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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전쟁과 이념, 사랑과 상처, 계층과 계급, 여성의 삶을 작품에 담아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던 박완서 작가가 타계한지 9주기를 맞았다.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많은 출판사들이 그녀의 작품을 재출간 하거나, 그녀의 삶을 담은 신간을 출간하고 있다. 작가정신에서 출간한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출간된 박완서 작가의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을 한데 모아둔 책이다.
소설, 산문, 동화 총 67권의 책에 실린 서문과 발문을 모아두니 책 한권이 만들어 지는 것도 참으로 놀랍다.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하여 겹치는 책들이 더 많지만, 모든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출간할 때와 재출간을 할 때, 그만큼의 시간 차에서 박완서 작가가 새롭게 느끼거나 무던해진 감정 하나하나를 모두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은 것 같다.
"나는 처녀작 『나목』을 사십 세에 썼지만, 거의 이십 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썼다고 기억된다. 그래 그런지 그것을 썼을 당시가 6년 전 같지 않고 아득한 젊은 날 같다." -19p(『나목』(열화당) 후기 中)
박완서 작가의 첫 작품은 동아일보사에서 1970년에 발간한 『나목』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 학업을 중단했고, 그 이후로는 누군가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오다 40세가 되어서야 첫 작품을 썼다. 그녀의 등단에 대해서 누군가는 늦은 나이라고, 혹은 적당하거나 이른 나이라고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작품을 쓰는 그 순간 만큼은 누구보다 어리고 순수한 유년 시절의 모습이었다.
작품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한 책을 읽는 독자와 출간에 도움을 준 출판사 직원들에게 얼마나 감사를 표하고 있는지가 작가의 말에서 모두 드러난다. 박완서 작가의 책 한권을 출간하는 모든 과정 속에는, 작가의 사랑이 이토록이나 듬뿍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책 구성은 페이지 상단 좌측이 책 제목과 출판사, 출간일이 적혀있고 상단 우측에 책 표지 이미지가 실려있다. 또한 책이 첫 출간인지(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면 첫 출간이다) 개정증보판인지, 또는 재출간인지도 나와있어 참 친절하다. 게다가 풀컬러!
책 뒤에 작품 화보에 수록된 67권의 책 표지가 실려있는데, 모두 컬러로 되어있으니 어쩐지 눈이 즐겁다. 내가 읽었던 책이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이었나 기억을 더듬어가며 찾아보는 맛도 있다. 참고로 1900년대 출간된 책의 표지를 보면 정말 오래된 느낌이라 웃기기도 하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옛날 그 감성.
"꾸준하게 청소년 독자가 많았다는 건 나에게 큰 행복이기도 하고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하다. 요즘도 싱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는 독자 편지를 받으면 내 입안 가득 싱아의 맛이 떠오른다. 그 기억의 맛은 언제나 젊고 싱싱하다." -108p(『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출판) 서문 中)
참고로 내가 박완서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다. 박완서 작가의 경험만을 써내려간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 책으로, 일제강점기에서 부터 6.25전쟁 까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지낸 작가의 유년시절 이야기이다.
나도 이 책을 청소년 시절에 읽었다(선생님! 보고 계시나요?!) 그리고 과연 싱아가 무슨 맛일지, 게다가 '비릿하고 들척지근하게 맛이 없다'는 아카시아는 또 무슨 맛인 건지 참 많이 상상했었다. 이제 와서 인터넷으로 싱아에 대해 검색 해 보았는데, 저 자그마한 꽃에서 맛이라는 것이 나긴 할까 여전히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다.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읽은 것 보다 읽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내 독서 시야는 이렇게나 어두컴컴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언젠가는 박완서 소설전집을 독파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이 책은 박완서 작품에 입문 하는 사람, 혹은 나처럼 몇몇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에게 더욱 추천하는 책이다. 작가의 말에 실린 작가의 추억과 생각을 읽어 나간다면 그래도 한 권 정도는 가슴 깊이 새겨져 '아, 이 작품은 꼭 읽어봐야지.'하고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을테지. 영화 트레일러의 느낌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