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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의 순간들 ㅣ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이정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평점 :
거리 사진가의 숙명인, '누군가의 모습을 허락받지 않거나 알리지 않고 찍어도 되는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초상권은 지금도 뜨거운 화두 중 하나다. SNS로 사진이 퍼져나가면서 무분별하게 공유되는 타인의 얼굴은, 어떻게 보면 일상적 사진예술의 일부분이지만, 개인의 권리를 침범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어진 얼굴은 개인의 영역이다. 소위 불법 촬영물로 구분할지, 그렇지 않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위노그랜드의 군중 사이에 섞여 들어가 찍는 방식이 유행하자, 반대 급부로 인위적인 요소들을 도입하는 방식들이 생겨나면서 '사진에 찍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찍으면서 존재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평범하면서 세세하게 의도된 사진'은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최신 감각이 아닐까 싶다. 인스타그램의 사진들도 정면을 바라보면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은 이제 구시대 취급을 받는다. 대세는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을 의도한 사진이거나, 태양광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얼굴 방향이 의도된 사진 등 최대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구도, 몸의 방향, 팔과 다리의 자연스러운 움직임들로 이루어진 사진이다. 책에서 소개된 디코르시아의 '뉴욕'을 보는 순간, 영화 스틸컷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이런 의도적인 작업이 영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여전히 '사진' 이다' 라고 짚어주어서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비록 내가 사진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어느 정도 끌어올 수 밖에 없더라도 무엇보다 나는 사진을 보고 거기에서 어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 보고 싶다.
그리고 특정한 사진가들 간의 차이점에 대해 배우고 싶고 적어도 그 차이에 민감해지고 싶으며, 사진가들의 스타일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다.
스타일이 내용 안에서 드러나는지, 혹은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 내용에 의해 드러내는지도 알고 싶다.
이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얼마나 다르게 찍었는데 보는 것이다.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말이 아닐까, 내가 항상 갈망했던 마음들이 글로 써져있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해결 방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면서 작가마다 똑같은 것을 얼마나 다르게 찍었는지 소개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사진'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잠깐 소비되고 마는 '사진'을 찍을 것인지, 내가 하고싶은 말을 담아내는 '사진'을 찍을것인지에 대한 생각들도.
성공하고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들이 여성을 소모품처럼 누드모델로 사용하고, 도덕, 윤리의 개념 없이 계속 젊은 모델로 갈아치우는 행태가 보기 불편했다. 그 사진으로 화제에 오르고, 여자는 성적으로 소비되고 전시되면서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지만 그것도 다 예술로서 성공했다,라는 포장도 거북했다. 가해자가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피해자가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지금의 power harassment 와 다를 게 없다.
'도로시아 랭'의 사진은 정말 책 속에 언급된 것과 같이 '인간의 침식' 그대로였다. 피사체의 희망 없는 어두운 내면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1930년대 대공황 그 자체를 표현한 사진작가이며, 작가의 말 처럼 마음과 생각을 담아 찍은 사진이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공감하고, 스며들면서 설득력 있게 순간이 전달 된 것 같다.
책에서는 주유소, 거리, 창문, 이발소, 펜스, 건물, 계단, 문 등 여러가지 거리 풍경들이 작가의 특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찍힌 예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사진은 순간을 담는 예술인데, 순간이 오랜 시간 반복된다면 어떨까?' 라는 책소개 처럼 다 읽고 나서야 왜 'The ongoing moment'가 제목인지 와닿았다. '순간의 장면이 지속적으로 회자되거나, 지속적으로 촬영의 대상이 되거나' 는 독자의 해석에도 맡길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사진은 시간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 오롯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참에 '인간과 사진', '그러나 아름다운' 까지 근 시일내에 읽어보려 한다. 아자아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