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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를 꿰뚫는 질문 25 - 제국의 문화, 열림과 닫힘 꿰뚫는 질문 1
조영헌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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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중국사에 대한 종래의 견해에 어떤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것 처럼 도전적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중국사를 전공한 현직 교수들(다만 저자진이 정말 현직에서 쟁쟁한 분들인 것은 사실이다)이 질문-대답의 형식을 취해서 쓴 개론서의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통사같이 시시콜콜한 느낌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사에 대한 개설을 갈음하기에 충분하고, 보충내용을 충실히 하고 있어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

다만 중국사의 얼개를 가지고 있지 않은 독자에게는 조금 불친절한 구성으로 느껴질 수 있다. 기본적인 중고등학교 수준의 세계사 지식은 있어야 쉽게 읽을 만하다.

목차에 따라서 큰 구성을 보면 각 시대에 전반적으로 고르게 주제를 설정한 의도가 보인다. 각 시대별로 3~4개씩 선정한 것을 보면 중국의 통일왕조들을 중심으로 서술을 집중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삼국-위진남북조-5대십국-요금과 같은 시대는 다루어지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는 부분은 18번 주제 소빙기였다. 명청교체의 위기를 소빙기에서 찾는 견해를 충실히 소개하면서, 이러한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가 왕조교체에 일조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한편 이는 정치구조의 위기로 말미암아 더욱 심각해졌다고 보았다.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했다면, 즉 비축곡을 푸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기아를 구제하고 체계적인 수리공사를 하는 방식으로 홍수로 인한 범람에 따른 피해를 복구했다면 기아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체제의 위기로 발전하지 않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연이은 재해에 정치체제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상부구조도 전복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기후결정론적 조금 더 나아가 지리적 조건에 따른 결정론적 시각을 넘어서 인문학적 역사 탐구로 나아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주독자는 중국사 교양을 쌓으려는 중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일반인까지 두루 포함한다. 아쉬움은 수당의 Pre-history로써의 북위나 요, 금과 관련된 유목민족과 관련된 질문이 없었다는 것!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이벤트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https://cafe.naver.com/booheong/23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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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의 실상 - “반일 종족주의”비판
전용덕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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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으로 뉴라이트는 식민지근대화론과 계보를 같이하고 뉴라이트는 ()자유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오스트리아학파와도 학술적인 연결점이 있다. 때문에 자유주의를 연구하는 학자가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것은 조금은 의외인 일이다.

 

저자는 아마도 일제강점기의 총독부도 자유주의를 억압하는 통제적 국가이므로 오스트리아학파적 의미에서 나쁜 정부라는 점을 꼬집고자 한 것 같다, 이러한 비판은 개발독재에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다른 저작 <국가주의 시대의 경제와 사회>을 쓴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식민지근대화론을 뒷받침하는 통계에 대한 인상적 비판을 넘어선 대안적 통계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허수열의 <개발 없는 개발> 이후 계속된 수량적 비판에는 논의가 도달하지 못한 한계가 뚜렷하다. 만약 조선반도의 경제성장률이 과장되었다면 혹은 강점기 한-일간 1인당 소득격차가 과소평가되었다면 그 폭이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식민지근대화론의 가장 크고 과학적인 무기인 통계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인데, 저자는 과장, 과소되었을 것을 논리적으로 주장하지만 얼만큼인지는 논증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비판이 힘이 약해지는 지점이다.

 

이외에 일제를 전쟁 사회주의라고 보면서 종래의 (자유의지적) 수출론을 비판하고 식민지라는 체제가 가져오는 구조적 수탈에 관한 주장을 오스트리아학파적 입장에서 논변한다거나, 감시와 공포를 통한 정치적 폭압으로 인해 자유가 박탈된 조선은 근대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거나, 경제규제의 포획이론을 활용하여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공공성을 비판한다거나하는 주장은 기존에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매우 신선하다.

 

그러나 토지조사사업의 수탈성에 대해 조선이 망해서 국유지가 없는데 이를 몰수했으니 수탈이라는 주장이나,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면 소위 자주적 근대화(정치적 독립, 공업화, 민주주의)를 일제보다 더욱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if적 가정에 근거한 비판에는 논의의 깊이를 더하지 못하는 피상성이 배어난다.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를 면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근대국가적 틀이 확고할 뿐 아니라 군사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 대한제국에는 이러한 조건들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체역사소설에 등장하는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서 개혁을 시도한다고 해도 자주적 근대화가 가능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러한 가정을 전제로 일제를 비판한다는 것은 그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현실적으로도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유의미한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이 있어 이를 정리해두고자 한다.

첫째, 1937년 이후 진전된 공업화와 이에 힘입은 경제성장은 결과적으로 1945년 패전 이후 말그대로 소멸했을 뿐 아니라 전시산업에 편중된 것으로써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경제성장이 표면적으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시동원체제 아래서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이지 생활에 소용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여 경제가 성장한 것이 아니므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경제성장의 결과가 일본인과 한반도 한인 사이에 불균등하게 배분되었는데, 이를 식민지근대화론은 중요하게 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을 논증하기 위해서 우편저금 잔고와 공업부문의 민족별 자산 추계를 인용하고 있다. 이는 타당한 주장이고 나도 개인적으로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나, 엄밀하게는 이미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반박된 주장이다. 이미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민족별 불평등을 감안하더라도 일본인의 소득만 증대되고 조선인의 소득은 전혀 증대되지 않았다거나 감소하는 시나리오는 불가능하다고 기각하였다. 다만 조선인 지주-자본가와 비숙련노동자-소작농의 민족 내부의 계급적 차이까지 고려한 분석은 아니었으나 이러한 지점에 천착한 추계는 아직 확인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셋째, 일본시장과 조선시장은 통합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특히 화폐제도의 분리(즉 조선은행권의 불환성), 노동시장의 제도적 분리(즉 도항허가제와 민족간 차별임금제)를 식민지근대화론이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제도적 통합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이러한 비판은 타당하나, 일본과 조선 사이에 무관세를 통한 자유로운 통상이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과 노동의 시장이 통합되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시장 통합의 효과는 가져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 전체를 보건데, 저자의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가장 타당한 비판은 이우연, 정안기의 징용징병에 자발적 참여에 대한 주장들에 대한 비판(3)이다. 자발성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짚고, 나아가 경제적인 의미에서(오스트리아학파적 입장에서 뿐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자발성을 인정할 여지가 없다는 점을 타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 논쟁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 볼만하다.

 

전체적으로 오스트리아학파의 입장에서 본 식민지근대화론과 비판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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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년 전 중국의 일상을 거닐다
카키누마 요헤이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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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처음 서평을 신청하게 된 계기는 내가 화폐경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고대 중국 화폐를 전공하여 관련 서적을 많이 출판했기 때문에 이를 자세하게 소개해주지 않을까 싶어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막상 책을 열어보니 화폐 관련된 내용은 한장반 남짓이었다. 책의 주된 배경인 진한시대에 통용된 주화는 오수전과 반량전이었다는 내용과 실세가격, 평가, 고정관가 같은 다중가격 체계의 소개가 다여서 많이 아쉬웠다.


2. 책에 대한 평가


그러나 저자는 이천년전 중국의 일상 '전체'를 매우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 본인이 고대 로마인의 24시 라는 일상사 저술에 강한 영향을 받아서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책의 내용도 하루 24시간에 따라서 각 시간대와 연관된 일상사를 풀어내고 있다. 순서대로 새벽의 풍경, 양치질하고 머리를 빗다(아침), 몸단장을 하다(의복), 아침 식사를 하다(식사), 마을과 도시를 걷다(도시구조), 관청으로 가다(행정), 시장에서 쇼핑을 즐기다(경제), 농사일의 풍경(농경), 연애, 결혼, 육아(결혼), 연회에서 술에 취하다(음주), 희비가 교차하는 환락가(성애),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유대와 다툼(가정생활), 취침 준비(저녁)을 다루고 있고, 각 내용은 미시사적 고찰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놀라게 되는데, 저자의 집요한 주석은 거의 모든 문장에 달려있다. 사실 정치사를 위주로 서술된 각종 문헌들을 일상사의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한시기의 문헌이 부족하면 선진에서 남북조에 이르는 시기까지 좀더 넓은 범위의 문헌을 전거삼아 논하지만, 어쨌든 서술 하나하나가 다 근거가 있으니 그 상세함이 놀랄만하다.


예를 들어 연회와 관련된 일상사를 서술하면서 술자리 규칙은 매우 엄격해서 이를 어기고 "술에 취해 자리를 떠나려는 사람을 보자마자 뒤쫓아 가더니 칼로 베어 죽여버렸다"(p.259)는 말이 나와 찾아보니 이는 朱虛侯의 일화로 전한시대 여태후가 국정을 농단할 때 그 친척이 방자하게 굴자 유씨 황족이 이를 술자리를 핑계삼아 이를 벌한 이야기를 근거로 삼아 말한 것이었다. 정치사의 일화에서 연회와 관련된 일단을 찾아내는 이런 종류의 서술이 책에 그득하다. 책의 대강이 이러한 서술의 연속이고 추측이나 개인적인 감상인 부분은 이를 밝혀두고 있어, 책의 내용을 믿고 보아도 좋을 뿐더러 새로운 시각, 다른 각도의 해석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쉽다.


또한 고고학적 자료의 활용이 매우 다양하다. 진한시기 유물이 넘쳐나는 것은 아니지만 복식이나 생활유물에 있어서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이 많은데 이러한 자료들을 풍부하게 도판으로 활용하여 당시의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하기에 아주 좋다.


조명의 세기를 조정할 수 있는 장신궁등, 당시의 가발, 하수도와 화장실 유적 등의 도판은 과거를 현재와 비교하고 이해하는데 훌륭한 교재가 된다. 다만 도판이 크지는 않다.


아쉬운 점은 일상사 중에서도 미시사에 해당하는 내용을 자세히 다루다보니 군대, 관직, 조세 등의 이야기는 달리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은 다른 책에서도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일상사적 시각이 가미된 해석은 아니니 만큼 다루어도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기록이 빈약한 일상사를 다루기 때문에 과거의 수세기를 다루면서도 그간의 변화상은 서술하지 못한다. 사실 전한~후한까지만 해도 약 4세기나 되는 만큼 전한초와 후한말은 상당히 다른 일상생활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일단 사소하다고 전제하고 동질화하여 서술하였다. 이는 자료의 부족에서 비롯된 한계이기는 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대군사 사마의나 모의천하 같은 중국역사드라마를 보면서, 삼국지나 초한지와 같은 고전소설을 보면서 당시의 일상사에 궁금한 점이 있던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3. 별점 및 한줄 평

5점 디테일에 있는 악마를 놓치지 않은 가벼운 일상생활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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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
홍윤표 지음 / 렛츠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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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11년 중국의 마지막 제국이 멸망하고 각지의 군벌들이 발흥할 때만해도 스파이라는 개념은 지나치게 근대적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인 동기가 아닌 사회문화적 동기에서 이념에 충실한 동조자들이 정보를 유출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힘이 강력해진 근대 이전에는 잘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시작부터 다윗의 입장에 서있었기 때문에 정규전으로는 도저히 성장할 수 없었다. 책에서도 말하듯 좌경 맹동주의자들의 노선은 중국공산당에 해가 되었으면 해가 되었지,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1927년에서 1949년은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을 제끼고 중국대륙을 집어삼키는 변혁기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의 비밀조직은 국민당 조직은 안에서부터 갉아먹고 있었다.



처음 공산당에 포섭된 사람들은 사회주의적 사상에 흥미를 가진 신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군벌시대의 부패한 정부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했고, 국민당 또한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부패했다고 속단했다. 그리고 스스로 공산당을 돕는 길을 택했다. 장군, 참모, 비서,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의 스파이들이 공산당에 포섭되어 국민당에 잠입했었다는 사실로부터 남베트남을 연상하는 건 그리 멀리 떨어진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책을 곰곰히 곱씹어 볼수록 이러한 생각에는 비약이 있다는 결론에 도다르게 된다.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라는 이스트먼의 책을 빌어서 이야기 하자면, 공산당이 잘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국민당이 못했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그것은 근대화라는 너무나도 막중한 임무를 항일전쟁과 병행했어야 한다는 국민당의 시대적 과업이 국민당에 견딜 수 없는 하중을 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였다.



스파이가 정보를 캐내어 중국공산당에 넘겼다고 한들,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수적인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중국공산당은 고작 정보를 탐지해서 미리 도망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도 였던 것이다. 두 차례의 국공합작은 일본의 덕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오죽했으면 모택동은 일본이야말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의 1등 공신이라는 말을 남겼을까. 역사는 몇몇 스파이에 의해서 비가역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거대한 조류에 미치는 영향에 불과하다.



분명 흥미로운 인물들과 중국근대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얽혀있고, 대립, 진립부, 주은래 등 역사의 주인공들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특히 국민당 방첩조직의 2인자가 중국공산당의 첩자였다는 사실을 볼 때는 이러니 국민당이 망했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드라마 위장자와 같은 이야기가 단순한 창작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이러한 일화들에서 찾기보다 중국공산당이 1949년 이후에 진행해온 공작이 그 전보다 더욱 치밀해졌을지언정 덜 치밀해지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을 상기할 수 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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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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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은 많은 의문을 내포하는 모순적 전쟁이다.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을 겪고난 후에도 인류는 왜 “제 2차” 전쟁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심지어 제 2차 세계대전를 수행했던 사람들은 거진 제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생활을 경험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왜 교훈을 얻지 못했을까? 아마도 1945년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질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안타깝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 우매한 대중들이 격렬한 이데올로기의 선동에 따라서 전쟁에 휩쓸린 것일지도, 민족주의의 고조되는 영토확장의 열기가 더 이상 전쟁으로 해소되지 못하도록 꾹 눌려져 있다가 비정상적으로 폭발한 것일지도, 이른바 패전국들의 세력균형에 대한 현상변경에 대한 의지가 전쟁으로 치달았던 것일지도, 전전의 벨에포크가 아련하게 남긴 경제적 풍요와 금본위제에 대한 환상과 속박이 전후의 경제적 위기를 고양시켰기 때문에 중산층의 불만이 누적된 것이었을지도 혹은 모든 이유가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히틀러는 혼자서 세계대전을 일으켰을까?

사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인류는 부전(不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명했다. 켈로그-브리앙 조약으로 대표되는 개별 국가간의 조약에서 나아가 국제연맹이라는 다자간 협의체까지 전쟁회피에 대한 확고한 노력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가의지의 실현으로서 전쟁이라는 수단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현상유지에 기득권을 가진 국가들은 패전국의 아우성도 식민지의 자결권도 무시해버렸다. 제국주의 이후의 제국주의자들이 아직은 온전히 남아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의 책임이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추축국은 국가 내부의 민주주의를 파괴함으로써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안전핀을 제거했다. 궁극적으로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이냐 아니냐하는 책임의 문제에서 추축국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설사 파시즘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대중의 지지라는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과연 히틀러는 혼자서 세계대전을 일으켰을까?

 

책의 내용을 자세하게 옮기는 것은 사실 대부분의 다른 책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제 2차 “세계”대전은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적이었고 이른바 태평양전선에서도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영국의 아프리카에서의 승리와 미국의 태평양에서의 승리가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사실 균형있는 서술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저자가 영국인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 책의 배분에 대해 어느정도 양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서술된 내용의 정확성이나 군사사적인 의미에 대한 언급들에 대한 평가는 전문적인 관심을 표명할 이들에게 부탁할 일이고,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독자의 수준에서 책 전반의 서술이나 그림, 도표는 전반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읽기에 불편함 없이 좋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결말은 아주 간단하다. “제 2차 세계대전은 훌륭한 전쟁이었다.” 전쟁이 수반한 모든 학살과 파괴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은 훌륭했을까? 오히려 그 모든 학살과 파괴에 있어서 훌륭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찜찜한 의문이 남았다. 우리가 1945년 이후 너무나도 당연하게 선거와 정당에 의존한 민주주의를 유일한 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혹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제 2차 세계대전의 덕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가 과연 제 2차 세계대전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이른바 “현대”는 전쟁을 통해서만 태어날 수 있었던 기묘한 모순덩어리일 수도 있다. 인간의 도구적 합리성을 철저하게 구현하면서도 인간의 이성을 철저하게 짓밟았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비로소 근대로부터 현대를 단절시킬 수 있었다. 전후 이미 7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우리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드리운 긴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쉽게 제 2차 세계대전의 의의에 대해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것이 존재했기 때문에 당연해지는 것은 아니다. 과연 전쟁은 필요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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