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니야 - 아주 짧은 초상화
한승오 지음 / 강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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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한 지은이 한승오는 내가 알기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으로 청년기의 한때를 보내고 2001년

농사경험도 없이 연고가 전혀 없는 홍성에 빈집을 빌려 소작농사를

짓기 시작한 사람이다.

농사를 지으며 느끼는 소회들을 10여년에 걸쳐 에세이 형식으로

몇 권 출간했던 그가 낸 첫 소설집이라 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그러나 굳이 그런 큰 관심이 아니어도 그의 문장은 술술 잘 읽힌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마지막 장까지 읽고 말았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소설가의 치기가 없는 담백한 문장들.

묵직한 삶의 애환들, 함께 어울려 살길 간절히 원하였으나 떠밀리는

주변부 인생들에 대한 따스하지만, 어떤 과장도 너스레도 떨지 않

는 조용한 관조의 시선이 이 담백한 문장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듯하다.  

 

그가 소작농으로, 이주민들을 위한 한글학교 교사로 일해오며

만난 이웃과 본인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한 각각의 단편들을 읽

으면서, 큰 소리들에 묻혀져 버리는 작은 신음들(작다고 해서 덜

아픈 것은 아닌)을 지나치지 않는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높이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에 작가 스스로가 썼듯이,

이 단편집은 그(주인공)의 전모가 불현듯 드러나는 어느 순간을

그려낸 초상화들로 이뤄진 모음집이다.

그래서 작가는 더더욱 설명이 아닌 묘사에 힘썼는 모양이고,

나는 저도 모르게 그 현장에 동참한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난초향같이 귀한 여운을 남기는 그의 담백한 단편집을 덮으며,

벌써 다음 작품이 많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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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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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하면 흔히들 아우슈비츠의 희생자,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분쟁, 베니스의 상인, 세계 금융계의 거두들, 아인슈타인 같이 뛰어난 두뇌를 떠올리게 된다.
역사적으로 로마나 바빌론같은 강대한 국가를 형성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나라없이 세계를 오랜 동안 떠돌았음에도
그 많은 문명과 민족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동안에도 유대인은 4,0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 아주 특이한 민족이다.
그들은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과 신 앞의 평등이라고 하는, 고대 어느 세계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획기적인 개념으로
고대사회를 붕괴시키고 이후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었으며 기독교 탄생의 모태가 됨으로써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민족이기도 하다.

 

저자인 폴 존슨은 유대인이 아니다. 그는 카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저서 <기독교 역사>를 집필하는 동안 기독교가 유대교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유대인의 역사>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집필계기를 밝히고 있으나,
이 책은 카톨릭 신자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문학자로서의 시각에 충실한 책임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그는 유대교의 유일신관이 이성적 사고의 결과물이라던가(75페이지 아래),
사울의 실패를 왕의 필수 조건인 군사적 소양의 부족 때문이라고
보는 등 성서의 관점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서술들을 곳곳에 펼친다.

그러나, 이렇듯 인문학적 관점에 서 있기 때문에 그는 성서와 그에 호의적인 저술들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눈으로 드러나는 증거와 고고학적인 발견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방대한 자료를 모아낼 수 있었고,
성서와 고고학적 발견을 접목시킨 놀라운 저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특히 앞부분의 노아, 아브라함, 요셉과 출애굽에 대한 내용들은 기독교신자에게는 성서의 인물들에 역사성을,
비기독교신자에게는 성서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경외감을 주는 내용들이 펼쳐져서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빨아들이듯 책 읽기에 속도가 붙는 내용들이다.

 

유대인은 번성할 때보다 역경이 닥칠 때 단호하게 원칙을 지켰고 유대인 특유의 종교적 상상력과 독창성을 발전시키고 명석함과 열의를 발현하는 민족이다. 나라가 없을 때, 외세가 쳐들어와 압제할 때 율법에 더 순종하고 하나님을 더 경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심에는 토라(모세5경)가 있다.

이 책은 유대교 신앙의 내용들을 교리로서 나열하지 않고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과 연계되어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신앙과 생활을 유지 발전시켜나갔는가를 드러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요교리가 삼위일체 신앙인 데 반해 유대교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므로 그 교리가 들어설 이유가 없는 등
교리가 전혀 다른 종교로 발전되어 갔고,기독교 국가가 성립된 초기부터 서로간에 종교적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국가가 없는 떠돌이 유대인은 피억압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국가의 보호를 기대하지 못하는 대신 토라를 통해 자신들을 이민족과 구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이어나갔고, 외교적으로는 무력 아닌 평화로써 타종교 및 타민족 속에서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편을 삼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세때 흑사병의 책임을 물어 살해당하는 등,
반유대주의는 매시기마다 모습을 변화시키며 유대인들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고 방랑하게 만들었다.
<유대인의 역사>는 시대별로 지역별로 피억압자인 유대인의 입장에서
억압에 대응하여 그들의 신앙과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고, 또 역으로 그런 변화가 서방세계에 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역사자료들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유대민족이라는 피해자 입장에서 본 세계사라 불릴 만한 스케일의 서술이다.

 

20세기 세계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로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전세계적으로 민족주의운동이 발흥하는 대격동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시온주의를 기치로 벨푸어 선언을 얻어내고
외교적 노력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땅에 관한 역사적인 소유권,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라는
그들의 장구한 세대를 걸쳐 이어져온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늘도 아랍민족주의와 전쟁을 치뤄야하는 유대인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
민족주의를 넘어선 인류 공존, 평화의 가치를 어떻게 현실 속에 구현할 것인가.
홀로코스트를 거치면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들의 국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공감할 수 있으나
더 많은 수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추방하게 되었다는 도덕적 책임 문제는
평화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늘 따라붙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언명을 하며, 유대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나로서는 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엄청 두툼한 책이지만, 두툼한 것 이상의 분량을 읽어내게 하는 책이다.

흡인력이 있어서 지루함 없이 읽어내려갔고,
앞부분의 고대역사에서는 성경을 옆에 두고 찾아보면서 읽곤 했다.
(해당되는 성경 귀절을 본문에 기록하지 않고 편집자주로 돌려버린 것은
아마도 책의 부피가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해서였는 거 같다.)

고대사의 경우 폴 존슨의 작업은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진 성서를 인간의 눈으로 인정하게끔 하는 작업이었던 거 같다.
책을 덮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매순간, 우리는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영이 RNA의 이중나선의 결정적인 한 축처럼 우리 삶과 역사에 임재해계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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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서 해방된 교회 - 교묘한 맘몬 숭배에서 벗어나는 길
박득훈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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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의 몇몇 대형교회들의 돈과 얽힌 추태를 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가슴을 치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부끄럽다는 솔직한 고백도, 혹은 이러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도

교회내에서 하기가 어려운 게 또한 우리의 현실인데

이런 책, 이런 목사님도 계시다는 것은 내겐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 앞부분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을 한 것은,

한국 교회 부패의 근원에는 교회 내에 깊숙이 잠입해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있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고

따라서 먼저 그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경제학적인 설명들이 앞부분에 배치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덕분에

책이 좀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혹자는 뒷부분을 잘 읽지도 않고

자본주의를 설명함에 마르크스적 시각을 차용해온 것에 대해

레드 컴플렉스를 예민하게 느낄 수도 있겠으나,

저자가 "오해를 무릅쓰고 마르크스를 인용하고.. 이글턴을 인용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돈과 물질에 흔들려

분별력을 잃고 타락할 때 심지어 나귀와 그의 입을 통해서도 경고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고 설명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놀라운 점은

단지 한국 (대형)교회의 병폐를 외형적 성장 제일주의와 같은

부분적인 잘못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맘몬(돈)을 동시에 섬기려는 태도,

즉 불신앙의 문제로 깊이 있게 들어가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가 돈 많이 벌면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고

가난하게 살면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인가.

십일조만 확실히 내면, 부자가 속해 있는 불평등 구조에서

그가 어떻게 그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고, 또 십일조를 뺀 나머지를

어떻게 누리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가.

부자 나사로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 나사로가 행한 특별한 악행이 언급되지 않음에도

그가 지옥에 떨어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거지 나사로는 부자 나사로의 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다)

 

'바울이 잘 말해준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가장 근원적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실세,

즉 악의 영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그 악의 영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돈의 신으로 활동한다.

돈의 신이 바로 예수님이 예리하게 간파하신 맘몬이다.'

 

2부에서는 교회가 자본주의 배후세력인 돈의 신, 즉 맘몬에게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돈의 신인 맘몬을 근원적으로 이기려면

참된 구원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맘몬이 내미는 당근을 거부하려면 맘몬이 약속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그 무엇을 발견해야 하며

맘몬이 우리를 위협하기 위해 드는 채찍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려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누군가에 대한 확신이 서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진실한 회개와 믿음을 통해 얻게 되는 구원의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회개의 필요성은 희석되고 하나님의 축복만 강조되고

신앙이 축복(성공)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공동체가 함께 축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하는 대신

나와 내 가족의 부귀와 영화를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귀절이 있다.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가 아니라는 점은 의미심장한 것 같다.

주님이 내 손에 나눠먹으라고 양식을 주셨는데, 나 혼자 먹고 있는 건 아닌지.

 

처음에는 그동안 비판하고 싶었던 대형교회들의 잘못을 파헤치는 통쾌함(?)을

기대했지만,

읽는 동안 뒤로 갈수록.. 내 신앙이 회개의 자리로 내려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 제시한 대안이 충분한 것인지 아닌지는 일단은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이 책의 가치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서

일부 대형교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가 기복신앙에 빠져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우리 신앙의 근본을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정독을 해야 할 책이다.

 

다소 어렵기도 하고

성경 해석을 두고 평소 교회에서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만 소화가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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