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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새겨진 장면들
이음 지음 / SISO / 2021년 9월
평점 :

이음 - <내게 새겨진 장면들>
감정과 일상을 다룬 섬세한 에세이를 읽고 싶어서,
이 책을 골랐다.
요새 들어서 보다 섬세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고,
사람의 섬세함을 좋아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신의 계이름>이라는 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매만졌던 작가라면
이런 내 마음도 알아줄 것만 같아서
<내게 새겨진 장면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처음 느낀 인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지껏 인생이란 하나의 목적지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여겨왔건만, 실은 임의의 장소로 끊임없이 불시착하고야 마는 것이 인생의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한 번쯤 제 삶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멀리, 익숙하지 않는 장소를 부러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35
타지생활을 하며
익숙치 않은 동네를 매일같이 걸어다닌다.
어디가 내 집일까.
이곳도 내 집이 아닌 것 같고,
본가도 낯선 남의 집 같이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서도
어디선가 정착에 대한 마음은 부썩 생겨나
결국은 이곳이 내 집이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매번 먼 곳을 둘러보며
여행에 대한 생각을 갖는데,
<내게 새겨진 장면들> 속 이 문장들이
그런 내게 가깝게 다가왔다.

항상 준비성이라는 것을 생각하곤 한다.
어렸을 때,
매번 준비물이 있어야만 했던 초등학교 때에는
우리집이 문방구 같이 모든 준비물이 다 두 개씩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까먹고 준비물을 못 챙겨갔던 날이
나는 무척 싫었다.
준비성과 여분.
항상 플랜비 같은
여분을 두고 살고 싶다.

책 <내게 새겨진 장면들>은
은근 사랑에 조예가 깊었다.
좋아하는 연인이 없어졌을 때,
만두를 좋아하는 연인을 찾기 위해
세상 모든 만두 가게를 찾아다니겠다는 이야기,
특히 김치 만두 가게를 찾아다니겠다는 이야기.
이렇게 예쁘고 깊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작가의
사랑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일단 <당신의 계이름>부터 먼저 읽어보아야겠다.

"춥죠?"
...
"네, 제법 날씨가 쌀쌀하네요."
...
"그래서, 좋아요."
...
"선명해진다고 해야 하나, 이 사실적인 감각이 좋아요. 몸이 팽창하는 기분이 들어요."
184-185
겨울의 짝사랑 같은 이야기.
이렇게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좋다.
이음 작가는 예쁘게 말할 줄 아는 작가였다.
또 좋았던 문장들은,,
비가 사그라들 무렵, 연이어 태풍 소식이 들려왔다.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지구는 자학하듯 자기파괴적으로 굴었다.
19-20
나는 말이 고픈 사람처럼 주의깊게 듣길 좋아한다.
50
그렇기에 모든 말은 어떤 의미론 고백에 가깝다.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고 싶은 조급함이 말에 스며있는 것이다.
51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고, 이상할 건 없었다. 우리는 점점 단순해져 하루가 어제 같았지만, 어제와는 다른 마음이 있었다.
70
하루하루가 마치 난해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쉬이 와닿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었고, 그 무의미함 속에서 각별한 의미를 건져내려 애썼다.
164
ㅡ
어디선가 '왜 쓰느냐'고 물으면, 선뜻 내놓을 그럴싸한 대답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을 때였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어떤 의미로든, 내가 반드시 써야만 하는 이유 같은 건 없다.
어쩌면, 쓰지 않아도 괜찮은 일. 쓸 필요도 없는 일.
...
그저 쓰고 싶은 사람이니까, 쓸 뿐이라는 걸 안다.
192-193
ㅡ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내 글을 읽은 당신이라면 나를 반쯤 안다고 해도 좋다.
194
이음 작가를 반쯤 알아가는 과정이
무척 좋았다.
예쁜 말들도 그렇고,
감정과 일상이 마음에 들었다.
도토리처럼 줍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고,
그 사이의 알밤 같은 재미도 많았다.
읽어나가는 재미와
문장을 수집하는 재미를 주는
책이어서 의미 있는 독서가 되었다.
이 책 <내게 새겨진 장면들>은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어지는 에세이
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 이야기가 다 좋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참 좋았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보고 싶고,
앞으로 계속 지켜보고 싶다.
:)
* 이 글은 위 도서 추천을 목적으로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제공받아
주관적 견해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