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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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헌학자 배철현은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가치를 네 권의 시리즈로 기획했다. 《정적》은 《심연》과《수련》의 뒤를 잇는 세 번째 책으로 "나를 유혹하는 외부의 소리에 복종할 것인가.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에 전율한 것인가"를 화두로 제시한다. 하루 10분의 짧고 깊은 생각, 자신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감지하고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수련'을 거친 사람은 '정적'을 통해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고요한 울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정적'은 잠잠한 호수와도 같은 마음의 상태이며, 잡념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우고 의연한 '나'로 성숙해지는 시간이다. 정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부단히 움직인다. 그래야 고요한 마음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 정적이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인 것이다. 


"정적만이 남았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가운데 그 고요함에 내 한 목숨을 의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세상 어딘가로 통하는 내 피는 고요하게 움직이는데도 소리 없이 해탈한 심경으로 몸을 토목으로 여기고, 하지만 어렴풋이 활기를 띤다. 살아 있다는 정도의 자각으로 살아서 받아야 할 애매한 번민을 버리는 것은,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벗어나 하늘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집착을 초월한 활기다. 고금을 공허하게 하고 동서의 자리를 다한 세계의 바깥에 한쪽 발을 들여놓아야만...... 그렇지 않다면 화석이 되고 싶다. (중략) 그렇지 않다면 죽어보고 싶다. 죽음은 만사의 끝이다. 또 만사의 시작이다.  - 나쓰메 소세키의《우미인초》중에서"



우연히 나쓰메 소세키의《우미인초》를 읽고 발견한 이 문단에서 곧바로《정적》을 떠올렸다. 정적. 고요. 침묵. 죽음... 소리 없는 세계를 품고 있는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상승보다는 하강의 기운. 지금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는 수많은 소리에 둘러싸인 일상을 살아간다. 침묵은 숨이 막힌다.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기에 소음을 찾아 듣고, 사람을 찾아 말로 내뱉는다. 아침에 눈을 떠 잠을 드는 순간에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한다. 유튜브, 팟캐스트, 음악, 게임, 전화, 카톡, SNS... 우리는 말 없는 시간에도 수많은 대화의 말 칸에 파묻혀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그 마음을 통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때마침 배철현의 《정적》이 나에게 찾아왔다. 고요한 눈으로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기를 권하는 이 한 권의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갈수록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28개의 화두가 곧 다이몬이다. 다이몬은 '스스로 완벽한 자'가 되도록 훈련시켜주는 혹독한 과정이자 시련이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어제와 다른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적은 오늘도 기꺼이 입을 다물고 마음의 울림을 들을 수 있는 고요한 정적 안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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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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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발표한 제발트의 소설 이민자들은 '네 편의 긴 단편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한 이민자를 중심으로 타지에서 이방인이 된 네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래도록 이방인이었던 그들은 끝내 자살을 택하거나 죽은 거와 다름없는 삶을 이어간다. 누구도 그들이 겪은 고통의 근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나'만이 과거의 기록을 찾아 집요하고 꼼꼼한 관찰로 담담하게 서술해 나간다. 개별의 서사는 다를지언정 '이민자'라는 공통점을 지닌 인생의 굴곡과 깊이는 독특한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최대한 건조한 문체로 사실을 담아낸 만연체 문장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그리하여 이 책은 충실한 '기록'에 가까운 '소설'이다. 마치 연작 소설처럼 이어지는 단편 속 '나'는 다른 인물이 아닌, 작가 본인에 가깝다. 결국 '나'가 소개하는 인물들은 우리 이웃과도 같다. 무엇이 그들을 아프게 했으며 평생을 지닌 상실감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세밀한 기록 속에 담긴 얼굴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이는 먼 훗날 이방인이 될 스스로를 위한 글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고향을 잃고 헤매는 노마드 일수도 있다. 그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게 인도해주는 이민자들》는 기억에 관한 상실의 기록이며 더 나아가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네 단편 속 인물들은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 타의에 의해 고향을 떠난다. 그토록 오래 외국에 살면서도 어떤 이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자신의 원점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지워내지 못한다. 이미 그들이 기억한 고향은 사라지고 없기에 돌아와도 여전히 그들은 이방인의 굴레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 중에 암브로스 아델바르트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유대인이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거나 죽은 거와 다름없는 삶을 연명한다. 헨리 쎌윈 박사는 의사로서 부유한 아내와 결혼하여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만 아내가 그의 유대인 혈통을 알게 되면서 몰락으로 치닫는다. 그의 정원이 지닌 자연의 고립은 마치 그의 축소판 같다. 


(20) 쎌윈 박사는 집 안에 있을 때가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은신처에 틀어박혀 생각에만 골몰했다. 그가 가끔 썼던 표현을 빌리면, 그런 생각들은 날이 갈수록 모호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별스럽고 더 정밀해졌다고 한다. (29) 그는 내게 고향이 그립지 않으냐고 물었는데, 이 질문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자, 쎌윈 박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지난 몇 년 사이에 향수병이 점점 더 심해졌다고 고백했다. (33) 무엇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군요. 돈일 수도 있고, 결국 발각되고 만 내 혈통에 대한 비밀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사랑이 식어서일 수도 있겠지요. (...) 그로부터 몇 주가 흐른 늦가을의 어느 날, 그는 가지고 있던 그 묵직한 사냥총으로 자살했다.



'나'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파울 베라이터는 나치의 등장으로 평화로운 삶의 질서가 일시에 무너지는 경험을 체험한다. 그는 자연과학 교사로서 성스러운 척하는 인간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지녔으며, 산소가 부족하면 인간의 사고 능력이 떨어지기에 한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 놓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수업은 지극히 직관적 이어어서 직접 눈으로 관찰하는 수업을 중시했고, 주변 선생들은 그를 가리켜 '길 잃은 영혼'이라고 평했다. 그의 불행은 전쟁에서 비롯됐다.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이 여실 없이 세상을 파괴하고 짓밟고 지나갔다.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그와 가까이 지냈던 란다우 부인은 나치 시대에 독일인이 보여준 비열한 태도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분노한다. S시의 사람들은 파울 베라이터에 대한 조사(弔詞)에서 나치가 그의 삶을 파괴한 것에 대해 모호하고 성의 없이 언급하고 넘어간다. 전후에도 고향에서 살았고 죽는 날까지 떠나지 않았던 그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이 S시의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민자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39) 파울 베라이터가 자신의 뜻에 따라, 혹은 어떤 자기 파괴적인 강박증상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유명을 달리한 교사의 공적만 열거하고 있었다. (65) 파괴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침묵하고, 모든 것을 감추고, 때로는 실제로 잊어버리기도 했는지요. 그런 것은 그들이 그전에 보여주었던 비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것이에요. (69)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이 처참한 공격을 받은 사건 때문에 생긴 마음속의 분노와 불안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라고 란다우 부인은 힘주어 말했다. (79) 기차는 그에게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요. 기차의 종착역은 항상 죽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 그것은 파울이 겪어야 했던 독일의 불행을 상징하고 있었어요. (...) 결국 사람은 무엇 때문에 죽는지 참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가 살아온 인생은 더욱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세계를 여행과 도시, 문명이라는 환상으로 보여주며 그 끝의 상실을 아득하게 그려낸다.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연장자로 오히려 볼품없어 보였던 암브로스는 일곱 살 아이의 눈에도 자기만의 상상 속에 갇혀 사는 할아버지로 비친다. 테레스 이모와 피니 이모, 카지미르 삼촌과 암브로스 할아버지는 가난과 실업으로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그 와중에 암브로스는 쏠로몬 집안의 집사이자 심한 사치와 탈선행위를 일삼던 쏠로몬의 아들, 코즈모의 시종이자 여행 동반자로 일한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은 코즈모가 죽음을 맞이하자 이내 곧 암브로스도 빈 껍질과 같은 우울증을 겪고 자기의 발로 병원에 입원한다. 퇴락과 파괴는 쏠로몬 가문의 몰락에서도 반복되어 이어지며, 그들이 여행했던 호화롭고 찬란했던 예루살렘은 과거의 영광은 뒤로 한채, 악취와 폐허의 세계로 전락한다. 판슈토크 교수의 정신 충격요법은 암브로스의 건강과 정신을 더욱 철저하게 말살해 나간다. 그럼에도 순종적인 자세로 꾸준히 충격요법 치료를 받는데 점점 암브로스의 사고능력과 기억능력은 죽어간다. 


(126) 외삼촌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에서 길어 올린 회상들을 아주 느릿느릿하게 이야기했는데, 지극히 사소한 것들까지도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더구나. 그런 기억들을 자기 자신과 연결시켜주는 추억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점점 확실히 알게 되었어. 그래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외삼촌에게는 고통이기도 했고, 자신을 해방하려는 시도이기도 했지. 말하자면 구원이자 가차 없는 자기 파괴이기도 했던 거야. (146) 판슈토크 교수는 아주 낙관적인 소견을 작성했지요. 하지만 나는 아델바르트 씨의 얼굴을 보고 그에게는 아주 미약한 힘만 남아 있을 뿐, 이미 완전히 파괴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눈은 기묘하게 초점을 잃은 상태였고, 그의 가슴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 그는 에나멜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고 정장을 말끔하게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죽어 있더군요. (185)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막스 페르버는 맨체스터라는 산업혁명과 현대문명에 의해 망가진 대재앙의 현장을 상징하는 도시에 정착한다. 유대인들이 남기고 떠난 황량하고 거대한 황무지 같은 텅 빈 거리는 죽음의 정적이 감돈다. 맨체스터가 곧 자신이기도 한 화가 페르버는 디스크 수핵으로 편하게 움직일 수 없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매번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리기와 지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끝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지쳐버리는 그의 작업은 유대인의 삶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완성도 하지 못하고, 버릴 수도 없는 그림처럼, 그의 고향인 독일을 버리지도 그렇다고 화해할 수도 없는 위치에 서 있다. 페르버는 독일어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독일 땅을 밟아본 적도 없지만 아픈 기억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영국으로 탈출시키고 끝내 떠나지 못한 부모의 죽음에 대한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어머니 루이자가 남긴 일기는 독일인 이웃과 다름없는 자부심을 지닌 유대인의 소박한 기억이 담겨 있다.  


(195) 어릴 때부터 익숙하던 그 빛은 밤마다 내게 설명하기 힘든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나는 맨체스터에서의 초창기를 떠올리면 얼럼 부인, 아니 그레이시가 내 방에 넣어주었던 차 만드는 기계가 내 생명을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나는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삶에 작별을 고하고 싶은 기분에 빠질 때가 잦았다. 그 괴상하면서도 쓸모 있는 기계가 밤이면 은은한 빛으로, 아침이면 나지막하게 물 끓는 소리로, 한낮에는 그냥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내 삶을 지탱해주었던 것 같다. (203) 페르버는 용암이 흐르다 멈춘 듯한 그 물감 덩어리야말로 자신의 부단한 노력의 진정한 결과이자 명백한 실패의 증거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작업실 안의 물건들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자기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지나가듯 말하기도 했다. (204) 그는 먼지야말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임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고 했다. 먼지는 빛이나 공기나 물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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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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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이란 독립된 완결 구조를 갖춘 각각의 작품들이 연쇄적으로 묶여 있는 소설을 가리킨다. 형식적 완결성을 갖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한 편의 장편소설의 형식을 갖춘 소설이다. 인생의 한 단면을 압축된 구성으로 제시하는 단편의 장점과 인간의 삶과 그 관계의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장편의 장점을 지녔다.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 우선 소설 《d》는 하루아침에 연인 'dd'를 잃은 남자 'd'의 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나'와 연인 '서수경' 그리고 동생 '김소리'와 그녀의 아들 '정진원'의 이야기를 읊조리듯 풀어냈다. 이 두 이야기 사이를 관통하는 것은 시간과 역사, 뜨거운 침묵과 차가운 혁명이라는 역사가 조용히 관통하며 흘러간다. 사물과 죽음, 그리고 책, 여기에 문장이 덧붙여 '나'가 쓰고자 하는 누구도 죽지 않은 이야기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늘이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앞마당을 쓸고 가듯 훑어낸다.   


dd의 죽음 이후로 d의 세계는 진공이 된다. 소리도 없는 세계 안에서 d를 끄집어낸 것은 여소녀 아저씨의  빈티지 오디오이다. 소리가 곧 그를 기억으로부터, 과거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불러낸다. 그가 죽은 듯이 살아갔던 시대는 2009년 용산 참사,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침몰, 그리고 더 옛날로 거슬러 1983년 북한 공군 이웅평 대위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했던, 탈출의 장면을 기억한다. 그리고 무척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여소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진공관의 섬뜩한 열기는 집요한 통증처럼 그의 손 끝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건 마치 혁명의 불씨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열기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2016년 겨울 초입의 촛불 집회를 지나 다음 이야기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선고한 정오가 막 지난 짧은 시간으로 점프한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그렇게 혁명의 전말이라 불리는 여러 사건을 기억의 소환이라는 형태로 드문드문 불러 낸다. 소설가 '나'의 입을 통해서, 혹은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한 편의 소설을 쓰듯 독백처럼 회고한다. '나'와 '서수경'은 1996년 8월 연세대 항쟁에서 재회한다. 그로부터 20년을 그렇게 곁에서, 너희 둘은 대체 무슨 관계이냐고 묻는 타인의 시선을 묵묵히 견디며, 둘 중의 한 명이 사라진 다음에도 남은 한 사람의 생활을 보호하고, 그를 각자의 가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언젠가 그 일이 닥칠 때 서로의 유언대로 남은 삶을 품위 있게 마저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돌아갈 무렵에는 우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둘은 20년 뒤에도 여전히 함께 있을 것이다. 



과연 상식이란 무엇이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혁명이란 무엇인가. 2016년의 촛불집회부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을 선고하였다 하여 과연 세상의 혁명을 이루어졌는가. 심지어 '魔女OUT'이라는 팻말이 버젓이 광장에서 들고 다닐 때조차 여성은 묘하게 배제되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는 세상 속에서 겪은 부조리와 이해 불가능의 현실 속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당연하듯 받은 차별과 눈물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이 거치고 살아온 흔적의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꾹꾹 밝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우리는, 나는, 오늘은 과연 어떻게 기억될까. 그 광장에 나도 있었다고,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한 뜻으로 감히 서 있었노라고 이야기할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읽는 동안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으로 끌어당겼다. 그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모두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굳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그같은 이야기로 문장을 곱씹으며 멈칫할 것만 같다. 그건 마치 d가 오디오의 음악에 온 몸과 마음을 내 맡겼듯이, 어떤 전기 신호처럼 저릿한 감각으로 새겨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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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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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미야자와 겐지의 영결의 아침 시구에서 따온 제목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남편을 잃은 74세 모모코씨의 오롯한 독백에서 시작된다. 고독한 개인의 내면을 자유롭고 감각적인 문체로 풀어낸 이 소설의 비범함은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여러 목소리들을 놓치지 않고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로 잡아 냈다는 것이다. 형식의 구애 없이 고정된 시점에서 탈피하여 홀로 남겨진 고독의 아픔을 가슴 절절하게,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는 통쾌하게 다가온다. 

실제 와카타케 치사코 작가는 모모코 씨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의 사별을 계기로 55세부터 소설 강좌를 들었으며 8년 후에 이 소설을 발표했고 2017년 제54회 문예상을 최 연장의 나이인 63세에 수상했다. 게다가 올해 2018년 제158회 아쿠타카와 상까지 수상하며 세상에 이런 일이, 또 한번 인생 역전을 알렸다. 이례적인 작가 데뷔는 물론 24일 만에 50만 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운 이 소설의 묘미는 무엇일까.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물 흐르듯이 자유롭게 풀어낸 문장 속에서 고독과 인생에 관한 아포리즘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모코 씨는 일상 어디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들 중에 한 명이다. (소설이 시작 단계에서 모모코 씨가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혹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이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여러 생각과 대화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 슈조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고 나자 모모코 씨는 홀로 이 세상에 남겨진다. 남편이 떠난 후, 갑자기 터져 나온 수많은 목소리들, 가장 깊은 본연의 욕망과 사회에서 요구받는 욕망, 개인으로서의 여성과 가정 안에서의 역할, 사회에서 주어진 여성의 순종적인 위치에서 과연 내가 누구인가를 반추해가는 과정을 스스럼 없이 솔직하게 꾸밈없이 풀어냈다. 

우리 모두 늙음에 관해 아직 먼 미래의 일처럼 여기며 마주보려 하지 않는다. 그 끝 갈데 없는 고독과 외로움과 맞설 용기가 부족하다. 무지로 점철된 낙관주의자가 되어 손 놓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모코 씨의 정신은 어느 젊음 못지 않게 자유롭다. 그녀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한 사유를 놓치지 않는다. 고독을 외면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자유롭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내면으로 흘러 들어오는 목소리는 그래서 표준어일 수가 없다. 도호쿠 출신의 모모코 씨는 숨길 수 없는 정체성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붙어 있는 언너와 자기 안의 융모 돌기로 빼곡하게 이루어진 감각과 사고는 수많은 대화로 넘쳐흐르고, 우리는 그녀에게 서서히 동화되어 간다. 

아직 늦지 않았다. 시작할 수 있다. 모모코 씨처럼 우리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면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며 모두가 서로 지켜봐 주는 따뜻한 시선에서 결국 우리 모두 함께라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나의 인생을 도맡고 내맡기며 대등하게 위치하는 너와 나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의 숨은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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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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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미야자와 겐지의 《영결의 아침》 시구에서 따온 제목,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Ora Orade Shitori egumo)는 남편을 잃은 74세 모모코 씨의 오롯한 독백으로 시작된다. 고독한 개인의 내면을 자유롭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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