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
판매중지


신경숙의 [외딴방]을 중학교때 봤다.

너무 많이 울었다.

그리고 일반 고등학교에 가지않고 산업체 고등학교를 가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낮에 일하고 밤에 책 볼래.

그래서 신경숙 같은 소설가가 될래. 고통 속에 글이 나온다. 뭐 그런 개폼에 빠져있었다.

 

그때 나는 사뭇 진지했지만 가족들은 기도 안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 철없던 때다. 지금도 철없지만.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면 쉽게 그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감정이입한다.

형이상학적인 글이 아닌 딱 우리네 이야기를 맛깔나게 하는 작가. 신경숙.

그리고 책 한권, 한권을 심혈을 기울여서 쓰는 작가. 신경숙.(그녀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책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녀는 쉽게 쓰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다. 읽기 쉬운 글이 꼭 어렵게 써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엄마를 부택해>가 60만권이 팔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붉은 표지와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의 모습만으로도 내용이 짐작이 됐다.

그리고 접하지 않으려고 해도 신문을 보며 인터넷을 하며 슬쩍 슬쩍 들려오는 줄거리를 들으며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더 켜졌다.

 

고생만 하던 엄마의 실종, 가족들이 생각했던 아니 기억했던 엄마의 모습들.

분명히 슬프고 분명히 감동적인 내용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현실성있는 슬픔에 겁이 났다.

엄마가 겪어야 했던 고난, 그리고 동조할 수 밖에 없는 자식된 나의 처지...

 

그러다가 엄마를 부탁해를 읽어버렸다.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손에 잡으니 놓을 수 없었다.

내용은 짐작한 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그 감동은 짐작한 것과 달랐다.

 

자식들이 살았던 서울의 이곳저곳을 헤매이던 엄마의 모습. 딱딱한 슬리퍼에 살이 비어져 나오고

고름이 뚝뚝 떨어져나가는 엄마의 모습. 슬프다. 감동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기도 전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엄마를 [엄마]라는 존재가 아닌, 한 여자로 인간으로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엄마, 아빠의 이혼 앞에서 나는 엄마를 내 엄마로만 이해하려고했다. 그래서 엄마가 갖고 있는 분노와 엄마의 눈물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엄마는 <엄마를 부택해>의 엄마보다 많이 젊다. 아직도 여자로 사랑받고 인간으로 자기의 꿈을 누릴 만큼 건강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런 엄마를 엄마로만 이해하려고 하고 엄마가 여자가 된 다는 것에 반감을 지니고있다. 이런 나의 태도는 바뀌기 힘들것이다.

 

엄마에게는 [엄마를 부탁해]를 보여드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엄마를 부양하면서도 딸들에게는 자신을 부탁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이 책을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 친구, 엄마의 자식들인 그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를 좀 더 많이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것을 만들라고 하고 싶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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