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1Q84 1~3 세트 - 전3권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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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키의 책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제일 흥미로운 것은 <1Q84>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1,2,3권이라는 두꺼운 분량동안을 끌고가는 서사적 재미와 조지 오웰의 <1984>에 대한 애플스러운(애플의 1984년도의 TV광고를 떠올린다) 비틀기에 성공함과 동시에 좌파 운동, 농업, 그리고 종교로 넘어가는 어떤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세월호 사건이 (사이비 종교로 여겨지는) 구원파의 유병언으로 슬쩍 넘어가고 구원파가 갖고 있는 어떤 유기농 혹은 농업 공동체적 특성을 듣던 시절(2014년 5-6월)에(유벙언을 잡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면서 당시 감옥은 수배중이던 사람들이 일거에 구속돼어 미어 터졌었다) 나는 1Q84를 읽으며 하나의 소설과 하나의 사건이 가지는 유사성이 흥미롭다고 느껴졌다.

오늘, 하루키의 신작 소설을 기다리는 의미에서 사들인 하루키에 대한 몇권의 책을 돌려가며 보다가, 잠시 누워서 <1Q84>처럼 운동과 농업, 그리고 종교가 장대하게 흘러가는 한국문학작품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생뚱맞게도 박경리선생의 <토지>가 떠올렸다. 이 둘은 좌절된 사회운동이 어떻게 배타적인 (유사)종교로 귀결되는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 소설은 아니지만 우리는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비슷한 흐름을 볼 수 있다.


하루키의 다음소설은 난징대학살을 다루고 있다는데, 세계적인 문학상을 노리고 쓴것이라는 코멘트와는 별개로 하루키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었을지, 일본에서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또 한국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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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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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라는 여성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몇번 데이트를 했었지만 금방 헤어졌다. 이 소설의 제목을 보고 그녀가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짧게 만났지만, 좋은 감정만 가지고 끝났었기에, 이 책은 가벼운 설렘을 가져다 줬다. 


이 소설의 제목 김지영은 의도된 흔함이다. 지영은 정말 흔하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대로만 써봐도,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공지영의 이름도 지영이고, 중학교때 병아리 선생님이었던 담임은 이지영이었으며 살면서 지영을 네다섯명은 만난것 같다. 물론 내가 잠시 만났던 김지영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을 것이다. 


이 책은 80년대 초반의 대졸여성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그야말로 스테레오타입화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책의 각 부분은 통계자료를 들이대며 굳이 이런 어색한 설정을 감추지 않는다. 


삭막한 통계자료에 김지영이라는 캐릭터를 붙여내어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그의 삶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소설속의 그의 고민들과 갈등들은 어디서 많이 들어볼법한 얘기였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은 젊은 여성들에게 꽤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것 같다. 


하지만, 굳이 소설이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개인적인 선호겠으나 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소설이 좋다. 캐릭터의 구성이 입체적이며 모순적인 편을 좋아한다. 그러한 모순적인 캐릭터와 예측할 수 없는 주제의식이 재미있는 전개와 맞물려 약간의 충격을 주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러한 나의 선호에 비해 이 책은 너무 예측 가능하며, 그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나열하는 뻔하 이야기였다. 덧붙여 이야기의 태도는 다소곳했지만 던지려는 메시지는 약하고 수동적인 것은 아닌 강한 주장이었고, 그것은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아마도 이러한 작품의 한계가 이 책의 공감이 젊은(중년까지 포함하여) 여성들에게 한정되는 효과를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SNS를 통해 알았지만, 내가 잠시 만났던 그 김지영씨는 결혼을 했더라. 딱히 연락할 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녀가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얘기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김지영'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알아둬야 할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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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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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면역학을 공부했다. 면역학은 재밌었고 졸업 이후 관련된 일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면역학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면역은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철썩같이 믿으며 사회를 비평하는데 면역학적 은유를 사용하곤 했다. 


이 책은 내 믿음이 틀렸음을 알게해줬고, 책을 읽음으로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에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책은 흔치 않다. 제목만 보고 책을 골랐을 때 나는 이 책이 내 생각을 바꿔놓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즐거울지, 또 얼마나 유익할지 짐작도 못했다. 수년에 걸쳐 백신 연구를 지원하고 공부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말이다" 라는 빌게이츠의 말에 완벽히 동의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백신에 대한 책이다. 


영미에서 백신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것은 대충 알았다. 하지만 일부 비과학적인 소수의 종교적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일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중산층의 백인의 '자연'적인 것을 좋아하는 집단에서 더 그러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저자의 결론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백신은 안전하며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그 결론은 그렇게 간단히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은 섬세함에 있고, 철저함에 있으며 결론에 이르는, 아름답기까지 한 과정에 있다. 


그러니까 백신은 단순히 과학적으로 딱 떨어지는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이 책은 백신에 대한 기저에 깔려있는 역사와 문화와 감정들을 말해준다. 육아를 하면서 직접 느낀 여러 두려움들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인종적, 계급적, 문화적 함의를 끌어낸다. 그렇기에 이 책은 백신에 대한 책이면서 두려움에 대한 책이기도 하고 나아가 개인과 타인, 집단속에서의 도덕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면역이라는 개념은, 그리고 백신이라는, 우두라는 뜻의 라틴어로 명명된 이름은 애초에 시작부터 은유였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 (물론 여러번 언급되기도 하지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과는 다르다. 적어도 면역이라는 영역에서는 은유와 질병은 구분되지 않고 어우러진다. 개인은 분리되지 않으나 모두 동일하지도 않다. 저자의 말처럼 면역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여러번 애둘러 언급되는 저자의 철학은 우리가 가진, 근대가 가진 개인이라는 신화를 합리적인 방법으로 무너트린다. 


im-munity. 애초에 munity는 의무, 군역, 납세등을 뜻했다. 그리고 im-을 붙임으로서 그것을 거부하는 것을 가리켰다. 오늘날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주로 지칭하는 양심적 거부자라는 표현이 양심적 백신 거부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은 놀라웠다. 백신에 대한 거부와, 그것이 집단에서 의미하는 어떤애매함,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이익(혹은 복리)이 충돌하면서도 완전히 대립되지 않는 과정의 논의는 오늘날에도 되풀이 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쟁과 닮았다. 의무에 대한 거부였던 면역은 이제 위험, 혹은 질병에 대한 방어로 뜻이 바뀌었다. 오히려 백신을 의무화 함으로서 우리의 몸을, 그러니까 연결된 몸을 균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거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레이첼 카슨이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저자의 힘은 아름답고 섬세하며 구체적인 경험에서도 나오지만 번번이 인용되는 의사 아버지와 그녀가 조사한 엄청난 양의 논문과 판례등으로 뒷받침 된다. DDT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 근절되다시피 한 말라리아로 그들은 더이상 DDT를 쓰지 않아도 되기에, 그리고 그들이 쓰지 않는 DDT를, 이제는 나쁜 화학물질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DDT를 여전히 말라리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미에서 쓰지 못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된다면, 과연 이것에 대해 우리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뚜렷한 답을 성급하게 내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면역에 대해 생각할때, 질병에 대해 생각할 때, 그리고 질병이나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때 보다 넓은 시야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저자는 주고 있다. 무력한 권력자의 위치라면 더욱더 말이다. 


인간의 두려움은 비합리적이며 감정적이다. 우리는 예측할 수 있는 큰 위험보다 불확실한 작은 위험을 더 두려워한다. 미세먼지를 욕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비행기를 탈때 불안을 느끼면서도 정작 더 큰 사고율과 사망율을 가진 자동차는 별 생각 없이 탄다. 광우병과 메르스에는 극도로 두려움을 표했지만 술담배 소비량은 최고다. 저자는 두려움에 대해 말하며 집단에 대해 말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 대해 말한다. 과학은, 의학은 우리의 두려움에 대하여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편견도 백신같은 것만으로 해소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더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면역을 자기와 비자기의 구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면역을 우리가 위험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며 함께 극복해나가는가, 그 총체적 과정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것이다. 면역에 관하여 말이다. 


합리적이면서 문학적인, 그리고 구체적이면서 쉬운 저자의 글은 의사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출산과 육아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당신은 <드라큘라>를 읽고 싶어질 것이다.


끝으로, 한국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에 <면역에 관하여>라는 제목은 좀 아쉬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의역이겠지만 '은유로서의 면역'이라든가 '혼자서 면역은 가능한가' 정도가 좀더 호기심을 유발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면역'이라는 단어는, 그리고 백신에 대한 논쟁은 아직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한편으로 몇몇 리뷰에서 보는 것 처럼 이 책을 단순히 '예방접종'에 대한 과학적인 책으로만 다룬다면, 저자는 아마도 아쉬워할 것 같다.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169페이지의 하단 주에 있는 오타는 가벼운 실수로 언급해둔다. 



"그 정원은 몸이라는 안쪽 정원, 그러니까 우리가 〈좋고〉 〈나쁜〉 균류와 바이러스와 세균을 모두 품고 있는 곳 못지않게 이상하고 다양한 곳이다. 그 정원은 경계가 없고, 잘 손질되지도 않았으며, 열매와 가시를 모두 맺는다. 공동체라는 말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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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글은 여러면에서 거슬린다. 우선 이 사람이 가지는 공감과 연대는 여성에게 한정된다. 둘째 어려운 철학용어를 많이 쓴다. 나는 철학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인용하는 것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은유의 방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중산층 고학력 페미니스트 여성이 어떻게 대중적 여성과 유리되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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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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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나치시대가 시작될 무렵을 살던 유대인 학생의 시각에서 쓰인 얇은 책. 마지막 한줄이 기가막힌 반전으로 끝난다. 이 한줄로 이 얇은 소설은 소설의 분량보다 많은 상상력과 여운을 이끌어낸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계몽적 태도를 잘 자제하며 담담한 필치로 얇은 책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리고 마지막 몇장에서 수십년의 세월을 내달린 후 마지막 한문장으로 그 수십년 사이에 있었을 여러 갈등, 수많은 사건들, 고민들, 그리고 여러 비극들을 책을 덮고 한참 생각하도록 만든다. 


여운과 반전이란 점에서 줄리언 반즈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떠올리게 하는 책. 


<폰 호엔펠스, 콘라딘.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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