제나 수근거린다. 이 시끄러움에 머리가 아파져 올 지경인 요즘 세상에, 진정한 고요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나마 책을 읽는 시간은 조용하다. 오롯이 책 속의 세상에 파묻혀 현실 속의 불안감도 잠시나마 안녕을 고할 수 있는 시간. 더욱 더 고요를 위해 쓰여진 『습정』으로 하여금 더욱 더 고요를 느끼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펼쳤다.


목차를 펼쳐보니 사자성어들과 그에 담기 뜻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나름 학창시절에는 한자에 강했고, 지금도 꾸준히 한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에 나오는 사자성어들 중 아는 단어가 그리 없다는 사실에 슬퍼졌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 1부 마음의 소식

제 2부 공부의 자세

제 3부 세간의 시비

제 4부 성쇠와 흥망

으로 각 상황에 맞는 글이 실려있다.



책의 구조는 사자성어가 크게 쓰여 있고, 그 아래에는 사자성어의 뜻과 그에 담긴 이야기가 실려있다.

'쟁글쟁글 울리는 인생의 소리'라는 뜻을 가진 산산가애(珊珊可愛). '쟁글쟁글'이라는 의성어가 귀여워서 기억속에 오래 남았다.

산산(珊珊)은 사람이 허리에 패옥을 차고 걸을 때 가볍게 부딪쳐 나는 소리를 뜻하는 형용사라고 한다. 사뿐사뿐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형용하는 표현으로도 자주 쓰인다고 한다. (43p)

구구소한(九九消寒)이라는 말이 있다. 81번의 추위를 건너야 봄과 만난다라는 뜻을 가졌는데, 봄을 맞는 데는 매일 한 송이씩 81일간 채색하는 정성이 들며, 81번의 추위를 건너야 진짜 봄과 만날 수 있다(73p)고 한다.

사자성어에 담긴 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있어서 의외로 재미있게 읽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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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탐뎡 : 어느 고서수집가의 비밀노트
장수찬 지음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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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리뷰를 3월 1일에 쓰게되어 기쁘다.

2020년의 첫 시작은 한국사와 시작할 생각으로 2월 8일에 시행되었던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에 응시했다(그리고 무사히 합격!). 사실 고3때는 동아시아사를 수능과목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온전한 한국사 과목을 공부한 건 아마 고2, 혹은 고1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한국사를 공부했다.

예전에는 위인 이름이나 유적지, 문화재 이름을 외우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귀찮고 어렵고 그랬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되서 공부한 한국사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학교 성적에 무관해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그런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유적지와 문화재, 그 중 고서적 외우는 게 재미있었다. 학생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몇년만의 역사 공부는 생각 외로 많은 생각과 교훈을 남겼고, 특히 일제 시대 부분에는 강의를 들으면서 눈물 뚝뚝 흘리며 공부했다. 세월이 흐를 수록 역사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며 점차 삶에 깊게 파고든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에 대한 공부는 꾸준할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사 공부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라, 최근 일제 시대 문학이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들을 찾아읽게 된다.

사실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현대 문학보다 근대와 고전 문학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 그리 특이한 현상은 아니긴 하지만, 독서 기록용으로 SNS를 운영하면서 1~2년 정도 현대 문학에 치우친 독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면에 대해서 역사의 여운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어쨌든, 고대서적에 관해 검색해 보다가 발견한 책이 『보물탐뎡』이다. 작가인 정수찬은 고서수집가로 옥당에서 사서를 편수하던 수찬(修撰)처럼 청반(淸班)의 이름을 얻길 꿈꾸고 있다 한다. 『보물탐뎡』은 이 고서수집가의 수집기록과 그 서적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옛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탐구하고 있다.

책등도 고서 느낌나게 마감이 되어 있어 책의 분위기가 더욱 산다. 매끄럽게 펼치고 책의 의미와 일맥상통 한다는 점에서 좋은 디자인이지만, 쉽게 닳아서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껄끄럽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스스로가 오래된 유물에 무척 소홀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오래된 집들이 현대식 가옥으로 개량되면서 벽장 속 낡은 고서와 문서들이 무더기로 바깥세상으로 나왔지만, 일부는 불에 태워지고, 일부는 고서점이나 고물상에 팔려 갔습니다. (중략) 후손들의 무관심으로 예전에 흔했던 것들이 희귀해진 것입니다." -25~28p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기를 났던 한국인들에게 역사는 뒷전으로 밀려 있던 시기가 있었다.

본래 고려때는 몽골의 침략으로, 조선때는 일본의 침략, 이를 거쳐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해외로 반출되거나 전란으로 인해 소실되어 고서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 후손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여기저기 흝어지고 사라져버린 수 많은 고서들이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역사는 기록이다. 겪지 못한 먼 과거의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은 결국 그 시기에 쓰여져 남겨진 기록 뿐이다. 우리는 얼마만큼의 역사를 잃어버렸나?

한국사 강의를 들으면서 혹시 시골집에 남겨진 오래된 책들이 있다면 뒤져보라던 선생님의 말씀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혹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래된 시골집의 창고를 뒤져보도록 하자.


"현재 볼 수 있는 남녀평등의 흐름, 재혼의 빈번함, 족보에 대한 무관심 등은 고려시대에는 흔히 있던 풍경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역사란 것은 시대에 따라 돌고 돈다는 속설이 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인 듯 합니다." -197p


『보물탐뎡』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구절은 "역사란 것은 시대에 따라 돌고 돈다는 속설이 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인 듯합니다." 라는 부분이다.

한반도의 역사는 길다. 하지만 몇 천년의 시간동안 나라는 몇 번 바뀌었고, 그에 따라 조금씩 생활 모습들이 바뀌어 왔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의 한국과 다른 모습에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벗겨보면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 특히 고서속에 등장하는 조상들의 모습은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았다. 먹고 사는 건 중요하며,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 어디든 욕심 많은 자들이 존재하며, 지위 높은 나리들은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눈이 먼다.

한국은 대체로 조선시대의 모습을 물려 받았고 한다. 그러나 현대의 남녀평등의 모습은 고려와 닮았다. 결국 현재는 지금까지 겪어온 나라들의 부분부분이 합쳐져 만들어진 복합체인 셈이다.


과거와 현재가 닮았다면 역사는 더욱 중요하다. 역경을 헤쳐나갈 단서가 역사 속에 숨겨 있을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것은 남겨진 서적을 통해서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은 시대에 막론하고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일까.

조상들의 삶을 엿보고 싶다면 고서를 찾아 읽어보자. 그 속에서 현대인과 닮은 모습들을 발견하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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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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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이름은 패티 '유미' 코트렐. 아마 이미 작가 소개를 읽어 알고 있어서 그런가 어쩐지 미들네임인 '유미'가 한국인으로서 너무 익숙하기만 하다. 작가는 1981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중서부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헬렌은 남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5년만에 유년기 시절의 집으로 돌아간다. 피가 섞여있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헬렌에게는 역시 한국에서 입양된 남동생은 그나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동생이 죽었다.

무엇이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친절한' 헬렌은 직접 나서서 동생의 죽음을 밝혀 내겠다고 다짐하며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향한다. 과연 오랜만에 보는 양부모는 자신을 어떻게 반겨줄까? 그러나 헬렌을 본 부모님의 반응은 그리 따스한 풍경이 아니었다. 꽤나 뜻밖이라는 듯이, '왜 왔지?'라는 듯이 부모님을 헬렌을 맞이했다.

헬렌에게서 유년시절의 기억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어쩌면 암울함과 절망의 연속이였기 때문에 집을 떠난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을 테지. 부모님의 꽉 막힌 절약과 강압적인 신앙심 아래서 억압된 삶을 살았다. 게다가 헬렌과 남동생은 동양인, 수많은 사람들의 인종차별을 끊임없이 받아냈다. 그런 시절을 살아오다가, 끝끝내 남동생은 자살을 선택했다.


사실 읽으면서 헬렌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이 너무나도 의식의 흐름처럼 느껴져서 꽤나 복잡한 글이었다. 그리 깨끗하지 않은 서사와 알기 힘든 헬렌의 성격에 뭔가 불편한 글이었다. 그러나 읽을 수록 묘하게 끊을 수 없는 이야기.

남동생은 컴퓨터 휴지통에 자신이 쓴 글을 남겼다. 실수로 지우지 못한 것일까, 혹은 일부러 남겨 둔 것일까. 남동생의 글은 꽤나 마음 아리게 다가온다.

헬렌의 남동생은 헬렌에게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헬렌은 매몰차게 말하며 꿈에서 깨라는 듯이 상처만 남겼다. 하지만 남동생은 아무도 모르게 친엄마를 찾았고, 한국에 갔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친엄마와의 만남을 바로 코 앞에 두고 남동생은 도망치듯이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장기기증을 하기 위해 꾸준히 병원을 다녔던 아이, 10대의 끝자락에서 부터 그저 죽음만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 그것이 헬렌의 남동생이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쭈욱 살아온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며,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고,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죽음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을까. 어디를 가도 또 다시 버려지고 겉돌아야 하는 삶이었을까.


솔직히 읽으면서 그리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덮고나니 생각난다.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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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기와 거주하기 - 도시를 위한 윤리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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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리처드 세넷은 노동과 도시화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이번에 출간한 『짓기와 거주하기』는 작가의 오랜 작업인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한다. 책 표지에 적혀있는 『장인』과 『투게더』와 함께 묶어 커다란 프로젝트를 계획했나 보다. 사실 건축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이번 기회로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싶어서 읽은 책이다.

일단 책을 읽기 전에는 『짓기와 거주하기』라는 제목을 보고 그저 건축학에 관련된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에 시멘트를 바르고 벽돌을 쌓고, 이런 이야기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건축이 맞긴 하지만, 더 넓은 범위를 아우르고 있는 책이다. 건축을 넘어서 도시로, 도시로 넘어서 인간으로. 인간과 그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모든 요소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며 공존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앞으로는 어떤 환경을 찾아 떠나야 하는지 큰 지표를 그리고 있다.


책에서는 '빌'과 '시테'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빌'은 물리적인 도시이고 '시테'는 정신적이 도시이다. 제목인 『짓기와 거주하기』는 빌(=짓기)과 시테(=거주하기)를 뜻하고 있다. 도시계획이라는 것을 간단히 '편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교통이 잘 뚫리고, 접근성이 좋고...'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큰일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도시의 구성 요소들은 모두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정신에게 까지 영향력을 끼친다.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 볼 여유 조차 없도록 만드는 것도 도시이며, 음악을 즐기며 여유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모두 도시 전체가 만들어 내는 현상인 것이다.

특히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2부 거주의 어려움 중 「6. 테크노폴리스의 토크빌」이다. 여기서는 익숙한 도시가 예시로 등장하는데, 바로 인천에 위치한 '송도'이다.

'테크노폴리스'라는 명칭에 걸맞게 거대한 스크린들이 줄지어 서서 도시의 대기 품질이나 전기 사용, 교통 흐름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녹지와 공원이 잘 구성되어 환경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 도시에 대해서 꽤나 악평을 하고 있다.



작가는 송도가 어떻게 변했을지 알아보기 위해 젊은 연구자 팀을 파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화가 났다! 그 이유는 송도가 전혀 스마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시 운영 방식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식이었고, 도시에서 생성 효과, 귀추법, 초점 관심은 무시한 채로 사용자 친화성만 갖다 붙인 셈이다.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장소의 경험을 가볍게 취급한 도시였다고 한다.

사람의 시야에서는 도시 전체를 보기는 커녕, 높은 건물의 꼭대기 마저 고개를 젖혀야 간신히 볼 수 있을까 한다. 고작 자연스럽게 보는 것이라고는 눈 앞에 펼쳐진 좁다란 인도나 저 멀리 보이는 신호등 뿐. 그러니 도시가 잘 구성되었는지 어떤지를 알 수 있을리 만무하다. 예전에 송도를 가봤는데 그저 조용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곳(!)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나중에 다시 송도를 방문했을 때 무언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까 꽤나 고대되는 일이다. 어쩐지 이 책을 읽을 수록 시야가 한층 더 넓혀지는 느낌이다. 내 신발 코에서 저 멀리 보이는 신호등까지, 신호등에서 빌딩 옥상까지, 빌딩 옥상에서 도시 전체까지!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라는 질문이 계속 기억난다. 이 질문은 리처드 세넷이 처음 시테와 빌의 관계를 알아내려고 애쓰던 무렵에 도시학자인 제인 제이콥스가 그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리고 그는 3부 도시의 개방에서 답을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완전한 답일까? 세상은 변화하고 그에 발빠르게 태세를 전환하는 것은 환경이다. 어쩌면 지금은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환경 문제가 등장해서 도시와 인간에게 영향을 줄 지도 모른다. 그럼 또 다시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도시는 인간에게 무엇이고 어떻게 지어져야 할까. 너무 인간에게 맞추지 않으며, 너무 환경만 고려하는 것이 아닌 그 지점에서 계획된 도시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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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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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이념, 사랑과 상처, 계층과 계급, 여성의 삶을 작품에 담아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던 박완서 작가가 타계한지 9주기를 맞았다.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많은 출판사들이 그녀의 작품을 재출간 하거나, 그녀의 삶을 담은 신간을 출간하고 있다. 작가정신에서 출간한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출간된 박완서 작가의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을 한데 모아둔 책이다.


소설, 산문, 동화 총 67권의 책에 실린 서문과 발문을 모아두니 책 한권이 만들어 지는 것도 참으로 놀랍다.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하여 겹치는 책들이 더 많지만, 모든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출간할 때와 재출간을 할 때, 그만큼의 시간 차에서 박완서 작가가 새롭게 느끼거나 무던해진 감정 하나하나를 모두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은 것 같다.



"나는 처녀작 『나목』을 사십 세에 썼지만, 거의 이십 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썼다고 기억된다. 그래 그런지 그것을 썼을 당시가 6년 전 같지 않고 아득한 젊은 날 같다." -19p(『나목』(열화당) 후기 中)


박완서 작가의 첫 작품은 동아일보사에서 1970년에 발간한 『나목』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 학업을 중단했고, 그 이후로는 누군가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오다 40세가 되어서야 첫 작품을 썼다. 그녀의 등단에 대해서 누군가는 늦은 나이라고, 혹은 적당하거나 이른 나이라고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작품을 쓰는 그 순간 만큼은 누구보다 어리고 순수한 유년 시절의 모습이었다.

작품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한 책을 읽는 독자와 출간에 도움을 준 출판사 직원들에게 얼마나 감사를 표하고 있는지가 작가의 말에서 모두 드러난다. 박완서 작가의 책 한권을 출간하는 모든 과정 속에는, 작가의 사랑이 이토록이나 듬뿍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책 구성은 페이지 상단 좌측이 책 제목과 출판사, 출간일이 적혀있고 상단 우측에 책 표지 이미지가 실려있다. 또한 책이 첫 출간인지(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면 첫 출간이다) 개정증보판인지, 또는 재출간인지도 나와있어 참 친절하다. 게다가 풀컬러!


책 뒤에 작품 화보에 수록된 67권의 책 표지가 실려있는데, 모두 컬러로 되어있으니 어쩐지 눈이 즐겁다. 내가 읽었던 책이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이었나 기억을 더듬어가며 찾아보는 맛도 있다. 참고로 1900년대 출간된 책의 표지를 보면 정말 오래된 느낌이라 웃기기도 하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옛날 그 감성.



"꾸준하게 청소년 독자가 많았다는 건 나에게 큰 행복이기도 하고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하다. 요즘도 싱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는 독자 편지를 받으면 내 입안 가득 싱아의 맛이 떠오른다. 그 기억의 맛은 언제나 젊고 싱싱하다." -108p(『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출판) 서문 中)


참고로 내가 박완서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다. 박완서 작가의 경험만을 써내려간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 책으로, 일제강점기에서 부터 6.25전쟁 까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지낸 작가의 유년시절 이야기이다.

나도 이 책을 청소년 시절에 읽었다(선생님! 보고 계시나요?!) 그리고 과연 싱아가 무슨 맛일지, 게다가 '비릿하고 들척지근하게 맛이 없다'는 아카시아는 또 무슨 맛인 건지 참 많이 상상했었다. 이제 와서 인터넷으로 싱아에 대해 검색 해 보았는데, 저 자그마한 꽃에서 맛이라는 것이 나긴 할까 여전히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다.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읽은 것 보다 읽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내 독서 시야는 이렇게나 어두컴컴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언젠가는 박완서 소설전집을 독파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이 책은 박완서 작품에 입문 하는 사람, 혹은 나처럼 몇몇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에게 더욱 추천하는 책이다. 작가의 말에 실린 작가의 추억과 생각을 읽어 나간다면 그래도 한 권 정도는 가슴 깊이 새겨져 '아, 이 작품은 꼭 읽어봐야지.'하고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을테지. 영화 트레일러의 느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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