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 몸의 일부가 갑자기 격렬히 반응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p.124)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들이 삼백 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하라의 열풍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뤄야 한 단 말인가? 죽음이 내일 방문을 노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은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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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다보면 진리를 깨닫게 된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좋으나, 나날이 위험한 일이 닥쳐와 매일 방심할 수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굴해지는 것도, 표리부동한 호신복을 입는 것도 모두 진리를 알게 된 결과로서 진리를 아는 것은 나이를 먹은 죄다. 노인 중에 변변한 자가 없는 것은 이런 이치 때문인 것이다.

- 메이테이 쪽에서 볼 때 아저씨의 가치는 고집을 부린 만큼 하락한 셈이나, 아저씨로서는 고집을 부린 만큼 메이테이보다 훌륭해진 것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엉뚱한 일도 가끔 있다. 고집을 끝까지 부려서 이겼다고 생각할 때, 본인의 인물 시세는 크게 하락한다. 이상하게도 완고한 본인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면목을 세웠다고 생각하므로 이후로 남이 경멸하여 상대해주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행복하다 생각한다. 이런 행복을 돼지의 행복이라고 말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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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라는 곳이 참 재미있지. 결국 우리는 스크린에 쏘아진 빛을 보기 위해 일부러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거 아닌가." (p.98)

우리는 각자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잘하고 싶었는데,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콘티를 열심히 그렸는데, 우리는 왜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을 미워하게 될까. (p.115)

고태경은 가끔 의미에 파묻힌 사람 같았다.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의 생존법이었을까. (p.124)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p.138)

삶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오케이를 외친 순간들이 드물게 있었다. 무언가가 좋다는 감정,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 사람들은 그래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불확실한 생에 확신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어서. 결국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많은 선택지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고백하는 것이었다. (p.198)

영화를 정말로 사랑하니까 영화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승호의 말. 누군가에게는 궤변으로 들릴 말이지만, 내게는 궤변이 아니었다. 영화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승호가 단지 자신이 뭔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p.205)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외부에서 누군가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으면서도 그러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지자가 되어주고 싶어졌다. (p.226)

나는 앞으로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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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세요? 잘 배운 미국 백인의 전형적인 미소 같달까. 나는 흠잡을 데 없는 공정함과 바다 같은 너그러움을 갖고 있으며 불쌍한 너에게 작은 도움을 제공하고자 하는데, 이를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으니 어서 결정하렴, 같은 뜻을 담은 미소요.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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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고 한 말도 당신이 한 말이다. 흥분해서 한 행동도 당신이 한 행동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마약이든 이념이든 사랑이든 취해서 한 말과 행동도 당신이 한 것이다. 엉겹결에 한 말이나 행동도, 치밀한 계산과 기획 아래 한 말이나 행동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당신이 한 말이고 행동이다. 이 사실을 부정해선 안된다. (p.9)

나는 내 문장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에 문장을 다닥다닥 붙여 쓴다. 어떤 문장도 완전하지 않아서, 한 말을 또 하고 같은 말을 다르게 덧붙이는데, 아무리 덧붙여도 완전해 지지 않는다. 내 문장은 어떻게든 이해받으려는 안간힘에 의해 기워진 누더기와 같다 (p.20)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니고 꾸준해야 할 이유이다. (p.92)

글쓰기에 좋은 날이 따로 없으므로 언제나 쓴다. (p.100)

아마도 그 소설 속 소설가도 시장의 유혹과 위협 앞에서 문학을 지키기 위해 그런 야무진 독자 - 소비자를, 거의 필사적으로 만들어냈을 것이다. 1991년의 소설가도 버거워했던 그 유혹과 위협을 21세기의 소설가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낙관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고,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를 제외하고 말하면, 그런 유혹과 위협 앞에서 때로는 긴장하고 때로는 초연하게 써온 것이, 그처럼 아슬아슬한 것이 문학이었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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