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그림책이다. 그림 속 늑대가 홀로 사슴을 쫓던 상황이 그랬을까 싶다..한 때 늑대에 매료되어 늑대에 관한 책들을 끌어 모아 읽었던 적이 있다. 이미 한 시즌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늑대에게 묘하게 끌린다. 그래서일까. 늑대를 그린 이미나 작가의 <조용한 세계>는 지나칠 수 없는 책이었다..책표지를 보면, 세 마리의 늑대가 나오지만 책장을 넘겨 보면, 한 마리의 늑대가 외로이 끈질기게 수사슴을 쫓고 있다. 어쩌다 무리지어 다니는 늑대가 홀로 남게 되었을까. 책에서 언뜻 언급되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읽는 이의 몫이다..이미나 작가의 <조용한 세계>를 눈 내리는 밤에 보았다면, 아마도 창가 너머 하얗게 내린 골목을 홀로 걷는 늑대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작가의 거친 붓터치와 책 속 가득 채운 하얗고 푸른빛의 색감에서 늑대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 번 이 책을 쓱 읽고 넘어가진 말았으면 한다. 읽을 때마다 좇는 늑대와 쫓기는 사슴의 팽팽한 추격전 속에서 자연의 섭리와 뭔가 모를 찡한 마음이 새롭게 그려 지니깐..조용한 세계, 아마도 모든 것이 끝난 뒤의 상황을 두고 지어진 제목이 아닌가 싶다. 목적은 이루고 난 뒤 해냈다는 성취감만 있었을까.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정적과 어둠이 주는 허탈감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늑대가 바라 본 조용한 세상은 어땠을 지. 이도 읽는 이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책 속의 늑대는 푸른 눈의 늑대였다. 블루아이, 단박에 떠오른 이름이다. 토이 세이들러의 <맏이> 속 주인공 늑대의 이름이다. 블루아이가 이미나 작가의 그림책 속에서 살아난 느낌이랄까. 블루아이도 어쩌다 홀로 남게 된 늑대였다..홀로 남은 늑대는 다시 무리로 돌아 갔을까. 아니면 블루아이처럼 홀로 떠돌게 되었을까. 이것도 독자의 몫이다. 상상의 여백을 주는 게 좋다. 상상꺼리가 많은 책은 다시 펼칠 재미가 있다. <조용한 세계>가 그랬다. <조용한 세계>를 읽을 때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조용한 때를 골라 담담하게 읽었으면 한다. 책이 주는 여운을 오랫동안 묵직하게 간직하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