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마음의 생태학 -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김우창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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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의 한 작은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참석자 지인이 호텔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으니, 택시에 지갑을 놓고 내렸는데, 운전사가 그것을 되돌려주겠다며 호텔로 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나의 신뢰가 지금 여기에 달려 있다”고 농담을 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김우창 교수의『깊은 마음의 생태학』中,...

우리의 삶은 ‘신뢰’를 근본으로 한다. 믿음이 아니면 아무것도 도모할 수가 없다. 작고 사소한 일부터 중차대한 일까지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동양학에서도 인의예지신 가운데 신(信), 곧 ‘믿음’이 중심을 차지한다. 인의예지신을 오행(五行)으로 치면 ‘신’은 토(土)로 정중앙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신뢰’란 정확히 무엇에 대한 믿음일까?

한국 인문학의 거장 김우창 교수는 말한다. 인간 개개인의 ‘마음의 깊이’에 대한 신뢰이고 ‘존재 전체’에 대한 신뢰라고. 때로는 삶의 터전을 떠나 광대한 우주, 자연의 신비에서도 이를 느낀다고. 이처럼 자연에 대한 절실한 마음과 존재의 신비에 대한 경외가 ‘인간의 마음’을 열 수 있고, ‘깊은 마음의 생태학’이 성립할 수 있단다.

신작『깊은 마음의 생태학』은 ‘이성과 마음’을 인문학의 핵심과제로 제시한다. 문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 수학, 생물학 등을 총망라한 압도적 지식, 눈부신 통찰을 통해 마음에서 작용하는 이성의 탄생과 진화를 꼼꼼히 파헤치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현실은 현실 자체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마음에 담기어 발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인간이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는다. 인간의 이익에 맞게 세계를 왜곡하고 조종하려 든다. 저자는 “오늘 우리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은 ‘깊이’에 대한 감각이다. 생태계의 위기는 이러한 깊이에 대한 우리의 감각 상실에 연루되어 있다”고 말하며 삶과 세계의 표면만 보는 우리 이해의 ‘얕음’을 꾸짖고 마음의 ‘깊이’를 강조한다.

‘깊은 마음’이란, 곧 세상에 대한 ‘겸손함’이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세상과의 넓은 관계를 보는 것이 ‘마음의 생태학’이다. 마음의 효능마저도 경제적 가치로 따지는 저속한 세상이지만 “어느 경우에도 깊은 마음은 그렇게 쉽사리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 마음은 끊임없이 자신의 원형적인 움직임을 회복하려는 탄력성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며 김교수는 ‘인간의 이성과 깊은 마음’에 대한 ‘신뢰’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이 책은 깊고 장엄한 인문학의 숲이다. 따라서 가벼운 산책로는 아니다. ‘깊은 마음’으로 젖어들어 가다보면 풍요로운 지평과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된다. 한국 지성계에 이만한 인문학자가 있고 지금도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는 건 축복이다. 생각보다 실천인데 그 실천의 첫걸음은 성실한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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