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 예수 복음의 심장부를 찾아서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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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여정이다

P133


목사님에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부흥강사형 목사님도 있고, 선교사형 목사님도 있고, 선생님같은 목사님도 있고 때론 팀켈러 목사님처럼 교수님같은 목사님도 있다.
팀 켈러 목사님의 이전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팀 켈러의 결혼을 말하다', '기도' 두 권다 은혜스럽고 말하고자 하는 바에 100%동감하는 바이지만 나같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citation이 웬만한 논문 못지 않았고, 전문성과 논리 전개도 정말 날카로운 박사 논문을 읽는 것 같아서 조금은 부담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탕부 하나님'은 굳이 신학박사 수준이 아니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받아들이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의 진수인 은혜, 칭의, 성화까지 그 어떤 부분도 놓치지 않아서 올바른 복음에 대한 이해를 키울 수 있었다는 거…

오랜세월 교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자라오면서 많은 유형의 자칭 복음을 접했다. 물질 만능주의에 딱 맞는 복음도 접해봤고, 이 세상은 절대적으로 악하다는 영지주의 성향의 복음과 성경을 지금의 세계정세에 끼워넣으려는 세대주의적 복음, 영적인 현상에 필요이상으로 반응하는 카리스마 운동까지 정말로 여러가지 길을 필연적으로 밟아 볼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렇게 치우치지 않은 복음에 대한 설명은 접해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끔 성경을 보면 이 당시에는 심리학이 발달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성향과 심리를 꿰뚫어 보는 비유를 드셨는지 놀랍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탕자의 비유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부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큰 아들은 도덕적으로 바른 아들, 둘 째 아들은 자아실현에 급급했던 문제아였고 아버지의 재산의 반을 탕진하고 뻔뻔하게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바로 그 아들이다. 그런데 팀 켈러 목사님은 작은 아들이 아닌 큰 아들이 더욱더 큰 문제를 안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작은 아들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도덕적인 삶을 살아온 큰 아들은 자신의 도덕적인 삶 때문에 은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네? 그런데 이 당시 이스라엘 뿐 아닌 사실 동서고금 막론한 많은 문화권에서 첫째는 더 도덕적이며  자신보다 부모님의 바램 혹은 사회의 바램에 순응하는 삶을 선택하는 반면 둘째는 반항적이며 타인의 눈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더 쉽게 반응한다.  이것은 우리집을 보더라도 그렇고, 내 남자친구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한,일,미..etc)를 보더라도 그렇다. 순응하는 첫째들 속에 쌓이는 것은 많은 경우 울분이다. 그리고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그 울분은 폭발하며 영적인 폭발의 경우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반항아였던 둘째 뿐 아니라 영적인 첫째들도 마찬가지로 병들어 있음을 예수님은 보여주시고 싶어하는 것 같다.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 들었지만 자신의 방법으로 구원의 필요충분조건을 만들어내는 첫째들이 많았던 예수님의 시대가 그들이 메시아를 못박은 이유이며 중세시대가 그토록 암울했던 이유인 듯 하다. 물론 둘째들이 만든 인본주의가 시대를 지배하는지금도 밝지는 않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복음이다. 첫째도 둘째도 모두 복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랑의 실체와 아름다움과 위력을 느낄 수 있다. 그분의 사랑은 어느 누구의 사랑보다도 더 절절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남들에 비해 더 어렵게 여긴다.기질상 더 이성적이고 통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신비 체험에 너무 목말라 있어 모든 직관과 강한 감정을 '주님이 주신 말씀'으로 해석한다. 요컨대 우리 대부분은 예수님이 주시는 것을 받으려는 열의가 너무 과하거나 또는 부족하다. P154,157



사실 이 작은 한권의 책을 읽고 쓴 이 작은 포스팅을 (수천의 학자들이 수천년간 연구하고 증거한)복음을 운운하며 정의하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동서고금 막론하고 원죄로 더럽혀진 인간의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도 변치 않으신다. 
그 대전제 아래에서 그 대전제를 잘 부연설명해주는 이 책을 읽어본다면 영적 생활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 질 듯 싶다. 그리고 거짓교사들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본향을 향해 가는 길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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