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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8월
평점 :
유대인!하면 흔히들 아우슈비츠의 희생자,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분쟁, 베니스의 상인, 세계 금융계의 거두들, 아인슈타인 같이 뛰어난 두뇌를 떠올리게 된다.
역사적으로 로마나 바빌론같은 강대한 국가를 형성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나라없이 세계를 오랜 동안 떠돌았음에도
그 많은 문명과 민족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동안에도 유대인은 4,0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 아주 특이한 민족이다.
그들은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과 신 앞의 평등이라고 하는, 고대 어느 세계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획기적인 개념으로
고대사회를 붕괴시키고 이후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었으며 기독교 탄생의 모태가 됨으로써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민족이기도 하다.
저자인 폴 존슨은 유대인이 아니다. 그는 카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저서 <기독교 역사>를 집필하는 동안 기독교가 유대교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유대인의 역사>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집필계기를 밝히고 있으나,
이 책은 카톨릭 신자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문학자로서의 시각에 충실한 책임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그는 유대교의 유일신관이 이성적 사고의 결과물이라던가(75페이지 아래),
사울의 실패를 왕의 필수 조건인 군사적 소양의 부족 때문이라고
보는 등 성서의 관점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서술들을 곳곳에 펼친다.
그러나, 이렇듯 인문학적 관점에 서 있기 때문에 그는 성서와 그에 호의적인 저술들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눈으로 드러나는 증거와 고고학적인 발견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방대한 자료를 모아낼 수 있었고,
성서와 고고학적 발견을 접목시킨 놀라운 저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특히 앞부분의 노아, 아브라함, 요셉과 출애굽에 대한 내용들은 기독교신자에게는 성서의 인물들에 역사성을,
비기독교신자에게는 성서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경외감을 주는 내용들이 펼쳐져서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빨아들이듯 책 읽기에 속도가 붙는 내용들이다.
유대인은 번성할 때보다 역경이 닥칠 때 단호하게 원칙을 지켰고 유대인 특유의 종교적 상상력과 독창성을 발전시키고 명석함과 열의를 발현하는 민족이다. 나라가 없을 때, 외세가 쳐들어와 압제할 때 율법에 더 순종하고 하나님을 더 경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심에는 토라(모세5경)가 있다.
이 책은 유대교 신앙의 내용들을 교리로서 나열하지 않고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과 연계되어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신앙과 생활을 유지 발전시켜나갔는가를 드러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요교리가 삼위일체 신앙인 데 반해 유대교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므로 그 교리가 들어설 이유가 없는 등
교리가 전혀 다른 종교로 발전되어 갔고,기독교 국가가 성립된 초기부터 서로간에 종교적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국가가 없는 떠돌이 유대인은 피억압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국가의 보호를 기대하지 못하는 대신 토라를 통해 자신들을 이민족과 구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이어나갔고, 외교적으로는 무력 아닌 평화로써 타종교 및 타민족 속에서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편을 삼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세때 흑사병의 책임을 물어 살해당하는 등,
반유대주의는 매시기마다 모습을 변화시키며 유대인들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고 방랑하게 만들었다.
<유대인의 역사>는 시대별로 지역별로 피억압자인 유대인의 입장에서
억압에 대응하여 그들의 신앙과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고, 또 역으로 그런 변화가 서방세계에 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역사자료들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유대민족이라는 피해자 입장에서 본 세계사라 불릴 만한 스케일의 서술이다.
20세기 세계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로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전세계적으로 민족주의운동이 발흥하는 대격동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시온주의를 기치로 벨푸어 선언을 얻어내고
외교적 노력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하기에 이른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땅에 관한 역사적인 소유권,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라는
그들의 장구한 세대를 걸쳐 이어져온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늘도 아랍민족주의와 전쟁을 치뤄야하는 유대인들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
민족주의를 넘어선 인류 공존, 평화의 가치를 어떻게 현실 속에 구현할 것인가.
홀로코스트를 거치면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들의 국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공감할 수 있으나
더 많은 수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추방하게 되었다는 도덕적 책임 문제는
평화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늘 따라붙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언명을 하며, 유대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나로서는 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엄청 두툼한 책이지만, 두툼한 것 이상의 분량을 읽어내게 하는 책이다.
흡인력이 있어서 지루함 없이 읽어내려갔고,
앞부분의 고대역사에서는 성경을 옆에 두고 찾아보면서 읽곤 했다.
(해당되는 성경 귀절을 본문에 기록하지 않고 편집자주로 돌려버린 것은
아마도 책의 부피가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해서였는 거 같다.)
고대사의 경우 폴 존슨의 작업은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진 성서를 인간의 눈으로 인정하게끔 하는 작업이었던 거 같다.
책을 덮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매순간, 우리는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영이 RNA의 이중나선의 결정적인 한 축처럼 우리 삶과 역사에 임재해계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