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열어주어야 한다. - P94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 P97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호텔 청소의 기본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 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