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배송되고 나는 먼저 꽃병을 닦았다. 어린 느티나무가지를 물에 담갔다. 수경재배가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식물 집사 저자 신주현(아피스토) 선생님한테 물어볼까 말까 하다가 인연이 닿은 식물이니 ‘에라 모르겠다’ 하였다. 느티나무 꽃말은 ‘운명(運命)’이다. 그러고 나서 책을 열고 연필로 썼다. 손으로 쓰는 건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읽힌다. 필사의 매력이다. 이 책은 책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켜켜이 떡제본한 종이들이 훤히 보인다. 처음엔 ‘뭐야, 불량이야?’했다가 ‘파격적인 디자인인가?’했다가 필사하며 책등을 누드로 만든 이유를 비로소 알아차렸다. 쓰기 편하라고 그랬던 것이다. 써보면 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독자 편하게 만들어준 만듦새가 내맘에 꼭 들었다. 느티나무 속살같은 책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배송된 폭신한 비닐을 뜯었다. 시집 그립감의 책을 꺼내자 광채가 났다. 황금빛 열매 한 알이 손에 쥐어진 것이다.저자 김성신 선생님을 처음 뵌 날을 기억한다. 코끝이 시렸던 1월 인사동이었다. 나는 그분을 보자마자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1953년에 발표한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났구나, 싶었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오랜 세월 묵묵히 나무를 심어 황무지를 숲으로 만든 엘제아르 부피에와 출판 생태계에 활자로 사람을 심는 김성신 선생님의 애씀은 다르지 않았다.언젠가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께 “왜 출판을 하세요?”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책 한 권, 한 권을 만드는 건 바둑판에 바둑알을 놓는 것이지요. 그렇게 집을 지어가며 공동체에 여울을 만들기 위해 출판을 시작했어요.”사랑을 뿌려 열매를 맺게 만드는 사람들. 돈을 뿌려 이자를 득템하는 자본주의와 별로 안 친한 이들에게서 나는 신의 속성을 본다. 이 책은 김성신 선생님이 여러 빛깔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서평가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조잘조잘 들려준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김성신 출판평론가의 <서평가 되는 법>에도 써먹어 볼까?저게 저 혼자 써질 리는 없다저 안에 막걸리 걸치는 몇 밤저 안에 땡큐 두어 달저 안에 그믐달 몇 날
석양이 질 무렵, 저는 <살구나무 빵집> 앞 나무의자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살구나무 빵집> 오는 길에, 자기만 알고 싶은 비밀장소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줄 때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어요.일단 떨리는 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요, 분명 떨립니다. 왜 그럴까요? 비밀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나서는 더 이상 비밀은 비밀이 될 수 없기 때문이겠죠. 그리고요, 그 비밀장소를 전해 들을 사람의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우고 싶은 바람도 한 몫 거들지 않을까 싶어요.이 시집은 제게 그러한 모둠 공간이었습니다.고마운 것, 미안한 것에 대하여 말로만이 아닌 행동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저는 김보일 선생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공들여 쓴 글과 거저 보내주신 마음이 이내 고맙고 또 미안하여 저는 이곳에서 서성이고 계실 독자분들께도 <살구나무 빵집>을 소개를 해드리기로 했답니다. 살구나무 때문인지 빵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향기가 별을 달고 샤방샤방, 사방에 퍼지기를 빌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