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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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폐증 손자에게 쓴 <샘에게 보내는 편지>로 유명한 대니얼 고클립의 책이지만, 저는 대니얼 고틀립의 책은 처음 만나는 관계로 굉장히 남달랐습니다. 우선 그의 이력에 주목했고, 그리고 그가 자신을 어떻게 돌보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긍정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33살 전도유망한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손상을 입어서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체적 능력의 상실에 대해서 그가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주위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새로운 부분을 알게되었고, 그래서 좀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아픈 환자들을 마주할 때 느꼈던 당황스러운 부분에 대해서 이 분도 이야기 하시더군요. 환자의 절망이나 상실에 대해서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요. 사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기에 저는 죽음을 앞에 두셨던 저의 신랑의 아버지가 하시는 이야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저 자신이 어떻게 반응해야지 좋을지 몰라서 당황했었습니다. 그분의 앞에서 웃어야 하는지 울어도 되는지 눈물을 어떻게 감춰야 하는 지. 굉장히 괴로워했습니다.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 저는 옆에서 그 말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하거나, 아니면 그 말들을 부정하며 삶의 동기를 부여해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좋은 방법인지 확신도 없었기에, 저 자신이 그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은 그 분의 부운 발을 주물러 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교수의 저작인 <죽음과 죽어감>과 <상실수업>에서 언급되었던 것들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고 좀더 다른 면(사실 같을지도 모르지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과 자신을 긍정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교적 관점에 가깝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읽은 저의 지인분도 그런 느낌을 받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좀 달랐습니다. 그 양반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되고자 하는 자아를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근접하게 내려서 현실에서 실천할 수 만드는 쪽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의 자신이 되고 싶은 자아가 너무 높아서 그 높이에 좌절해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선으로 그 기준을 내려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들렸습니다. 이런 식으면 그 사소한 것들을 긍정하고 나를 긍정하고 긍정하고 또 긍정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아지겠지요.
모두가 공부를 잘해서 1등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1등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1등을 해야지 반드시 행복하다'라는 신념은 만들어진 이미지(환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어떤 내가 아니라 그 상황을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 그토록 갈망하던 성공이지만, 그 성공을 거미 쥐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승과 열패의 신화 속에서 그 1등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해야하고, 그 위치에서 좀 더 내려가는 자신은 견딜 수 없습니다. 자신이 파괴될 것만 같은 공포. 그 공포는 자신이 그 위치를 미칠 듯한 노력으로 유지하고 있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뭘 견딜 수 없는 걸까요. 1등이 아닌 자신? 1등인데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 불안감이 올라오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이라고 생각하는 환상에 가까운 공포. 그 공포는 환상이 아닐지도 모르고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체현하지 않는 이상은요.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신념이 조금 유연해지면, 나는 좀 더 편해지고 그리고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 나 스스로 자신을 비난하는 기준에서 좀 더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타인에게도 좀 더 유연해집니다. 수정된 신념은 나를 공격하는 행동들을 줄여갑니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사라지고…….  돌고 도네요. 사소한 부분에서 조금 바뀌어도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뀐다는 말. 시작은 어려워도. 너무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도. 다시 돌아간 것 같아도. 그건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앞으로 걸어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좋아지기 마련.
그는 정말 힘들었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고통을 알아주고 수용하고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가끔은 뒤로 후진하기도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기에. 앞으로 나아가기도 뒤로 조금 물러서기도 하기에. 그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감상적이 되어버렸네요. 전문적으로 배운 그와 같은 사람에게도 정말 힘든 일이니까 실패한다고 자신은 불가능하다고 완벽하게 좌절하지는(포기하는)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봅니다. 그러니까 지루한 싸움으로 지쳐서 괴로워하며 울고 있는 어딘가에 있는 당신에게 당신은 지금 힘내서 잘하고 있다고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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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존 브래드쇼 지음, 오제은 옮김 / 학지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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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보다가 좀 많이 울었습니다. 그 부분은 저자인 존 브레드쇼 교수가 자신의 어린시절으로 돌아가서 어린 브레드쇼에게 성인인 브레드쇼가 해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다른 책에서 누차 강조하는 방법인 '성인인 내가 어린아이 나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 정말 체계적으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주요 방법은 명상과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과 함께 하는 치유, 자신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성인인 내가 어린아이인 내게 보내는 편지와 어린아이인 내가 성인인 내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와 그리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그 사건에 성인인 내가 어린아이인 나의 대변자가 되어서 성인인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것 이었습니다.
사실 명상 쪽은 정신분석이나 최면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저는 이 효과를 체험해본적이 없어서 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환상인지 망상인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성인인 내가 어린 아이인 내가 괴로워했던 상황에 개입해서 나를 대변하는 방식은 정말 효과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이(모르는 타인) 자신의 이야기를 한 텍스트를 보고도 눈물이 저절로 나왔으니까요.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가 생각나기도 했고 이런 식으로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기쁨도 있었습니다.
책은 굉장히 세부적으로 어린 시절을 파트로 나누었고, 그 파트마다 그 시절마다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리고 그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성인인 나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 파트에서 그 해당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못한 혹은 충족된 욕구에 대해서 테스트 하는 문항이 있고 그 지표를 통해서 내가 어떤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하고 상실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진도는 나가고 그 시기마다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상실된 것들을 스스로 돌보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 안내합니다. 방법은 주로 명상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인에 도달합니다.
힘들었던 나의 과거를 스스로 알아주고 돌보려 하고 자신의 감정을 긍정하는 것은 많은 자원들을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서 가학적인 부모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 아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나의 부모가 나에게 하는 행동은 나를 위해서 하는 최선의 행동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나의 부모가 자신의 성장하지 못한 내면 아이로 인해서 그 고통을 나에게 대물림 한다는 것을 어린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건 성인이 되어도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되어도 그 사람의 행동과 그 사람 자체를 분리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 행동에 대해서 먼가 용서와 비슷한 제스처를 취하면, 그 무언가가 무너질 것 같은 공포. 나의 과거가 부정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것들은 극복하기는 너무나 어려우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굉장히 구체적인 지침을 얻었습니다. 나에게 편지를 써 봅니다.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나를 지지하는 말들을요. 그 말들은 부모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이겠지요. 그 말들은 자원이 되어서 지금 힘들어 하는 내면의 아이를 가지고 있는 성인인 나에게 삶을 지지하는 힘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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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받은 아이들
장-폴 피카페르, 루드비히 노르츠 지음, 강주헌 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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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 점령군인 독일군과 프랑스 여인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서 1부에서는 프랑스내에서 '독일놈의 자식'이라고 불리어지며 각종 종류별(말그대로 그야말로) 학대를 받던 아이들(지금은 중년이 된)의 증언이었다. 그들은 지금 현재에도 그들의 뿌리에 대해서 말하는데 큰 어려움들이 있었고 여전히 크게 망설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태어난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던가. 그들은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었으나 그들의 엄마와 함께 낙인을 부여 받고 살아왔다.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그것이었고 그들은 그들의 다른 뿌리를 찾아서 떠난 여정에서도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2부와 3부에서는 제2차대전 시기의 프랑스인 여성과 독일인 군인간에 태어난 20만명의 혼혈아들이 태어난 그 이유에 대해서 추척하고 있었다. 점령기 시기의 독일군이 취했던 태도나, 프랑스 여인들과 독일군 사이에서 결혼을 금지한 이유 등등 여러가지들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네의 사정 두가지가 떠올랐다. 일본인 위안부와 전에 했던 모 다큐. 한국군인과 베트남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2세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은 그들의 뿌리를 찾아서 한국을 찾아왔으나 대부분 부모에게 거부당하고 있다는 이야기. 프랑스에서 독일까지 그들의 다른 뿌리를 찾아 떠난 그들은 그들의 다른 부모의 재산의 상속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가 살아 계시다면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돌아가셨다면 부모의 사진을 그리고 이복 형제와 자신의 비슷한 부분이라던가 그런것들을 보고 싶어했다.
그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그들이 '유산'에 대한 권리를 요구 할 줄 알고 거부하는 일도 많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사생아에 대해서는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 아버지들은 이 사실을 알았을까? 물론 그 법이 지금은 수정되었다고 하지만...
전쟁에는 승자도 패배자도 없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침실 부역(그들의 주장에 의거하면)을 행사한 국가에 대한 대역죄인들 이었을까?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낙인을 받을 만큼 잘못했던가는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것 같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정의 내리고 처벌할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국가적 테두리에서 생각한다면 그들(혼혈아의 어머니들 아버지들)은 국가의 존속(전쟁시기의)을 위험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테두리로 넘어와서 생각해본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애정을 가진다는 것이 그렇게 죄악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전쟁 당시 그로 인하여 국가에 미친 위해는 거의 미미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다만 여성의 몸을 통해서 전쟁을 상징화하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전에는 전후 그들이 부역한 자들에 대해서 처벌하는 태도에 대해서 매우 모범사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수정을 해야할 것 같다. 생활형 부역은 분명 어느정도 선까지는 구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도외적인 책임에 대해서 해방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지식인이라고 칭해지는 자들의 부역과 그들의 부역에 대한 무게는 분명 구분되어야 하는 것 같다는 것. '알아야 할 권리'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개개인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 아닌가. 누가 그들을 비난해야하 할까? 그 부분에 대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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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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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반부는 거부감이 심해서 좀처럼 진도가... 정확히 말하면 짜증나서 접고 싶을때가 많았습니다. 전체 파트는 크게 5파트로 나누어져 있고, 그중에서 파트 2에 해당하는 '남과 여, 그들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좀... -_- 유전적이고 성별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태도와 양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머 뒷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이 상당히 해소되긴 했지만, 그런 태도를 전면으로 내세워서 취한 부분이나 텍스트를 선택한 저자의 의도라던가 그런 부분은 역시 불편했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좀더 조심스러웠으면 했습니다. 
파트 2에서는 유전적인 요소인 성차적인 요소에 따라서 아이를 다르게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로, 전반부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메인으로 나오다가 후반부 즈음 가니까 같지만 조금 다른 입장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그렇지만, 아이들 중에서는 여성의 뇌를 가진 아이와 남성의 뇌를 가진 아이가 있고 그 중간에 있는 아이들도 있으나 그 아이들은 많이 않다는 부분이 나왔었습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차이에 따라서 다르게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 이였습니다.
파트 3에서는 IQ말고 다른 지능 테스트 방법인 다중지능에 대해서 안내하고 있었고, 파트 4에서는 아이의 도덕성의 중요성 그리고 파트 5에서는 자존감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습니다. 파트의 끝 부분에서 실생활에서 활용이 가능한 예시를 다루고 있고 파트 중간에는 그 이론의 소개와 실험 테스트의 결과에 대해서 알려주는 방식의 전개였습니다.
정말 구체적인 지침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어쩜 좀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는 책이지만, 그 이론들의 기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성차에 따라서 두뇌의 발달이 다른 경향을 띄지만, 그건 개인의 차이에 따라서 더 크게 달라지니 자신의 아이가 그날 뭘 하고 놀았는지 구체적으로 관찰일기를 쓰고 그걸 살펴보면 어떤 방향으로 교육을 해야하는 지가 좀 보인다는 충고는 아주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암튼간에 책의 띄지에 적혀있던 텍스트 '지금껏 아려지지 않은 내 아이의 무한하고 놀라운 가능성을 밝힌다!"라는 텍스트는 육아책이나 심리학책을 처음 보는 분에게나 해당이 되는 이야기 였습니다. 하나도 새로운 이야기가 없었어요. -_=;;; 책의 표지 상단에 있던 "내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혁명적인 책"이라는 문구도 매한가지 이었구요. 그래서 전 뭐 그냥 그랬다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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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공포 산책자 에쎄 시리즈 2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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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부분이 여러가지가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던 파트는 '글로벌 공포'에 대한 파트였습니다.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입장과 조우했거든요. 부시2세의 대이라크 연설에 대한 해석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거룩한 테러>라는 책에서 그의 연설의 전문과 빈라덴의 연설 전문을 읽은 관계로... '뭐야 애들 진짜 똑같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책의 입장은 근본주의자들은 개신교나 이슬람교나 비슷한 패턴이고 내세우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를 뿐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구요. 뭐 지금도 국가테러나 무장단체의 테러나 사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씨는 부시의 그러한 태도를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태도가 아니라 '정치를 종교화'한 태도라고 말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런식으로 생각해본적이 없었거든요. 보는 입장에 따라서 근본주의적인 태도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입장으로 보면 종교를 정치에 이용한거에 가까우니까요. 여러가지 의미로 새로운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보게 되어서 즐거웠던 책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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