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뒤 맑음 상.하 + 다이어리 세트 - 전2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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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장편소설 <집 떠난 뒤 맑음>이 상, 하 권으로 나뉘어진 채

소담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미국을 배경으로

사촌 지간인 두 소녀의 가출기 혹은 여행기를 담은

이 소설은 '彼女たちるの場合は' 라는 일어 제목으로

두 소녀의 여행 이야기를 담았으며,

'집 떠난 뒤 맑음'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으로

여행을 통해 맑음이 피어나는 장면들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항상 맑지는 않더라도)

기존 작품에서 여행을 재료로 로드 무비, 로드 트립 느낌의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이번 여행은

독자들을 멀리 데려가고 싶었다는 어느 인터뷰에서처럼

미국의 이곳저곳으로 읽는이를 데려가주며

열일곱, 열넷의 소녀 둘을 따라가게끔 해준다.

아이의 시선이 두드러지는 책 내용 속으로

여행하듯 읽어나갔던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열네살 레이나, 그리고 열일곱 살인 사촌 언니 이츠카는

아직 어린 아이 같지만,

둘만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직속 친언니가 아닌, 사촌 언니라는 거리감이 처음엔 있다가도

점점 가까워지고, 유대감이 깊어지는 그 사이가 읽힐 때면

여행이 가진 그 힘을 느끼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어나갈 때

어린 레이나의 시선으로 읽어나갈 때면

아이의 시선으로 동심 가득하고, 호기심 가득한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고,

이츠카의 시선으로 읽어나갈 때면

어른과 아이의 중간 지점이 느껴지며, 좀 더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덜 멋진 세상이 읽히게 되었다.

그저 '치-크!' 하며

어린 아이 같은 밝은 이야기만 펼쳐졌음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여행 중간에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신용카드가 정지되기도 하고,

갑작스레 일을 하게 되는 등의 이야기가 있어서

이 둘의 여행에 대해 상당한 염려감이 들기도 했다.



나와 같이 걱정되는 마음을 가진 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독자들도 그랬겠지만,

이 소설 속의 가족들이 물론 더 했다.

좋은 미국의 모습과 좋지 않은 미국의 모습이 있다면

걱정되는 부분은

좋지 않은 미국의 모습일 것이었다.

일상에서도 느껴지는 위험인데,

소녀 두 명의 여행이라니.

나는 처음부터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레이나와 이츠카의 여행을 쭉 지켜보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할 때도

어른들은 그저 걱정 가득이었다.

이 소설이 가출기가 아닌 여행기로 읽히길 바랄지라도,

그만큼 현실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소설을 전전긍긍하며 더 몰입해서 읽었고,

여행이 맑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꺾일 때면

가뭄처럼 마음이 쩍쩍 갈라졌다.



여행에서 맑지 않았던 부분들이 더 가깝게 읽힌 건

작가의 의도 때문일까, 요새 좀 더 현실적인 고민으로 가득한 나 때문일까.

결국 신용카드가 정지되고,

돈이 떨어져

급작스럽게 일을 하게 된

열일곱의 이츠카.

당장 오늘 밤부터 일하게 되는

그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 착해서

이야기가 잘 풀려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일했던 곳에서

이츠카의 사촌 동생 생일을 축하해주기도 하는데,

이 장면이

너무 영화 같고 예뻐서 인상적이었다.

우당탕탕 여행이더라도,

이런 예쁨이 있어서 여행이 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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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의 여행을 따라가며,

좋은 문장들도 많이 만났다.

"난 다 좋아, 뭘 하든 안 하든."

이츠카짱이 말한다.

"왜냐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여행은 하고 있는 거니까."

상 50

"그건 말이지, 거짓말을 하면 쓸쓸해지기 때문이야."

상 102

"또 일기 쓰는 거야?"

옆에서 이츠카짱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는다.

"써 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대답하자 이츠카 짱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안 사라져. 사실은 사라지지 않아."

라고 말한다.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레이나로서는 그 말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사라지지 않는 게 맞다면, 그것들은 일기 말고 대체 어디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걸까. 하지만 그 감정을 말로 하기엔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레이나는,

"그래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라고만 말했다.

상 112-113

"가출은 아니야."

레이나는 힘주어 말한다.

"이건 여행이야."

하 101

이어폰을 끼고, 가게에서 연주되는 류와는 전혀 다른,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아주 작은 볼륨으로, 소리가 작아도, 익숙한 노래가 귀에 닿으면 금세 이츠카는 자신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원래의, 이츠카가 잘 아는 자기 자신으로.

하 132

관광객에 대해 앤이 뭐라고 말했더라. 그들은 왔다가, 가지. 다 그래. 왔다가, 가.

하 154

이 책이 담은 여행은

정신적인 여행,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까지 담은 것 같다.

이 책에서 만나는 문장들이 그런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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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도 그렇고, 에세이도 그렇고

작품들을 좋아한다.

에쿠니 가오리는 '울지 않는 아이'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게는 그곳에 가보는 행위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에쿠니 가오리가 데려간 미국은

때로는 거칠지만, 전체적으로 맑음 가득한 곳이었다.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에서는

'누군가 현실을 비우면서까지 찾아와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나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맞는 책이 바로 이 책 <집 떠난 뒤 맑음> 같다.

코로나 시대에 이 책을 만나며

미국 생각에 머무르게 되는, 그 느낌이다.

두 어린 소녀의 가출이 아닌 여행을 따라가며

광활한 미국 대륙을 구경하는 느낌도 들었고,

빛나는 순간들도 함께 해서 좋았다.

에쿠니 가오리가 말하는 아이와 어른, 그리고 성장.

이 책이 말하는 여행 이야기와 함께

에쿠니 가오리의 그 속마음을 같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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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위 도서 추천을 목적으로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제공받아

주관적 견해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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