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김소향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 느끼는 상실의 분노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해당이 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이 파트는 슬픔도 포함되는 파트라고 생각이 들었고, 여러가지로 다른 의미의 상실도 그렇고... 저의 경우에는 이 책이 정말 큰 지지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종교의 종교인(개신교도)으로서 느끼는 그 교만함(선택되었다는 느낌이나 진리라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고로 개신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추천해주기에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종교인이나 불교인이나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의 진리(?)라면 이런 전달능력을 갖춘 책이 아닐까 싶어요. 뭐 비아냥 거리는 건 그만해야지요. 아휴. 그래도 말하고나니 속시원. OTL
"다른이의 시선 때문에 분노를 무시하지 않도록 하라. 누구든 당신의 분노를 비난하도록 두지 말라. 심지어 당신 자신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분노는 강도나 정도는 어느정도 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의 기준으로(유교적 가치관) 잣대를 잰다면, 매우 배척받는 분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그 말은 그야말로 명언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이라니. 스스로가 분노하면서도 주입된 가치관에 의해서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 패턴을 솔직히 멈추기가 참 힘들어요. 그걸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두요.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 조차 죄책감을 느끼도록 교육받았으니까요.
분노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혹은 용납하지 못하는 기분이란...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살의가 치민다는 건 정말 치명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노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분노를 바라보고 분노를 알아주고 스스로를 도닥이고... 결론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보살피라는 말인데, 이 사회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제도권에서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그걸 스스로 습득하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도권이라는건 교육과 가정 모두 포함) 이 나라에서 살면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퍽이나 사랑하겠네요. 그렇다고해도 표현하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