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는 점차 지베르니에서 그림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봄꽃의 아름다움에푹 빠진 그는 과일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면 과수원에 이젤을 설치했다. 1887년에는 습지 근처에서 자라는 야생 아이리스에 관심을 돌렸다. 모네는제한된 색조와 순수한 물감, 짧은 붓놀림 등 튤립 들판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때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동원했다. 아이리스 들판을 그린 작품을 보면 안개 낀 보랏빛 언덕과 구름이 흩뿌려진 하늘을 배경으로 따뜻한 색감을 지닌 노란색 꽃이 차가운 느낌의 초록색 이파리 위에 솟아나 자연스럽게 밝은 색상의 띠를 이룬다(60~61쪽).  - P63

모네는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자연에 투영하여 정원을 직접 설계하고 가꾸었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초기의 야외 회화처럼 생생하면서도 즉흥적으로 지극히자연스럽게 표현했다.  - P65

그는 정원과 관련한 서적을 열심히 찾아읽었다. 지베르니를 방문했던 기자 모리스 기예모는 모네가 "미학 서적보다 원예 카달로그를 더 많이 본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모네는 카유보트와 소설가 옥티브 미르보, 비평가 귀스티브 프루아 등 자기처럼 정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원예 지식이나 씨앗, 모종 등을 교환했다. 그는 온실을 두 개만들었고 정원사를 여섯 명 고용했으며 "돈을 버는 족족 모두 정원으로 들어간다"라고 웃으며 인정했다. - P71

모네는 1893년 2월 초 지베르니 집 근처의 땅을 약간 구입했다. 1200평이 채안 되는 그 땅에는 초지와 예전에 농장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던 조그만 연못이있었다. 이곳을 경계로 한쪽에는 철로가 다른 쪽에는 그의 정원 울타리와 나란히 놓인 간선도로가 있고 또 한쪽으로는 엡트 강의 작은 지류인 루강이 흐른다.
의붓아들 장-피에르의 말을 빌리면 거의 습지나 다름없었던 그 땅으로 인해 모네는 오랫동안 간직해오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모네는 이곳을 밝은 색수련이 잔잔한 수면에 떠 있고 주위에는 갈대와 버드나무, 아이리스가 자라는연못정원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했다. - P75

만년에 모네는 연못을 그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때를 돌아보았다. 그는 ‘수련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모네는 수련을 심은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관상용으로 수련을 심었을 뿐이다. 전혀 그럴 생각은하지 않았다." 그는 벤치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명상하면서 이 풍경을 단 하루 만에 습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풍경에 친숙해지고 나서야 연못을 이해하게 되었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을 포착해냈다. "어느순간 갑자기 연못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나는 바로 팔레트를 집어들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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