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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손탁 ㅣ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3
정명섭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5월
평점 :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시리즈로 만나는 세 번째 역사소설!
그동안 읽었던 시리즈에서 역사와 가상의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기 때문에 <미스 손탁>의 핑크빛 표지가 전해주는 기대감으로 설렘을 갖고 책의 첫 장을 펼쳐 들었다
손탁 호텔은 명성황후의 총애와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은 손탁 여사가 건물을 하사받아 운영을 했었는데 대한제국 시대에 우리나라를 찾아온 국빈들이 머무는 영빈관으로 조정의 추천장이나 허락이 있어야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한국 근대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장소인데 청소년문학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반갑기도 하고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아쉬움마저 든다
황실의 서양전례관으로 일을 겸하고 있어 궁중 출입까지 자유롭게 했던 것으로 보아 그 시기에 각국 외교관들과 정부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손탁 호텔은 현재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정동에 호텔의 터가 남아있다
새문안교회, 상동교회, 숭례문, 경운궁 등 역사적 중요성을 갖고 있는 장소가 소설 속에 등장해서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재미를 더해 주었다
<미스 손탁>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법어(프랑스) 학교를 다니던 학생 배정근이 형의 소개로 손탁 호텔에서 보이로 일하게 되는데 어느 날 손탁 여사가 청도를 다녀오겠다는 편지를 남겨놓고 사라지게 된다
청도에 갈 이유가 없었던 점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것을 수상하게 여긴 배정근은 이화학당 학생 이복림과 함께 손탁 여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둘을 쫓는 전 호텔 보이 황만덕, 누군가 여사의 방에 몰래 침입한 흔적, 의심스러운 호텔 투숙객 등 미스터리한 사건 전개에 점점 더 이야기속으로 빠져든다
육영공원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의 밀서를 전하려 했던 헐버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일본의 조선 침략을 규탄하며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베델, 양기탁과 이준 등의 독립운동가, 이토 히로부미, 나라를 팔아먹고 배신한 매국노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 통감의 양녀로 왜놈의 밀정 노릇을 한 아마 시다코 등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의 등장으로 역사서를 읽는 듯 한층 더 생동감있고 흥미롭다
구한말이라는 시대에 어울리는 예스러운 문체와 자세하고 섬세한 인물, 배경, 사건의 묘사는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을 옮겨 놓은 것처럼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손탁 호텔을 묘사하는 글과 딱 맞아떨어지는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경운궁, 프록코트, 콜롬비아 축음기, 대한매일신보, 한성외국어학교, 대한제국 시위대, 탁지부, 정동교회, 이화학당, 인력거꾼, 가마꾼, 곰방대, 아라사(러시아), 법어(프랑스어), 양담배, 눈깔사탕, 다마쓰키(당구), 한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진고개, 남정문역, 조선 왕실과 관련된 주요 사진들을 촬영했던 무라카미 덴신의 사진관인 생영관 등 시대상을 알려주는 장소와 배경, 새로운 문물등이 소설 곳곳에 드러나고 있어 역사의 현장속에 서 있는 듯한 짜릿함을 맛본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음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느껴진다
같은 자리에 함께 착석하는 것조차 꺼리는 양인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 처음 보는 욕조를 신기하게 바라본다든가 여성이 외출할 때 쓰개치마를 사용하고 양복과 양장, 두루마기, 한복 등 한 시대에서 다양하게 공존하는 복식의 형태, 여러 외국인과 함께 생활하는 대한제국 시대의 한성 풍경과 전차와 같은 새로운 문물을 보고 신기해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의 모습, 야구의 등장 등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대상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고종황제가 커피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소설에 등장하는 커피 융드립과 양탕국이나 가배라고 불리는 커피의 옛 이름은 흥미로웠다
강대국에 의해 대한 제국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역사의 아픔 또한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일본과 미국의 밀약, 을미사변, 을사늑약, 아관파천 등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과 기록들을 역사 소설을 통해 그대로 확인하게 된다
저자가 서술한 문장에서 그 시대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세상이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예상치 못한 반전, 추리를 통해 하나하나 진실이 밝혀지며 역사의 긴박했던 상황으로 이끄는 짜임새있는 구성과 전개는 몰입감을 높인다
가독성도 좋고 소설의 재미에 역사 지식까지 두루 갖춘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역사소설이다
청소년문학이라 성인의 입장에서 보다 쉽게 읽히는 장점도 있다
우리 민족이 아닌 외국인이 자신의 일도 아니면서 우리를 돕는 모습에서는 무엇이 그들을 머나먼 타국에서 스스로의 청춘과 인생을 바쳐가며 살아가게 했을까 궁금증이 인다
일본의 무력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지한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교회와 학교를 짓고 신문사를 만들기도 했던 선교사들과 외국인들의 행적들에 가슴 찡해오면서 경외감마저 든다
<미스 손탁>을 읽다가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해진 부분이 있다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조선의 주권 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하기 위해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들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기 못한 것을 애통해 하다 이준은 순국한다
특사 파견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는 부분에서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던지 울컥하고 말았다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위안부와 독도 문제 등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서를 통해서든 역사소설을 통해서든 우리의 역사에 대해 바로 알고자 하는 마음과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역사에 대해 학창시절 배우긴 했지만 시험을 위한 지식으로만 여겼던 것 같다
책을 통해 쓰라린 역사와 마주하는 순간 후회와 부끄러움이 일어났다
역사는 지식과 기록이기전에 현재와 연결되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즘 청소년문학이 수준도 높고 다양한 분야와 장르로 재미와 감동은 물론 지식과 생각할 거리들을 충분히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읽고 싶고 읽을 만한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끝으로 암울한 현실이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손탁이 배정근에게 건네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소개해본다
"내 고향인 알자스는 프로이센 땅이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프랑스 땅이었지. 그러다가 내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양국이 전쟁을 벌이면서 프로이센 땅이 되었단다. 역사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너무 낙담하지 말거라. 그러니까 견뎌야지. 봄이 올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