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의 이름은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어떤 고집은 열정이 되고, 어떤 고집은 아집이 되어버리는 걸까요? 왜 어떤 시도는 위대한 업적의 시발점이 되고, 어떤 시도는 부질없는 걸음이 되어버리는 걸까요?

- 나의 이름은 中에서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편함이 있는 소설집. 작은 생선가시가 목에 박혀서 빠지지 않는 느낌이랄까. 때로는 묵직한 사고가 벌어지는데 뭔가 깔끔한 결말도 없고,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만 같고, 그런 불편한 상황은 나 또한 늘상 마주하고 있는 그런 것들 아닌가. 그리고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게 나를,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전 남자친구의 결백을 증언해달라고 종용하는 누나의 모습이나 고슴도치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심문하기 시작하는 해주, 이혼한 전 남편과 아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인과 신경전을 벌이는 성연 이모. 어쩌면 내 주변에도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읽으면서도 이상한 여운인지 자국 같은 게 마음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여러 단편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그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꼭 자신이 겪은 일인마냥 디테일하게 묘사된다는 점. 그래서 작가님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달까? 《모래의 빛》에서도 전 남친인 윤재와 처음 만난 다도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것도 있긴 하지만) 이런 표현이 정말 재미있었달까?

 

나는 차를 마시는 방법 같은 건 애초에 지킬 생각이 없었다. 향을 맡고 음미하는 과정 따위는 건너뛰고 그냥 한입에 털어 넣곤 했다. 차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음료의 한 종류에 불과한 것을.

- 모래의 빛 中에서

 

찜찜하면서도 먹먹하면서도 휑한, 아직 갈무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 책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을 그 작가님의 책을 접하기 위한 관문처럼 여기는 편인데, 뭔가 에세이 같기도 하고 르포르타주 같기도 한. 지금 우리 세대의 시대상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가볍지만은 않고, 또 너무 무겁지는 않은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