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레코드에서 나는 재킷 디자인에 집착하는 편이다. 경협상 재킷이 매력적인 레코드는 내용도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이건 재즈도 마찬가지지만). 재킷에 이끌려 내용도 잘 모르면서 사은 오래된 레코드가 마음에 들어서 줄기차게 들을 때도 많다. 그러니 일반적인 성실한) 클래식 팬이 보면, ‘아니, 어쩌자고 이런 레코드를 애지중지하며 듣고 있어요?‘ 하며 어처구니없어할지도 모른다. - P10
페라이어는 내가 좋아하는 현역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그가 연주하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는 평소에도 즐겨 듣는다. ‘귀제‘나 ‘천재‘라고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나 풍부한 중용을지향하는 연주가이기에 ‘실패작‘이 없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의 음악에 실로 아름답게 녹아든다. 직접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맡은 이25번도 필요충분한 테크닉을 온화하게 구사하며 친밀한 자애로 가득한 음악세계를 구현한다. - P24
‘이 기품 있고 명석한 피아니스트는 대체 누구? ‘ 싶어서 끝까지 들어봤더니, 다름 아닌 클린이었다. 모차르트 연주로정평이 나 있지만, 브람스 연주도 못지않게 훌륭하다. 굴드처럼 기이할 정도의 심오함은 없을지언정, 어찌 보면 난삽한 브람스의 음악세계를 마치 귀중한 옥돌처럼 얼룩 한 점 없이 세심하게 닦아 현대로 가져온다. ‘이 소품들은 콘서트홀에는 적합하지 않다. 해질녘 집에서 혼자 조용히 들어야 한다‘고 이 레코드의 라이너 노트에 적혀있는데, 지당한 말이다. - P66
그나저나 이 빈 팔중주단 멤버의 재킷 속 베토벤의 얼굴은 꽤나 까다로워 보인다. 왠지 모르게 눈빛이 형형하다. 정말로 눈을 형형히 빛내면서 이런 곡을 슥슥 써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천재가 어먼지 나는 잘 모르니까. 그래도 분명 모차르트는 이렇게 무서운 얼굴은 하지 않았겠지. 친근하게 다가가는 곡이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베토벤 스스로는 그 점이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건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야‘ 하듯이. 마치 어쩌다 자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본격문학 작가 같다. - P86
바릴리반은 보다 느긋하고, 전체적으로 장난스러운 따스함이 감돈다. 물론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만, 런던반의 탄탄한 음색이 듣는 이에게 젊은 날 베토벤이 품었을 칭운의 뜻‘이라 할 만한 것을 좀더 잘 느끼게 해준다. 어느 쪽을 고를지는 순전히 듣는 이의 취향 문제다. 두 음악의 질에 우열을 가릴 수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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