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지 마라, 슬픔아 - 루게릭병 엄마를 돌보는 청년, 그 짧아지는 시간의 기록 제3회 경기 히든작가 공모전 당선작 3
전용호 지음 / 사과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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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유행어 중 나대지 마라, 심장아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로 주체할 수 없이 나를 설레게 하는 이성이나 상황에 쓰이는 표현으로 인터넷 상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대지 마라, 슬픔아 라는 조금은 모순되고 어색한 표현의 제목을 가진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설레는 감정을 나타내던 표현이 이제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는 걸까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던 평범한 스무살의 청년은 어느날 어머니에게 내려진 루게릭병 판정 이후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통보 앞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까지 8년의 시간을 루게릭병 환자의 가족으로, 간병인으로 보내게 됩니다.

 

저에겐 스티븐 호킹 박사의 모습이나 내사랑 내곁에 같은 영화 속 장면들로만 알고 있던 루게릭병, 그런데 이 책에 기록된 이야기는 처절하게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가공되거나 첨가되지 않은 실제 환자 가족의 삶이 어떠한지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환자와 환자 가족의 모습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처절한 사투와 사랑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어떤 면에선 굉장히 특별하면서도 어떤 면에선 굉장히 평범했습니다. 아픈이를 품어주는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미움과 서운함, 어색함이 오롯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네 가정에서 겪는 일들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에 더불어 상당히 특별한 고난과 슬픔이 덧붙여지고 있었습니다.

 

가족간의 갈등 뿐 아니라 계속되는 가난과 변해가는 엄마 등 소설가가 창작해서 쓰기엔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소설책을 읽으면 소설가의 의도에 따라 환자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환자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거나, 환자의 가족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이 지리한 싸움에 공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감정이 이입되지 않습니다. 그저 실제하는 지금의 순간에 지독하게 펼쳐진 현실의 모습만이 고스란히 나열될 뿐입니다. 그래서 누가 불쌍하다, 누가 힘들겠다는 느낌보다도 답답하고 먹먹한, 그래서 누구를 탓할 수만도 없는 이상한 감정이 독자를 덮쳐옵니다.

 

책의 마지막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던져집니다. 어머니가 저렇게 된 것은 정말 나때문일까, 나때문에 뇌가 녹은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이 어떻게 내려지든 저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8년의 간병 시간동안 높고 낮은 온갖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이일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났습니다. 이젠 내일을 살아가야할 때 입니다.

 

이 슬픔의 시간들이 저자와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슬픔은 분명 무언가를 남겼고, 그것을 움켜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슬픔과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파묻혀 내일을 보지 못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이 책 나대지 마라, 슬픔아를 추천드립니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미리 걸어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내 슬픔의 끝을 미리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슬픔을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슬픔은 새로운 무언가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새해엔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분들의 삶에 평안한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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