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에 발행된 주간지 <주 세 투Je Sais Tout>의기자 앙드레 아르니벨데는 ‘빛의 화가의 집에서‘라는 글에서 모네가 편하게 그림들을 둘러보라며 작업실로 안내하던 일을 회상했다. 앙드레를 작업실로 안내한 모네는 잠시 후 유리문이 달린 캐비넷 안의 조그만 이젤 위에 놓인 누렇게 바랜 봉투를 보여주었다. 봉투에는 주소 대신 시가 쓰여 있었다.
겨울도 여름도 속일 수 없는 눈을 가진모네 선생,
베르농과 가까운 외르의 지베르니에서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네. - P163

모네도 꽃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했겠지만 자신에게 예술과 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네는 비평가 프랑수아 티에보시손과 대화하면서 "화가가 된 것은 꽃 덕분인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네는 그림에서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빛과 물, 고향 노르망디의 다채로운 지형 등 자연의 모든 측면에 대한 깊은 애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매년사그라졌다가 다시 피어나는 정원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자연의 순환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초기에 색채와 빛을 연구할 때 꽃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침으로 삼았으며 자신의 생명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느낄 때에도 지베르니의 정원을 가꾸면서 작품에 대한 창조력을 되살릴 수 있었다. - P167

화가 마을이 형성되면서 지베르니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정원사들의 마을이 되어갔다. 1889년에 꽃을 그리는 화가 마리키타 길이 처음 지베르니로 왔다. 길과 그녀의 어머니는 작품 활동의 모티프가 되는 정원이 딸린 집을 빌려서 1892년부터 1897년까지 살았다. 그녀의 조그만 정원은 젊은 미국인 화가들이 오후에 모여 차를 마시는 휴식 장소가 되었다. 모네의 사위인 시어도어 버틀러도 정원을 좋아했으며 모네에게 정원 일을 배웠다. - P173

 세월이 흐르고 모네는 자기 정원의 은신처에서 영감을 얻으면서 졸라의 예측을 실현했다. 그는 예술이란 자연 앞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간단히 정의했으며 말보다는 자신의 작품에서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모네는 이 세계를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좁혀서 정의하려는 모든 철학을 거부하고 자신이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에 대해서 클레망소에게 설명했던 적이 있다. 그는 자연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감각과 세계를 조화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우주가 내 앞에 펼쳐 보이는 광경을보고 붓이 그것을 증언하도록 했을 뿐이다."
모네의 마지막 작품 <수련> 대장식화는 평생에 걸친 관찰을 아우른다는 의미가 있다. "잔잔한 연못의 평화로운 풍경 속에는 모네가 평생에 걸쳐 찾다가 마침내 자신의 정원을 그리면서 발견한 예술과 자연 간의 공명이 잘 드러나 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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