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나라의 앨리스 3
호시노 소우메이 지음, QuinRose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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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씨는 현실에 대한 도피의 그 자체로 도피에 대한 상징성이나 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 그래서 그녀(앨리스가)가 그(도피)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토끼씨)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나이트 메어가 한게 아닌가 싶었다. 현실을 회피하기를 희망했고 그래서 도피(토끼)를 통해서 이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게임이라는 것은 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삶이 주어진 룰(계급)을 그대로 따르느냐 아니면 저항하는 냐의 문제인것 같다는 생각. 우연히 주어진 계급이지만, 계급이 없는 존재보다는 계급이 있는 존재로서 룰을 따르는 것이 더 의미있게 느껴지는 것. 이름없는 자보다는 이름있는 자로서의 게임이.
그렇게 보면 사실 그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계의 룰을 위반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게임(룰, 인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외부자)의 영향의 아래로 가는 것이 아니던가. 아마도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자신 또한 그녀에게 사랑을 주게된다면, 시계를 가슴에 달고 살아가는 그 사람은 그 존재 자체의 이유를 찾게되고 진정으로 시계를 멈추는 것이 가능할지도. 그리하여 그의 존재(시계)는 더이상 다른 존재를 통해서 같은 룰을 따르도록 되지 않고, 그의 존재는 그 만의 존재로 끝나는 것. 개개인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그것이 그들이 가장 갈구하는 삶. 그건 에이스가 그토록 바라던 삶의 그 자체 일텐데 그는 어쩐지 미묘한 시각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의미는 뭘까?
하지만 보통(일반적인) 사람들은 거기(자신의 심장이 진정으로 멈출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세계관의 개념이 전복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자신의 삶 또한 전혀 다른 삶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면의 진실을 모르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가장 갈구하던 세계에서 온 그녀는 그 세계를 회피하기 위해서 이 세계에 온 것을 알았을때 그들의 반응이 어떨찌 궁금해졌다. 혐오? 연민? 그 밖에 어떤 감정들이 일어날지. 그 부분을 관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어쩌면 에이스 일지도.
이윽고 그 부분(다른 세계의 괴리나 고통)까지 도달한다면 그들은 그 세계가 바뀌기를 희망하지 않고 그 세계에 머물러 있기를 희망할 것인가 아니면 엘리스의 세계처럼 자신만의 고유성이 있으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않으면 실존에 대한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생을 선택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이야기는 현실이 될 것인가. 아마 이건 게임이니까 당신만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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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스위퍼 5 - 완결
키타가와 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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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작에서 크게 닿았던 그 부분은 엔딩에서 반전 아닌 반전을 맞이 했음. 본인이 생각한 스토리 전개는 히로유키는 그의 형의 어둠에 대해서 알고자 했으며 그래서 스위퍼스에 들어가게 되었고, 주위에 있는 많은 어둠들과 고독, 허무, 불안 등등을 느끼게 되면서 그런 사람들의 실존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되는 방향으로 전개 되기를 희망했으나 신흥종교가 관련된 부분이 점차 늘어가면서...
특히 그 종교의 죽음관에 대한 부분은 일본에서 유행하는 신흥종교에서 캐치해왔는지 아니면 저자 본인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기반으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도 정답이고 죽은 사람은 잊혀지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것도 정답이라면 정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국가에서는 산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치환하거나 위로하는 하나의 방편이 '제사'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제사라는 것이 한쪽 일방적으로 한쪽 성 중심으로 굴러가는 부분은 견디기 힘든 부분이지만, 누군가가 특정한 날 매년 기억해 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요 근래에 들었다.
일본에서도 죽은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있는 여러가지 의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시체를 냉동해서 보관하는 것은 산사람의 욕심이기도 하지만, 죽기전의 그 사람도 어쩌면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지지 않고 싶다는 그 부분이나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 부분도... 영생이라는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죽은 후에는 뭐 다른것이 있어서 뭐 그 감정이 또 다르게 바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레이지씨가 자신이 따뜻한 존재라는 것을 깨닿게 되었고, 인간이란 어느 한구석이라도 따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안것 까지는 좋았다. 태초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이 진리가 아니던가. 어짜피 '금지된 것'은 그 세계(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핵심부에 있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룰. 과거에는 그것이 금지가 아니었던 과거도 있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금지라면 근 미래적인 관점에서는 금지가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실존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가 잘못된 존재라서 그 균열이 자신을 파괴하는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찾아서 노출하는 것은 정답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런 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지진을 통해서 모든 인간에게는 죽음이란 모두 똑같이 찾아오는 것이며, 그것이 언제 찾아 올지는 신만이 알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구. -_- 그런 잔혹한 현실 앞에서 누군가는 죽어가고 누군가는 새로운 생을 얻어서 태어나지. 삶이란 것은 그런것이 아니던가.
레이지씨는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을 확인해서 그리고 윤회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라... 그럼 히로유키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것들에 대해서 보상하고 싶어하는 히로유키는? 그 생지옥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건만. 그는 철저하게 게스트 였나보다. OTL 
그 자연스러운 부분(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죽음과 마주한다는 것)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고 고독을 느끼게 되었고, 함께 살아가며 고뇌해야 하는 부분이 그 사람 개인에게 지나치게 취약한 부분이 되어서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그 취약했던 부분에 대해서 근본적인 부분은 아니더라도 좀더 건드려 주기를 바랬었다. 1권에서 만났던 그 느낌은 점점 진행되면서 사그러 지더니 마침내는 뻥하고 터지다니. 이게 뭐람. 이렇게 실망하는 것도 실로 매우 오랜만이다. 내가 원하던 것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이게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아파졌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참담한가. 살고싶은 희망이 사라지는 현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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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반대한다
피터 D. 크레이머 지음, 고정아 옮김 / 플래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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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출간한 출판사의 책으로, 이 책에 대해서는 <트라우마>의 날개를 보고 알게되었다. 매우 강렬한 제목에 호기심도 생겼고, 어떤식으로 반대한다는 건지도 궁금해서 사서 책장에서 반년정도 묵혀두었다가 얼마전에 읽기 시작해서 오늘에야 독서를 완료했다.
책 제목은 수잔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었다. 책의 주제는 우울증에 대해서 기존(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편견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으로 우울증은 명확한 질병으로 분류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책이었다. 
저자의 전작 <프로작에 듣는다>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전작들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한 책. 무엇보다 광범위한 정보에 놀라고 그리고 우울증이 우리들의 신체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에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정도 였다.
여러 연구자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들에 대한 보고들을 보고있자니... 우울증이 해당 질병의 치료를 방해하고 그리고 해당 질병을 발병하게 하는 큰 요인이었다. 암, 감염성 질병, 혈관성 질환, 심장병, 동맥경화, 뇌졸증 등등. 
우울증의 병리적 특성은 뼈, 내분비선, 심장, 혈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보고와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이었다. 우울증이 먼저 와서 영향을 끼치고 그 질병이 발병하면 우울증 증세가 따라오는 '후기 발병 우울증 혹은 혈관성 우울증'으로 인하여 치료가 더디고 회복력도 더디고 환자 자신이 병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기가 힘들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연구 결과는 심장병이 있는 환자들에게 A군인 환자들은 심장병약만 처방했고, B군의 환자들은 심장병약과 우울증약을 함께 처방했다. 10년인가 20년후에 그 환자들의 생존률은 B군의 환자들이 A군의 환자들보다 2~3배정도 높았다는 결과를 보고 충격. 이 환자군은 심장병이 발병하기 전에 우울증이 없는 환자군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 부분은 조금 가물가물. 그렇다고해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 나라의 이 책에서 열거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우울증 치료도 병행받고 있는지는 매우 회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통계치를 보지는 못했지만;;;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서 1부에서는 저자의 내담자들의 사례들과 우울증에 대한 연구가 진해중이거나 결과가 나온 부분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알려주며, 2부에서는 서양에서의 우울증의 은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우울증은 질병이며 치료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삶의 전반을 망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신적, 육체적 모두가 말이다.
사실 2부에서는 나는 그쪽 사람이 아닌 관계로 아마 이 책을 읽는 이 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간극을 느끼리라고 생각한다. 거기서는 우울증에 대한 은유는 마치 판타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동경이라던가 뭐 그런거 말이다. 
자살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우울증이나 간질환자 이었고, 오늘날은 우울증의 스펙트럼에서 좀더 상세하게 양극성 장애로 분류되고 있다고 했다. 양극성 장애로 고통받는 예술가들은 조증일때는 열심히 창작을 하고 울증일때는 그 작품을 고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실비아 플러스 라던가 고흐, 버지니아 울프 등등 많은 예술가가 예전에는 우울증이나 간질로 고통받았던걸로 인식되었지만, 오늘날 학자들의 견해는 양극성 장애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양극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조증과 울증의 높낮이를 좀 낮추기 위해서 처방한 약을 먹게되면 창작 부분에 상당히 문제가 생긴다는 보고가 있다고 했다. 

저자는 맺는 부분에서 약이 할 수 있는 판타지(혹은 망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두뇌 유입을 막는 효과적인 약물(항당류코르티코이드, CRF 차단제)이 개발되어서 신경증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고통이 둔화된다던가... 
우울증인 사람들이 우울증 증세가 둔화되면 성격적으로도 변화가 있어서 여러가지가 달라진다던데... 우울증의 스펙트럼을 어디까지 봐야하는지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약물이 개발된다면 중증의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우울증 삽화를 막는 방어체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온전히 체험해야지 후에 감정의 후폭풍이 찾아오지 않을텐데 약물으로 그걸 억제한다고 해서 과연 해결이 가능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그건 불완전한 것이고 약물치료와 본인의 슬픔에 대해서 애도하는 것이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
읽다가 흥미로운(혹은 걱정되는) 것을 알게되었다.
인터페론으로 치료를 받는 일부 사람들에게 약물의 부작용으로 기분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참기 힘든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고 그 빈도는 매우 높다고 보고되었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충분히 안내해주는지 그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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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발레리 위펜 지음, 유숙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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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관련해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이 되었습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시거나 주위에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가족이나 지인분이 있어서 도움이 되고 싶으시다면, 즉시 읽어보실 것을 매우 강력하게 권해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친구들의 생일에 선물을 할 일이 있다면, 이 책을 사줄 예정입니다. 이전에는 <비폭력 대화>, <독이 되는 부모>, <당신이~>, <가족의 심리학> 를 선물했는데요. 저 책이 0 순위가 되었습니다. 

특히 첫번째 파트인 '우울증이라는 검은개'와 마지막 파트인 ' 우리의 삶은 우리가 변화시킨다'는 소책자로 만들어서 뿌리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생겼습니다. 친구에게 권했는데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무려 첫 파트를 요점만(별로 요점이 아닐지도?) 타이핑 했습니다. 
이 글을 보고 부디 병원이나 상담센터에 가시는 분들이 늘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 초인가 기억력 감퇴에 대한 시사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치매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이었습니다만, 저는 그 방송에 인터뷰를 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 분들은 아무래도 '중증 우울증'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방송에서의 결과는 저의 예상과 같았습니다. 
본인의 감정을 받아내기가 정말 힘들었을텐데 그것조차 모른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지 공곰히 생각했습니다. 이 티스토리에 '메모'폴더에 파트 1을 타이핑하면서, 우울증의 발병 수치는 선진국으로 가면서 더 올라가는 그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지와 그리고 고통스러워도 고통이 일상이라서 고통이 증가하더라도 모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우울증 환자가 적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 이었는데요. '킬링필드'로 많은 사람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세에 시달리지만, 약을 먹는 사람들도 손에 꼽는다고... 그래서 그런 부분의 지원이 많이 시급하고 긴급을 요한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만약 우울증에 대한 진단비가 무상이고 약도 무상이라면 많은 어려움들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 우울증 환자가 많을거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내전을 겪고있는 나라라던가(가족의 죽음, 삶의 터전의 사라짐, 기아, 병 등등)... 병원에 갈 시간이 있을까요? 그 이전의 생존의 문제 때문에 짐이 하나 늘어도 그냥 짐인가 보다 하고 지고 가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시선이 위로부터 내려보는 시선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분명 당사자들은 이런 저의 시선에 불유쾌함을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아니 명쾌하게 불쾌 할 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 고통은 존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저는 덕분에 우울증에 대해서 좀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치료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책의 앞날개에서 저자의 다른 책에 대해서 소개가 없던데... 이 분의 저작은 이 책 한권이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저도 원저지만 번역이 특히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완경' 매우 반가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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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이제이션
김덕호.원용진 엮음 / 푸른역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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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화, 어떻게 볼 것인가 - 김덕호, 원용진.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 식민지배 시기 미국화 - 유선영. 한국에서의 일상생활과 소비의 미국화 문제 - 김덕호. 한국 대중문화, 미국과 함께 혹은 따로 - 원용진. 한국 정치의 미국화에 대한 역사적 조망 - 안병진. '친미'와 '반미'사이에서 (한국 언론을 통해 본 미국의 이미지와 미국화 담론) - 김연진. 해방 이후 남한 개신교의 미국화 - 이진구. 한국 사회과학 패러다임의 미국화 (근대화론의 한국 전파와 한국에서의 수용) - 정일준

제목은 거창한( ?) 영어제목 이었습니다. 미국화를 다루는 책인데 저런 제목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는데요.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미국화에 대한 여러가지 부분(역사, 종교, 문화 등등)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참여한 책인데도 책의 독자의 수준을 고려한 일괄적인 기준이 아주 잘 지켜진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명이 저자들의 글을 묶어서 내는 경우 사용하는 텍스트의 차이로 혹은 독자 기준의 설정의 높이의 차이로 파트(다른 저자)마다 달라서 읽는데 어려움이 많은 책들이 많았는데 전혀 그런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편집자의 힘인지 아니면 책을 기획하면서 저자들이 모여서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토론해서 저술을 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사실 과거사(혹은 역사)에 대해서 대부분(대부분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어찌되었던) 교과서에서 배우고 주위 분들에게 주워 들은것들과 펀향되어있는 매체로 접하는 정보를 통해서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이런말을 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뭐 저는 저게 일반적이라고 느껴지는 집단에 소속해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나치게 학술적인 내용으로 무장한 책을 보면 머리가 터지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 책은 학술적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그닥 학술적인 느낌이 강하지 않았고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어서 끝까지 즐겁게 읽었습니다. 사실 인문학 도서를 보면 지나치게 학술적인 텍스트들로 무장하고 그리고 번역체로 무장하고 그리고 어려운 이론으로 무장해서 용기를 내서 독서를 시작해도 초반에 읽다가 책을 던저버리게 되는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 이건 저의 경험이었습니다. 
용어의 개념도 머리에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읽을 책들이 그다지 없다는 현실이 매우 좌절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매우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입문서를 읽고 다시 읽어도 어려워서 좌절했었는데... 그 책의 번역자가 참여한 다른 한국여성에 대한 책을 보고 그 사람의 문체(번역자)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지요. 후후후. ㄱ- 저주 할테야요. 덕분에 ㅅㅍㅂ 양반의 책은 사서 구석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사실 마지막 파트의 '근대화론'에 대한 부분은 조금 지루하긴 했습니다. -_=;;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개신교와 관련된 미국화에 대한 부분, 일제 식민지 시절의 미국화, 이 나라가 미국에 대해서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지를 조명한  ''친미'와 '반미'사이에서' 정도 이었습니다. 아 미국문화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적인 정치를 이나라에 들고와서 미친 영향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부분은 개신교의 교세 확장에 대한 부분도 비슷했었습니다. 순복음교회가 그렇게 커진 이유를 조금 알게되었다고 해야하나요? 뭐 그랬습니다.
역사와 관련해서 다룬 파트를 보면서 <부동산 계급사회>를 함께 읽고 있었는데요. 이렇게 함께 읽으니까 매우 좋았습니다. 이 나라의 지난 정권에 대한 미국화의 시점으로 바라본 시각과 그리고 부동산 정책으로 바라본 시각으로 바라본것에 대해서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보면서 꽤 좌절스러웠지만요. "이거나 저거나 오십보 백보구나."라는 생각은 더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최근 이전 정권에 대해서 잘못된 부분(뭐 이건 저의 주관입니다 )까지 아름다운 것으로 이미지화(혹은 신격화)하는 경향들을 느끼는데 그런 분들에게 저런 부분에 대해서 인지하고 그렇게 하는지도 궁금해서 그 파트를 읽으면서 흥미롭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좌절감도 심히 들기도 했습니다.
어딜가나 이율배반적인 것은 존재하고 어쩔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정권에 대해서 처음 가지고 있던 이미지(환상)가 무너져서 그 차이가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 인거 같습니다. 사실 그 이율배반적인 부분도 저는 대안은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요. 그런 것이야 말로 저의 환타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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