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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816/pimg_7089781901473074.jpg)
'엄마'라는 단어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의 그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한다.
누구에게라도 엄마가 있고, 또 세계 인구의 반이 엄마가 된다.
그런데 그 엄마라는 단어앞에 슬픈 단어가 붙었다. '가해자'..라는 단어가.
#1
1999년 4월 20일 미국의 콜롬바인 고등학교란 곳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했다.
에릭과 딜런이라는 두 명의 학생이 무차별적으로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다.
그 사고로 인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선생님이 목숨을 잃었고 2명의 총잡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이 충격에 빠지고 사람들은 그런 악마같은 아이들을 길러낸 부모에게 분노하며 질책했다.
아,, 나라도 내 아이가 어느날 학교에 갔다 총격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소식을 듣는다며 당장의 가해자와 그 가족의 가정교육을 탓할것이다.
오래전 이 사건의 희생자의 엄마가 쓴 책을 읽고 가해자의 부모에 대한 마음보다는 피해자 부모의 애통한 마음만을 같이 느끼며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해자 중 한 명의 엄마가 쓴 책을 읽고 피해자와 가해자로 이분법으로 나눠 판단했던 너무나도 당연했던 내 기준이 와장창 깨져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고 아파할 권리조차 없었던, 자식의 장례식도 몰래몰래 급히 치를 수 밖에 없었던,, 그 어떠한 희생자의 부모보다 더 비참한 부모들이 아니지 뭔가.
책을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아려서 한 번에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덮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다시 읽고, 또 마음이 조여오면 잠시 쉬었다 읽고…
아무래도 어린 조카가 있다보니 너무나도 착했던 딜런의 어린시절 모습에 더더욱 감정이 이입되었나 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처절하고도 처참한 슬픔의 느낌을 왜 '가슴이 찢어진다'고 표현하는지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심장이 가슴속에서 터지고 갈래갈래 찢기는 듯한 육체적 고통이 실제로 느껴졌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묘사였다.P71
그 사건 뒤에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러면서도 뉴스에 딜런의 잘생긴 본모습이 아니라 이상한 사진이 나온다고
속상해 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 정도는 되었다 내 아들이 살인자라는데, 나는 사진이 못 나왔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니.
견딜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올 때 정신이 어떤 장난을 치는지 보여주는 극적인 예다.
#2.
딜런의 엄마인 수는 일기를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 일기는 고통스러울 때 더더욱 자세해 지고 길어진다.
사건이 일어나고 몇 년간은 글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가까스로 다스린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경찰이 보여준 증거자료를 확인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과 비슷하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글로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기록과 자신의 일기에 나타난 아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는지를 사건 후 16년의 기간동안 추려나간다.
대체 죽는 그 날 아침까치 착했던 내 아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으며 언제부터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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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시간이 흐르며서 딜런이 다른 사람을 쐈다고 의심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 사실이 처음에는 아주 추상적으로만 받아들여졌다.
딜런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총격 현장에 딜런이 있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딜런은 이제까지 그 어떤 사람도 짐승도 다치게 한 일이 없었다. 딜런은 절대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P54
사건의 전개를 기술 한 후, 대체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해가는데 그 결론은 자살에의 갈망이었다.
우울증에 걸린 딜런은 자살을 꿈꾸게 되었고, 그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는 현실에의 감각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혼자 죽을 수도 있었겠지만 딜런 옆에는 분노를 조장하는 에릭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 에릭이라는 친구의 성향은 분노가 넘치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웠다. 우을증에 시달리던 딜런은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총기난사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딜런의 글을 분석했던 정신과 전문의가 딜런의 엄마에게 몇 가지 중요점을 집어 주었다.
1.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혹은 어떻게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을 아니라는 것.
2. 딜런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님이 '보지 못한'것이 아니란 것. 딜런은 원래 비밀이 많은 아이고 또 똑똑한 아이였던 만큼 의도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감추었다.
3. 살 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딜런의 심리작용은 심하게 악화되어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4. 이렇게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의 이전 자아가 남아 총격 도중 최소 네 명을 살려주었다는 것. P262
#3.
가해자라는 구름을 걷어버리고 보니, 딜런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을 한 학생이었다.
결국 콜롬바인 사건을 막기 위해선 자살을 방지할 만한 어떠한 조취가 있었어야 했는데 부모는 자식의 그런 우울함을 캐치하지 못했다.
딜런이 의도적으로 숨긴 것도 큰 요인이지만 자기 자식의 마음은 절대적으로 건강하다고 착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유인 것이 크다.
나는 바이런 (딜런의 형)에게 그랬듯이 딜런에게도 번개, 뱀, 저체온증을 조심하라고 가르쳤다. 치실질을 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사각지대를 꼭 확인하라고 가르쳤다. 십대가 된 뒤에는 음주와 약물의 위험에 대해 최대한 터놓고 이야기하고 안전하고 윤리적인 성행위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딜런이 마주한 가장 큰 위험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미 자기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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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건 딜런이 겉으로 우울의 징후를 보였다는 것이고, 톰과 내가 보고도 해석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 징후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 만큼 지식이 있었다면 콜럼바인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P265
#4
어찌보면 참 많은 생각거리와 과제를 주는 책이다.
엄마라면, 또 십대의 자식을 둔 엄마라면 정말로 꼭 꼭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픈 책이다.
특히나 사건이 일어났던 1999년보다 지금의 엄마들은 더욱 바쁘고 더욱 자식들과의 관계과 없다.
10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보니 엄마 아빠와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아이들이 정말로 10%미만인 것 같아 보인다.
눈에 띄게 폭력적이며 버릇없는 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엄마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의 아이만큼 세상에서 바른 아이는 없다고 한다…
걱정이 된다.
#5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816/pimg_7089781901473072.jpg)
이 두 권의 책은 함께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특히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희생된 캐시 버넬의 엄마인 미스티 버넬의 엄마가 쓴 책인 'she said yes', 이 책은 꼭 같이 읽어야 한다.
캐시버넬은 도서관에 숨어있다 희생된 여학생인데 에릭이 총구를 겨누고 '너 하나님을 믿냐?'라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을 했다.
에릭은 'why?'라는 물음과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캐시는 총격이 있던 날 친구에게 이런 쪽지를 건냈다고 한다.
P.S 나는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 진심이야. 힘들고 두렵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딜런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피해자의 가족들 전부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기술했는데
캐시 가족에게 도착한 편지 전문이 들어있어서, 가해자 엄마의 마음을 절절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권의 책은 반항기에 들어선 아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 시기를 넘긴 한 어머니와 아들의 편지모음이다.
엄마와 말도 섞으려 하지 않았던 청소년이 엄마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하기까지 그리고 엄마가 아들을 이해하기까지의 여정을 적나라하니 볼 수 있다.
서평을 남긴줄 알았는데 아직 안썼구나.
조만간 정리를 해야겠다.
#6
뜬금없지만 세월호가 생각난다…
그 가해자는 지금까지도 힘들어하는 이 아이의 엄마와 같은 양심을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