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조금 익숙해진 그는 젊은 예술과 학생들이 모여 사는 생 제르맹 데 프레와Quartier Saint-Germain-des-Pres 카르티에라탱 Quarier latin 지역을 쏘다니기도 했다. 그런 무하의 주머니속엔 항상 작은 스케치북이 있었다. 그 스케치북에는 파리 식물원의 이국적인 식물들, 큰 가로수길, 시장과 철도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이 생생하게 담겼다. 무하는 이렇듯 자신이 만나는 모든 것들을 열정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 P56

사라 베르나르가 르메르시에 인쇄소와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쇄업자를 샹프누와Champenois로 옮기게 되자 무하 역시 샹프누와와계약을 맺게 된다. 1896년 이후 무하는 샹프누와와 함께 일련의 장식 패널, 달력, 엽서 등을 선보이며 ‘무하 양식‘을 형성해나간다. - P86

 그의 포스터와 장식 패널은 다시 비단 천에 그리고 엽서에 작은 과자 상자, 도자기 접시에도 인쇄되었다. 그의 작품은 굳게 닫힌 미술관의 유리문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이 닿는 거기에, 눈이 머무르는 어느곳에나 있는 대중을 위한 예술이 되어가고 있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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