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평소에 좋아하는 편이다.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황무지에서 사랑하다> 등

여러 책을 읽어왔는데,

매번 신선한 표현과 부드럽게 스며드는 이야기가 참 좋았다.

특히 기억나는 글귀는

"이른 봄날의 동물원 속 동물 같다. 즐겁고 조금은 쓸쓸하다."(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35쪽)

이 글귀는 에쿠니 가오리를 다시 보게 된 문장이었다. 그 작가를 잘 나타내는 말처럼도 여겨졌다.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그 봄날의 동물원 속 동물 느낌도 있지만,

한여름의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도 있다.

햇빛이 뜨거워서 아이스크림이 금방 주르륵 녹아버리는,

순간은 달고 맛있는데,

눅눅한 콘 부스러기만 남았을 때의 그 느낌.

에쿠니 가오리는 그런 느낌의 작가다.

인생은 달콤하다.

그러나 달지만은 않다.





에쿠니 가오리의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세 가지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은 쓰기.

2는 읽기.

3은 그 주변.

재밌는 점은 쓰기 부분보다는 읽기와 그 주변의 이야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사실 쓰기보다는 다른 것들이 중요하다는 뜻이자 증거다.

"아무튼 온 세계의 사소한 것들을, 어떻게 된 일인지 당신이 온몸으로 주워 모았다는 것입니다."

17

17쪽의 문장이 그걸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쓰기.

나는 읽을 때 쓰기를 가장 열심히 읽었고,

그다음이 읽기,

그리고 그 주변 은 좀 더 빠르게 읽혔다.

아무래도 양보다는 질이 쓰기에 얹혀있나 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한 입장에서

쓰기에 대한 부분도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읽기.

매번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책을 정말 많이 읽고, 또 추천도 잘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픽을 따라서 책을 읽어본 적도 있다.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아마 그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문장을 하나도 못 건진 걸 보니 내 스타일은 아니었나 보다. ㅎㅎㅎ


그 주변.

에쿠니 가오리는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하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도 살아가는 데 '닥치는 대로 대충'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 모릅니다."(울지 않는 아이, 238쪽)

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한 느낌으로 그 주변의 이야기는 흘러간다.

나도 그러한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에쿠니 가오리도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잘 살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곤 한다. ㅎㅎ.


'쓰기' 챕터의 '소박한 소설'.

에쿠니 가오리가 이렇게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하는 말은

항상 멋지다.

모든 소설은 언어로 되어 있지만, 언어가 아닌 것의 영향을 받는다니.

비평가가 좋아할 만한 문장이다.!

문학 비평에 관한 대학교 학회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무척 와닿고 무척 멋진 말이라고 생각된다.

언어가 아닌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에쿠니 가오리는 자신의 책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에

쓰기와 읽기 다음으로

'그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것만 같다.


에쿠니 가오리는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멋진 책 한 권을 읽었을 때의,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마저 읽기 전과는 달라지게 하는 힘, 가공의 세계에서 현실로 밀려오는 것, 그 터무니없는 힘. 나는 이 에세이집 안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212쪽.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게끔 하기도 하고,

읽는 그 자리에 있게끔 하기도 한다.

그 엄청난 힘이

만 원짜리 책에 들어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만 원이 아니라 백만 원을 쥐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 또한

백만 원이 아깝지 않은,

여백조차 아깝지 않은 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




* 이 글은 위 도서 추천을 목적으로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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