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명곡이다!‘라고 납득할 정도는 아닐지언정 ‘명연이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철저히 훈련된 피아니즘의 극치, 소리 하나하나가 결정화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는 역시쾌연인 동시에 괴연이라고 할까. 그래도 이런 게 가능한피아니스트란 굉장한 존재인지 모른다. 적어도 범상치는 않다. 녹음은 1957년 초기 스테레오 녹음이지만 음질이 눈부시다. 에토레 그라치스라는 지휘자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지만, 공연하는 필하모니아의 연주는 라흐마니노프와 라벨 모두 아름답고 약동적이다. - P140
만년의 베토벤은 내면 깊은 곳에서 고뇌와 평안이 서로 다투며동거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연주자가 어느 측면에 더 강한 빛을 비추느냐에 따라 결과물인 음악도 달라진다. 이 두 그룹은 말하자면 후기 베토벤의 밝은 측면을 포착하려 한 것처럼 보인다. - P149
클래식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던 고등학생 시절, 레온 플라이셔와 조지 셀(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이 연주한 이 협주곡 레코드를사서 몇 번씩 되풀이해 듣고는 완전히 반해버렸다. 아직 자기 스타일이 뚜렷이 확립되기 전의 연주인데, 그 약동감이 매력이다. 플라이셔의 레코드는 이제 수중에 없지만 그래도 이 곡을 들으면 정겹고 따스한 기분이 든다. 그 시절 자주 들었던 세 장의 LP 레코드(+1)를 골라와서 다시 들어보았다. - P152
모차르트 만년의 걸작, 클라리넷협주곡, 메릴 스트립 주연의영화로 아주 유명해졌다. <평원의 라이언>도 매력적인 명곡이다. 드 페이어와 콜린스 음반은 첫 음부터 자못 고색창연하다. 이시절 영국인이 생각하던 모차르트상像이 하나의 정형으로 완성되어 있고, 독주자도 반주자도 거기서 한 발 내디디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지만, 지금 와서 듣기에는 좀 딱딱하지 싶다. 그런데 같은 클라리넷 주자가 삼 년 후 페터 마크의 지휘로 역시 런던교향악단과 스테레오로 녹음한 연주에서는 확 달라져서 생기 넘치고 깊은 맛이 난다. 삼 년 사이 연주가 이렇게 바뀌다니 감탄스러울정도다. - P161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 하면 한동안 D장조(D.850)에 빠져있었는데, 이 B‘ 장조에도 비슷하게 마음이 끌린다. 슈베르트의 장대한 피아노소나타는 원래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빠져드는 법이다. 그렇지만 어느 곡이든 대중적으로 연주되어 사람들이 널리 듣게 된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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